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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지우고 감춘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다
  • 지성용
  • 등록 2018-05-21 14:10:25
  • 수정 2018-05-25 18:2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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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2017년 4월 발간된 지성용 신부의 책 『복음의 기쁨, 지금 여기』 가운데 일부입니다. 독자들과 나누기 위해 저자의 허락을 받고 <가톨릭프레스> 시대의 징표 코너에 매주 월요일 연재 합니다. - 편집자 주


온고지신(溫故知新), 옛 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알다. 『논어』의 『위정편(爲政篇)』에 나오는 공자의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우리는 여말선초, 불교에 대한 정도전의 기획을 보며 최근의 교회 개혁에 대한 방법론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 


조선왕조 500년의 기획자 정도전은 불교라는 구체제 지배이데올로기에 맞서는 주자학 혁명사상의 수호자를 자임했다. 그는 고려말기의 지식인으로 시대의 악을 불교의 문제로 바라보고 불교에 대한 논박서 『불씨잡변』을 쓴다. 조선의 정치적 기틀을 잡기 위해 불교를 공격하여 조선건국의 이념적 토대를 구축하겠다 작심하고 쓴 생애 마지막 저작이다. 


▲ 정도전이 고려말기의 시대의 악을 불교의 문제로 바라보고 쓴 불교에 대한 논박서 『불씨잡변』 (사진출처=우리역사넷)


정도전은 이 책에서 사치와 방탕에 빠진 불교를 비판했다. 불당을 꾸미느라 백성들의 재산을 탕진하는 승려들을 “천지의 커다란 좀”이라 말했다. 불교는 백성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사악한 종교라는 생각을 정돈한 책이 바로 『불씨잡변』이다. 정도전은 불교의 윤회나 인과응보에 대해 백성을 기만하는 거짓 주장이라고 가혹하게 비판한다. 허(虛)와 공(空)에 빠진 사악한 이론이 부자와 군신 그리고 부부의 인륜을 없애고 사람을 짐승으로 만든다고 개탄한다. 


정도전의 기획으로 조선은 ‘숭유억불(崇儒抑佛)’을 국가정책으로 밀어붙였다. 불교는 산속으로 숨어 들어갔고, 온 나라가 성리학을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정도전과 그의 제자들의 이념논쟁으로 불교의 정신적 뿌리는 조선 사상사에서 사라져 버렸다. 영원불변의 실체적 자아가 없다는 ‘무아’, 만사가 서로 의존하여 일어난다는 ‘연기’, 모든 존재의 실상이 공(空)임을 밝히는 ‘중관’, 일체 현상이 마음의 작용을 따른다는 ‘유식’, 너와 나와 온 세상이 한마음이라는 ‘일심’, 만물이 불성의 발현으로 장엄한 조화를 이룬다는 ‘화엄’ 등, 이 모든 것들이 ‘분서갱유(焚書坑儒)’되었다. 


조선의 이념은 이렇게 초라하게 성리학이라는 그릇에 담겨버려 권력싸움의 수단으로 무력화되었다. 성리학의 자기폐쇄적 구조는 외부세계의 변화를 능동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일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 서학과 천주학은 배척당하고 박해 받았다. 성리학 홀로 500년, 편협하게 남아 상황에 대한 인식을 올바로 할 수 없었고 결국 조선을 무너지게 했던 원인이 되었다.


인간이 당면한 모든 괴로움이 어떻게 해서 생기는지 그 근원을 찾아내어 뿌리째 없애버리는 길을 불교는 제시한다. 불교사상은 매우 다채롭고 복잡하다. 인도에서 성립 전개된 것만 하더라도 초기불교, 부파불교, 밀교가 있고 거기에다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전파되는 이른바 북방불교는 각 지역의 문화적 특수성과 결합되면서 독특한 발전을 이루어 낸다. 


한편 스리랑카 태국 등지로 전파된 불교는 또 다른 특색을 지닌 남방불교를 형성하기에 이른다. 중국인들은 일반적으로 실제적이고, 현세적인 민족이다. 처음 그들이 불교를 접했을 때 그들은 그 신비감으로 불교에 압도당했다. 그러나 그들은 특유의 방법으로 타국의 것을 자신들의 것으로 소화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 불교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불교를 수용하면서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불교를 만든다. 이것이 선종(禪宗)이다. 따라서 선종은 중국에만 있는 것으로 원래 인도에는 없는 고유한 것이다. 선(禪)은 마음을 고요히 하고 수행자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내적 의식에 대한 조용한 통찰력에 몰두하게 하는 목적을 가진 종교적인 수행을 말한다. 선(禪) 수행은 호흡을 조절하거나 하나의 대상에 마음을 집중함으로써 시작할 수 있다.



