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서울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교회와 여성, 함께하는 여정’이란 주제로 제18회 한국그리스도인일치포럼이 열렸다.
이날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박은미 박사(한국가톨릭여성연구원 대표)는 “여성들이 교회를 위해 활동할 수 있는 공적인 자리를 늘려, 여성목소리가 더 많이 반영되는 구조로 교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에 대한 차별·배제·폭력 문제들 중 가정폭력 문제를 꼽으면서, 가톨릭신자인 피해 여성은 ‘혼인 불가해소성’이라는 교리 때문에 장기간 폭력에 노출이 돼도 참고 견디는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또한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이 ‘한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는 데서 성의 불평등과 왜곡된 성 고정관념에서 발생되는 ‘사회적인 문제’라는 인식으로 전환돼야 한다면서, 가정사목 관계자들의 관심이 폭력 피해를 당한 이들에 대한 사후 지원뿐만 아니라, 폭력을 예방하는 일에 더 맞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신앙 공동체 안에서의 성범죄, 친족 사이 성범죄와 유사한 양상
이어 지난 2월 불거진 성직자 성폭력 사건을 언급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사제와 신자의 관계를 가족관계로 자주 지칭한다”면서 “그런 사제에게 당하는 성범죄는 친족 사이에 벌어지는 성범죄 특징과 유사한 양상을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근친성학대 관계가 비밀리에 일어나듯 신앙 공동체 안에서의 성범죄도 사제가 신자에게 베푸는 은밀하고도 유일무이한 시혜의 외양을 띈다는 것이다. 피해자는 비밀을 폭로했다가 보복 당할지 모른다는 개인적인 두려움과 이 폭로가 신앙공동체에 미칠 파장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박은미 박사는 피해자의 인권 보호에 초점을 맞춰야 하며, ▲피해자의 말을 믿는 것 ▲피해 사실이 피해자 잘못이 아니라는 것 ▲피해 사실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공동체 구성원들이 드러낼지 모르는 다양한 2차 피해를 막는 것이 피해자를 보호하겠다는 자세라고 설명했다.
언어에 대한 재검토 작업 심화돼야
‘한국 개신교회와 여성-해방과 억압의 길항 속에서’라는 주제로 양현혜 목사(이화여자대학교 교수)가 발제를 이어갔다.
양현혜 목사는 “‘여자의 일생은 자기를 희생하여 남편을 도와주고 자식을 도와주다가 끝나는 고귀한 것’이며, 어머니는 살림을 위해 하늘이 보낸 천사라는 논조의 설교 속에 나타나는 ‘사랑’ ‘모성’이란 종교적 상징의 언어들은 여성들만의 희생과 인내를 강요하고 그것을 미화하는 도구로 오용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한국교회에서 여성은 남성의 보조자로서 신분에 순응하고 부엌과 아이들 방을 지키는 주부의 일과를 처리함으로써 ‘착한 여자’가 되어 원죄에 대한 면죄부를 받는다는 성차별의 논리가 일정한 세력을 점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말했다.
양 목사는 1989년 설립된 여성이 주체가 된 대안적 신앙공동체 ‘여성교회’를 언급했다. 여성교회에서는 공동의식에 사용되는 절대자 지칭이나 언어, 설교, 찬송가 등에서 여성비하나 배제의 성차별적 언어를 없애는 것에 주의를 기울였다고 말했다.
기존 찬송가를 개사·편찬한 ‘우리 찬송가’에 잘 나타나있는데, 가사에서 가부장적이고 계급적인 언어인 ‘아버지, 주, 교회의 머리’ 등을 평등한 언어인 ‘하나님, 예수’ 등으로 대체한 것이다.
그러면서 “교회 공동체 내에서 여성의 평등하고 온전한 참여를 실현하기 위해선 인간의 의식 세계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규정하기도 하는 언어에 대한 재검토 작업이 앞으로 더욱 심화돼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마지막으로 양 목사는 “‘한국 개신교 여성의 주체성’을 모색하기 위한 급진적인 시도의 질을 유지하면서 주부적인 자아상 속에 안주하고 있는 많은 기성 교회 여성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확대·대중화 해나갈지가 큰 과제”라고 짚었다.
이날 한국신앙과직제 공동의장인 김희중 대주교는 “‘교회와 여성, 함께하는 여정’이란 테마는 앞으로 우리가 더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첫 출발이 될 뿐만 아니라, 실제 삶 속에서 총체적인 인격체로서의 존재 가치와 의미를 드러내는데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