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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는 냉정한 현실 인식이다.
  • 지성용
  • 등록 2018-07-09 12:34:52
  • 수정 2018-07-12 17:2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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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2017년 4월 발간된 지성용 신부의 책 『복음의 기쁨, 지금 여기』 가운데 일부입니다. 독자들과 나누기 위해 저자의 허락을 받고 <가톨릭프레스> 시대의 징표 코너에 매주 월요일 연재 합니다. - 편집자 주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과 함께 걸었던 두 제자의 변화를 생각해본다. 그들은 길을 함께 걷는 동안 주님을 보지 못한다. 예수는 길을 걷는 동안 그들에게 모든 예언서와 율법서의 핵심을 다시 한 번 말해준다. 그때 길을 걷던 제자들이 말한다.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설명해 주실 때에 우리가 얼마나 뜨거운 감동을 느꼈던가?(루카 24, 32)” 그때서야 제자들은 예수를 알아본다. 그리고 빵을 떼어 나누어 줄 때 비로소 온전한 의미를 깨닫고 넘어서 보게 된다. 


오늘날 이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을 때 비로소 각자 오늘날 이 세상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듣게 된다. 그럴 때 복음의 뜻이 뚜렷해지면서 가슴이 뜨거워짐을 체험할 것이다. 성경의 말씀을 묵상할 때 자신에게 복음의 의미가 새롭게 발견됨을 알며 가슴은 주님의 현존을 느끼게 될 것이다. 


본당 안에 흩어져 있는 소공동체는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의 엠마오 체험을 자주 접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날 사람들이 안고 있는 문제 그리고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주님과 함께 걸어가면서 성경을 읽고 주님의 것을 추구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향해 마음을 열 때, 당신의 계획을 우리가 알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하느님은 지금도 계속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에 소공동체는 정기적인 복음 나누기를 실천한다. 우리의 상황에서 그분의 메시지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겸허하게 기도하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우리가 정직하고 겸허하지 못하다면 자신을 속이는 것이 되고, 이 때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자신의 원의 소리를 듣는 것뿐이다. 다른 많은 말 중에서 그분의 말씀을 찾는 것이 우리 최상의 목적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공동체들은 복음묵상과 복음나누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다.


또, 공동체들이 복음을 읽고 연구하는 것은 서로를 더 가깝게 해주기 때문이다. 공동체 성원 각자가 다른 사람과 말씀을 나누는 것은 서로의 마음을 열고 믿음의 체험을 통해 소속감과 일치, 연대를 체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험은 공동체가 서로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를 깊이 알게 한다. 


말씀은 우리들의 영혼뿐 아니라 현실 안에서도 역사하시며 그 선하심을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많은 사람들과 여러 곳에서 함께하심을 찬미하게 되고 그분의 행보에 함께 하게 된다. 이럴 때 우리는 개개인의 이기심을 극복하는 것을 배우고, 나눔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므로 복음을 읽고 연구하는 모든 작업들은 우리를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어 준다.


우리나라 그리스도교 신자들 최대의 함정은 바로 ‘하늘나라’ 혹은 ‘하느님 나라’, ’천국’의 개념이다. 신앙인들은 천국을 단순히 공간적 대상으로만 이해하고 있어서 여러 가지 폐단이 생겨나고 다양한 사이비 종교들도 대부분 이상적인 나라와 상태를 설교하며 성장했다. 과연 하늘나라는 어디에 있는가?


구약성경 후기 문헌들은 훨씬 더 빈번하게 이것을 언급하고 있다. 억압의 고통 때문에 하느님 나라를 포기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느님께서 직접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시는 하느님의 나라가 올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실상 이 나라가 바로 오지 않자 더욱더 먼 미래에 성취될 사건으로 기대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바로 예수가 사람들에게 ‘하느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 한 것이다.


