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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철) 노자와 교회 : 올해 부활절은 없습니다
  • 김유철
  • 등록 2018-03-20 10:58:24
  • 수정 2018-03-21 17:3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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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十輻共一轂 삼십폭공일 當其無 당기무 有車之用 유차지용 埏埴以爲器 선식이위기 當其無 당기무 有器之用 유기지용 鑿戶牖以爲室 착호유이위실 當其無 당기무 有室之用 유실지용 故有之以爲利 고유지이위리 無之以爲用 무지이위용


바퀴살 서른 개가 바퀴통 하나에 모이니 거기가 비어있어서 수레를 쓸 수 있다. 찰흙은 빚어서 그릇을 만들되 거기가 비어있어서 그릇을 쓸 수 있다. 문을 내고 창을 뚫어 방을 만들되 거기가 비어 있어서 방을 쓸 수가 있다. 그러므로 있음은 이로움의 바탕이 되고 없음은 쓸모의 바탕이 된다.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 2003. 삼인)


비어있는데 쓸모가 있다?


요즘 많이 쓰는 허브(HUB)라는 말은 힘이나 권세의 ‘중심’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와 유사하게 쓰고 있는 center, middle, heart, core 역시 외형적인 눈으로 본 언어일 뿐, 노자가 말하는 ‘비어있음’의 원초적 기능을 다 품어내지 못한다. 허브는 중심에 있어서 혹은 중심이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비어있기에 중심이 될 뿐이다. 어쩌면 그것은 성경의 첫 단어인 ‘한처음’(창세1,1)의 상태이다.


단순한 중심이어서 바퀴살이 모이는 것이 아니라 바퀴통이 비어있어서 모이고 그것이 수레를 끌고 나가는 원천이 된다. 비어있음이 앞뒤, 좌우 많은 것과 관계를 맺고 관계 맺는 중심으로서 모든 쓸모의 원천이 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창조는 비어 있음에서 시작하며, 부활도 ‘텅 빈 무덤’에서 비롯된다. 하여 다시 묻는다. 한국천주교회는 비어있는가?



며칠 동안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


엠마오로 가던 두 사람이 같이 걷고 있던 또 다른 사람에게 자신들이 “며칠 동안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루카24,18)을 마치 다 알고 있는 듯이 말했지만 정작 그들은 ‘사흘’동안 일어난 일을 깨닫지 못했다. 사흘 동안 일어난 일을 모른다고 핀잔 받은 이는 그들에게 탄식하듯 말했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루카24,25). 어쩌면 제자들에게 사흘은 ‘사흘만 보도 거리가 없으면 잠잠해 질’ 사흘이었거나, ‘3일간 미사 없음’의 시간적 사흘이었지만 주님의 사흘은 ‘텅 빈’ 사흘이었다.


정작 우리는 교회를 둘러싼 항간의 일들을 알고 있는가? 병원, 학교, 복지시설로도 부족해 해외 선교현장에서 벌어진 일들. 교계언론이 두루 뭉실 외면하거나 반벙어리 토막말을 해댈 때 성경의 ‘성’자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돌멩이가 외치듯이 말했다. “한국천주교회는 유죄”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절 계란을 준비 중인 한국천주교회. 교회의 ‘부활절’이 아니라 하느님 안의 ‘부활’을 원한다면 그것이 우리 신앙의 모든 것이라면 텅 비운 구유, 텅 빈 무덤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올해 부활절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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