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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신부가 된 것 같습니다.
  • 지성용
  • 등록 2018-04-05 12:14:29
  • 수정 2018-04-17 11: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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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워싱턴 시 중심부의 워싱턴대교구 가톨릭 자선단체 빌딩 근처 공원 벤치 위에 담요를 뒤집어쓰고 누워있는 ‘노숙자 예수’


가난하지 않은 성직자가 가난한 사람들을 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해 보지 않은 일을 말하기 힘들고, 만나보지 못한 사람을 말하고, 알지 못하는 내용을 강의하기 어렵습니다. 개인적인 신상에 대해 말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왜 가난하지 않은 성직자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경험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 나왔는가 하는 문제로부터 제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불가에서 ‘출가(出家)’라고 하면 ‘승려가 될 사람이 집과 세속의 인연을 떠나 불문(佛門)에 들어 수행 생활을 하다.’ 라고 사전에 나와 있습니다. 천주교에서도 마찬가지로 수도자나 성직자가 되려는 이가 집을 떠나 수도원이나 신학교에 들어가 생활하며 수도생활이나 성직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신학교에 들어가고자 출가를 결심했을 때는 ‘세상의 인연을 정리하고 조용히 시류에 휘둘리지 말고 내면의 고요와 평화를 이루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런 ‘출가’의 길이 어느 새 ‘출세(出世)’의 길 위에 서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사제가 되어 한참 시간이 흐르고 마치 사도행전의 사도 바오로의 ‘다마스쿠스’ 체험처럼 인생에서 고꾸라지고 나서야 알게 된 것입니다. 


신학교에 입학하고 학부를 마칠 즈음 로마에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수련자로 피교육자로 있을 당시에는 ‘어서 빨리 신부가 되어 제도와 규율에서 벗어나야지’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자유롭게(?) 살아가는 신부님들을 보면서 ‘빨리 신부가 되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로마에 가면 성직에 오르는 길이 불투명해 집니다. 학위를 못하면 서품이 수 년 미루어 지고 중간에 그만 두는 신학생들이 가끔 있었기 때문입니다. 알파벳도 모르는 남의 나라말로 공부를 해서 학위를 따와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게 있었지만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도 발동하였습니다. 2006년 박사학위를 가지고 금의환향했습니다. 


물론 중간에 부친상으로 잠시 방황하던 시간과 시련이 있었지만 나의 출세길에는 그리 큰 장애가 되지 않았습니다. 귀국하며 맡은 직책이 교구청의 성소국장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성소국의 역할이 많이 축소되었지만 신학교에 가려는 중, 고등학교 학생들을 관리 운영하고 대학에 입학시키는 역할과 방학 중에 있는 사제지망생, 신학생들의 방학 중 활동을 돌보며 그들이 성직에 들어가는가 못하는가 하는 자료를 준비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간간히 사제들의 비위나 부정에 대한 신고 자료들이 도착하기도 했고, 인사발령 전에 인사부탁을 하는 사제들도 있었습니다. 


‘저 놈이 야심이 있나보네!’ … 그러나 지금도 돌아보건대 저에게 그런 마음은 애초에 있지 않았습니다. 저는 배운 대로 ‘순명’했을 뿐입니다.


대학에서는 대외협력처장이라는 보직교수가 되어 지역의 유지들과 정치인들, 고위공직자들과 친분을 맺게 되었습니다. 신설 소래포구에 가서 멋진 성당도 짓고 교구 50주년 기념 영성센터의 책임자가 되면서 사람들은 둘레둘레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저 놈이 야심이 있나보네! 주교가 되려나 보네!’하며 저의 출세(?)를 확인해 주었습니다. 대표적인 분이 제가 존경하는 호인수 신부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돌아보건대 저에게 그런 마음은 애초에 있지 않았습니다. 저는 배운 대로 ‘순명’했을 뿐입니다. 가톨릭교회의 ‘순명’은 ‘가난’, ‘청빈’과 더불어 ‘복음삼덕’으로 주입된 성직자의 생활원칙이었습니다. 주교의 말을 듣는 것이 잘사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군소리 없이 하는 것이 성직자의 덕스러운 생활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주교 역시 부족하고 나약한 인간이라는 것, 잘못 판단할 수 있는 사람, 자기가 살기 위해 타인을 해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순명’이라는 도식을 던져버렸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신앙의 아버지, 주교를 부정해야 하는 뼈를 깎아내는 시간을 보내며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turning point)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안식년’에 들어갔습니다. 