인도에서 창시된 불교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수입되었다. 곧 대부분의 불교이론이나 실천, 수행법 등이 중국대륙을 거쳐 한반도로 유입된 것이다. 이런 수용이 가능했던 전제는 불교가 민족 고유의 민간신앙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는 것이다. 불교는 너무나 유연하게 민중들의 삶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것은 ‘불교라는 종교의 교의와 사상을 융통성 있게 운용했다’기 보다는 불교의 핵심적인 상징을 민간신앙에 부여함으로써 어느 쪽도 잃지 않고 서로를 보완하는 길로 방향이 잡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3년 통일된 독일을 방문 했을 때 베를린 베벨 광장에 적혀 있던 문구를 기억한다.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 우리에게 서정시인으로 알려져 있는 하이네는 1933년 5월 독일판 분서갱유 사건을 증언하며 “책을 불태우는 곳에서는 언젠가 인간을 불태울 것이다!” 라고 적어놓았다. 당시 칼 마르크스, 지그문트 프로이드, 하이네 등의 책들이 나치에 의해 ‘반독일출판물’로 몰려 대대적으로 소각되었다. 


독일의 전쟁희생자 추모기념관에는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를 형상화한, 캐터 콜비츠의 피에타상이 중앙에 놓여 있다. 분단의 아픔을 상징하는 베를린 장벽의 파편은 관광객들의 상품이 되기도 했지만, 그 잔해를 그대로 남겨두고 전쟁의 아픔을 잊지 않고 기억하도록 하고 있다. 홀로코스트 추모공원은 시내의 중심가에 자리 잡고 있고,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행적을 그린 기록들이 시민들이 이용하는 버스정류장에도 붙어 있다. 


20년이 지난 2014년 방문했던 쾰른에서도 동일한 체험을 했다. 쾰른 대성당 건너편 쾰른 역사 앞에 서 있는 기념비에 “독일인들이여! 우리들이 자행한 만행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바로 아우슈비츠로 유대인들을 실어 나를 때 유대인 군중들을 집합시켜 소지품들을 빼앗고, 정돈하던 장소에 죽음의 추모 기념비를 세워 놓은 것이다. 독일은 전 국토가 하나의 ‘고해성사’와도 같다. 그들은 과거를 철저히 기억하고 반성하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간다. 그들의 잘못도 빠짐없이 기록하면서 부끄러움 보다는 하나의 과정으로 기억한다. 그것이 독일 정신의 힘이다.


▲ 지난해 3월 1일,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시위에서 한 시민단체가 ‘과거잘못 사죄하라’는 피켓을 들고 발언했다. ⓒ 곽찬


무너뜨리고, 지우고, 감춘다고 과거가 사라지거나 축소되거나 수정되는 것이 아니다. 부정하고 싶은 역사의 기억도 지금 현재에 의미 있게 작용하고 있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다른 것들과 조화를 이루며 통합되어 있으며 문맥이나 상황의 전개를 끊고 그들을 분리하면 그들만의 고유한 존재이유가 손상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식과 사상의 통합과 통일이 요구된다. 큰 줄기를 잡는 통섭의 사고, 모든 것을 총괄하여 사고하는 ‘통합적 사고(Consilience Thinking)’의 영성이 필요한 시대가 왔다.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 불교와 성리학, 그리고 그리스도교는 서로 대립하여 소멸될 것들이 아니라 서로에게 서로가 영향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할 것들이다.


어떤 곳에서는 분명히 영성의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느님 없이 사회를 건설하거나 그리스도교적 뿌리를 없애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곳에서는 “마치 과도하게 개발되어 사막으로 변하고 있는 땅처럼, 그리스도교가 결실을 맺지 못하고, 스스로 고갈되어가고 있습니다” (『복음의 기쁨』 86항)



[필진정보]
지성용 : 천주교 인천교구 용유성당 주임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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