안식년은 가톨릭 교회의 성직자에게 평생에 한 번 주어지는 쉼의 시간입니다. 성직에서 벗어나 여러 가지 공부나 체험들을 할 수 있는 시간으로 성직에 대한 새로운 열심을 키울 수 있는 여백입니다. 저는 이 시간에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지인의 소개로 시청의 공공근로의 일용직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철거 공사, 상수도 하수도 공사, 쓰레기 치우는 공사장 잡부로 일했습니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 잡부가 받는 최저시급 단가 11만원의 8시간 노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미장이든, 포크레인이든, 목수든 기술이 있는 사람들은 20만원 이상의 돈을 받았지만 특별한 기술이 없고 배운 것이 없는 잡부는 공사판의 천덕꾸러기였습니다.


반말과 욕설은 기본이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것도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저야 돌아갈 성당이 있으니 참고 경험하며 ‘세상 더럽다’ 되뇌었지만 이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게는 여간 한 곤욕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알게 된 것은 11만원 잡부 동료가 아내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는 장면을 듣고 보면서입니다. 점심을 먹고 스티로폼 바닥에 누워 쉬고 있는 동료에게 마누라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내용인즉 ‘끝나면 집으로 바로 와! 술 먹고 오면 죽을 줄 알아!’ 등의 교시에 ‘네네’ 하는 남편의 응답이었습니다. 노동판에도 높낮이가 있었습니다. 기술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임금격차는 그들의 삶의 질과 형식을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바닥생활에서 저는 그 동안의 많은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가난은 체험해야 알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가난해 지지 않고 가난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잠시의 가난이었지만 나의 성직생활은 너무나 부유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는 정해진 때가 되면 음식을 해주는 자매가 맛난 반찬을 깔아놓고 식사하라 불러주었고, 설거지이든 청소든, 쓰레기 분리수거 등을 지금처럼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사무실 서류들이나 본당주보는 직원이 알아 만들어 오면 결재하고 ‘이렇다 저렇다!’ 핀잔이나 주었던 제가 막상 이것저것 본당사무를 직접 하다 보니 직원들이 본당 운영을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난해 지지 않고서 가난한 자들과 살아가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 서해 섬마을 용유 성당 작은 시골본당의 신부로 살고 있습니다. 

인천공항 개발의 후미로 개발되지 않은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시골어촌마을입니다.평일에 다섯 명 정도 되는 신자들, 주일이면 30명 정도되는 신자들이 자리를 채우고, 가끔 인근 군부대 장병들이 오면 50명 정도 앉아 미사 지내는 작은 시골본당입니다.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본당 신부의 일기’에서 묘사되는 ‘권태가 본당 모두를 우리 보는 앞에서 아귀아귀 먹어 대는데도 우리는 속수무책이다.’ 라는 표현처럼 바로 그런 본당의 주임신부가 된것입니다. 교우들은 거의 70이 넘은 노인들이고 환갑의 나이도 여기서는 어린 애입니다. 저는 여기서 당연한 일이지만 밥도 스스로 해먹고 관리장, 사무장, 잡부로 일하면서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살고 있는 저를 보면서 불편하지 않느냐? 힘들지 않느냐? 신부 생활이 왜 이러느냐? 말하지만 이제야 저는 비로소 신부가 된 것 같습니다. 그 동안 너무나 많은 이들에게 기대어 살아왔는데 이제야 제 힘으로 온전히 살아갑니다. 그래도 많은 부분을 도와주는 신자들이 있어 조금씩 여유를 내보기도 합니다.


‘초월’ ‘내가 살고 있는 시간과 공간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세상의 중심, 본질에 가까이 간다’, 자기 자신의 핵심으로 가는 것 입니다.


사실 ‘초월’적인 삶을 살고자 지향하는 모든 종교인들의 바람에는 뭔가 오해가 없지 않습니다. ‘초월’이라는 말은 그냥 ‘내가 살고 있는 시간과 공간에서 벗어난다’는 상투적인 의미에 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세상의 중심, 본질에 가까이 간다(trascendent)’는 이해가 더욱 정확합니다. 초월을 지향하는 자는 세상을 꿰뚫어 보는 예언자적인 눈을 가진 사람들이고, 영성적인 사람들입니다. 자기 자신의 핵심으로 가는 것이 초월입니다. 세상의 초월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을 초월한다는 것이 세상과 인간에 대한 ‘무관심이나 탈출, 관계없음’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제 자신의 유한성을 인식한 인간이 만사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것이 ‘세계의 초월’입니다. 


초월을 위해 필요한 것이 ‘포기’, ‘비움’, ‘가난’입니다. ‘포기’란 인간이 자기 실존의 중심을 세상 밖으로 이동시킨다는 것을 행동으로써 눈에 보이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신학자 칼 라너는 “하느님의 사랑을 가시화시킬 수 있는 유일하고 구체적인 방법은 현세적인 자아를 포기하는 길”이라 말했습니다. 더 이상 내 것을 고집하지 않고, 더는 자기 자신에 속하는 것이 없을 때, 그래서 나 자신마저 사라져갈 때, 그 때가 신적인 생명에 참여하는 영성생활, 가난한 생활의 시작입니다. 


▲ 지난 1월 9일, 천주교 인천교구의 사제 서품식. (사진출처=천주교 인천교구)


가톨릭 교회의 문제가 연일 매스컴을 타고 오르내립니다. 대구희망원 사태, 인천교구의 병원문제, 사랑의 씨튼 수녀회가 운영하는 충주성심맹아원의 주희의 죽음, 미리내 수도회 소속 유치원 수녀의 아동폭행문제, 성가정입양원의 입양아동 사망사건 등이 뉴스에 보도되면서 교회마저 세속에 물들었다는 자괴감이 신도들의 한숨으로 내뱉어지는 요즘입니다. 이제 세상이 교회를 걱정합니다. 이전의 도덕과 윤리의 잣대처럼 행세했던 교회의 권위는 오래된 유물이 되어 박물관에 전시되었습니다. 


사실 현 프란치스코 교황이 등장하기 전에도 이런 문제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된 이유는 바로 ‘가난한 성자 프란치스코’를 교황의 이름으로 선언하고 교좌에 앉은 겸손하고 영민한 새 시대의 교황이 등장했기에 가능했던 일들입니다. 교황은 ‘본당부터 교황청까지 모두 바꾸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014년 8월에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그리고 ‘번영의 신학’을 경계했습니다. 잘 나가는 이들의 교회가 아닌 소외되고 고립된 이들의 희망이 되는 공동체가 되기를 염원하셨습니다. 


한국의 종교는 정치권력과 자본과의 긴밀한 결탁으로 불경기에도 상관없이 그들의 부의 지평을 넓혀왔습니다. 


불교는 템플스테이로, 천주교는 사회복지와 성지개발로, 개신교는 대형교회의 갖가지 불법과 편법의 묵인과 이권허가로 막대한 부를 챙길 수 있도록 공적인 권력이 뒷받침해 주었습니다. 각 종단의 대표자들이 국민과 신도들의 조롱감이 되었습니다. 불교의 자승과 최근 설정의 학력위조 사건 등은 많은 국민들 입에 오르내리는 웃픈 이야기가 되었고, 천주교의 염수정 추기경이나 정진석 추기경은 이전의 김수환 추기경의 존재감에 비해 너무나 초라한 비호감으로 국민의식에 새겨졌습니다. 명성교회 김하나 목사의 경우처럼 교회세습과 불투명한 재정운영에 대해 많은 신도들이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을 JTBC 뉴스를 통해 알게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조용기 목사나 사랑의 교회의 오정현 목사는 종교부패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뉴스타파에서 인천교구 병원문제는 시리즈로 4탄까지 나올 정도의 뉴스가 되었고 최근엔 대구희망원 관련자들에게 내려진 집행유예 판결과 사목 일선 복귀 문제가 세인들의 비웃음과 조롱을 사고 있습니다. ‘집행유예 상태의 범죄자 신부가 성당에서 용서와 화해, 반성과 회개를 말한다는 것은 셀프용서 보다도 한 수위 아닌가?’ 말합니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얘기는 ‘누구든 죄 없는 이가 저 여인을 돌로 쳐라!’ 하신 예수의 회당 앞 여인에 대한 처사입니다. 사찰과 교회가 이 지경이 되도록 한 마디 하지 않았던 아니 못했던 승려들과 사제들과 목사들이 그나마 이제라도 정신차리고 종교 쇄신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면 다행이지만 단순히 문제로 지목된 승려를, 사제를 목사를 비판하면서 손가락질하고 ‘나는 아니랍니다’ 말하며 ‘나는 청정하고 청빈하고 겸손하고 가난한 승려, 사제, 목사’인척 하는 그들의 위선과 허위가 더 큰 문제입니다. 이러한 제반의 문제가 생겨난 배경은 단지 한 종교성직자가 일탈하거나 부패한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현 종교의 시스템 자체가 그러한 종교사업가 내지는 앵벌이를 하는 구조로 돌아간다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함석헌 선생은 일찍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간이 만든 모든 제도 체제(종교)는 기득권층이 생기고 그 기득권층은 민중(씨알)의 아픔을 풀어주고 수렴하기 보다는 억압한다. 그 중에서 종교권력이 가장 심하다. 한국의 기독교 역사의 격동기에서 긍정적인 일들도 많았지만 종교권력은 정치권력보다 더 오래가고, 한 민족의 정서에 밀착하여 우매한 국민을 만들고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종교자체는 민주주의를 멀리하고 있다”


2018년 대한민국 사회는 적폐청산, 남북통일의 문제가 커다란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적폐중의 적폐는 종교적폐입니다. 이것은 오래된 것이고 청산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우매한 신도들이 중이나 신부 목사가 부처라고 예수라고 생각하며 맹신하는 풍토 아래에서 종교를 혁신한다는 것은 어려운 숙제입니다. 그냥 지금 좋은데, 이대로 가자는 무사안일주의는 국민들과 신도들을 더욱 우매하게 종교마약에 빠져들게 합니다. 


종교지도자라는 말이 무색한 승려들이나 신부 목사들이 무지개 빛 힐링이나 마음수행으로 세상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말고 뒤로 물러서라고 주문합니다. 왜 종교인들의 과세에 종교인들이 난리법석인가요?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 세금을 내야 합니다. 성경에도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인 종교인에게 세금특혜를 주어야 합니까? 문제가 많은 사회복지 법인을 감사하지 않고 계속 유지하는 정치권력과 지역의 권력, 종교인들은 무슨 관계를 형성한 것일까요?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말씀으로 이야기를 맺습니다.


“이제까지 추구한 게 의미가 없으면 소리 없이 버려야 한다. 10년을 쌓았건 20년을 쌓았건 그게 모래성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허물 줄도 알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다음은 <공동선> 3,4월호에도 실린 글입니다.


[필진정보]
지성용 : 천주교 인천교구 용유성당 주임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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