성경 연구는 모든 믿는 이에게 열려 있는 문이어야 합니다. 계시된 말씀이야말로 우리의 신앙을 전수하려는 모든 노력과 교리교육을 근본적으로 풍요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복음화를 위해서는 하느님 말씀과 친숙해져야 합니다. 복음화는 교구, 본당, 교회 단체들이 개인이나 공동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 읽기를 장려하면서도, 진지하고 지속적인 성경연구의 기회를 제공할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맹목적으로 하느님을 찾지 않습니다. 혹은 그분이 먼저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맹목적으로 기다리지도 않습니다. (『복음의 기쁨』 175항)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시오. (마르코 1, 15)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선포는 곧 ‘전복’을 의미했다. 억눌리고 어둠 속에 갇혀 있던 상태에서 벗어나 로마인들을 학살하고 그들에게 빌붙어 부역하던 사람들과 손가락질하던 주변국 사람들까지 한꺼번에 뒤집어 버릴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그것이 곧 ‘이스라엘의 정화’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 길고도 지겨운 고통,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그리스, 그리고 로마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이어진 지배와 고통의 여섯 세기. 그들의 ‘하느님 나라’는 이러한 외세의 억압 역사에서 해방의 메시지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회개는 냉정한 현실 인식이다.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고 그 잘못을 스스로 고치려는 자각이 복음을 들을 수 있는 대전제다. 현실에서의 내 잘못을 씻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잘못을 바로 잡고 옳은 일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실에서의 실천이야말로 복음을 들을 수 있는 전제 조건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사회경제 체제에 살든지, 변화 후에도 여전히 인간은 고통, 고뇌, 고난, 질병과 죽음에 마주 한 실존적 존재로서 절망 속에서 불안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실망스러운 실존적 상황이지만, 우리가 예수의 부활을 생각한다면 뚜렷한 의미와 가치가 새롭게 발견된다. 세상에서 그 어떤 고통을 겪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부활한 한 인간의 고통과 죽음에서 드러나는 새로운 의미를 흔들지는 못한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그 어떤 부조리, 엄청난 고난, 지독한 외로움, 공허와 허무, 죄악과 무의미조차 사람 곁에 계시는 하느님과 함께 극복 해내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실존상황이 환상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부조리한 세상을 피할 방법은 없다. 절망하지 말고 미래를 보고 버텨낼 수 있는 힘을 우리는 가져야 한다. 부조리하게 살라는 것이 아니라 견뎌내라는 것이다. 부조리에 맞서 싸우라는 뜻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정신을 가진 우리는 세상의 모든 부조리와 그 원인을 보면서 개인과 사회 모두 심오한 수준에서 훨씬 더 잘 투쟁할 수 있게 되었다. (한스 큉, 『나는 왜 여전히 그리스도인인가?』)


▲ ⓒ 곽찬


겨자씨와 누룩은 썩어야 비로소 제 기능을 한다. 자신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곧 소아(小我)를 버리고 대아(大我)를 향하는 것이다. 복음을 믿으며, 나의 작은 이익을 버리고 더 큰 대의를 위해 스스로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를 땅에 파묻고 스스로 썩기를 바라기란 어렵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힘은 바로 복음에 대한 나의 믿음과 기쁨을 통해 나온다. 


지금까지의 나의 편협과 아집과 욕심에서 벗어나 그 복음을 실천하고 베푸는 것이 바로 나를 '‘어서 커다란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신앙은 자신으로부터의 이탈이다.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에서 ‘탈출’하는 것이며 약속의 땅인 ‘여럿이 함께’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초월이다. 초월은 중심이며 핵심으로 나아가는 것이지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복음은 하느님의 나라에 관한 것입니다. (루카 4,43 참조) 복음은 이 세상에서 통치하시는 사랑의 하느님에 관한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 가운데서 통치하시는 그만큼, 사회생활이 보편적 형제애, 정의, 평화, 그리고 존엄을 위한 바탕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적 가르침과 생활은 모두 사회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찾고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오 6,33) 예수님의 사명은 당신 아버지 나라의 문을 열어주는 일입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오 10,7)는 기쁜 소식을 선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복음의 기쁨』 180항)



[필진정보]
지성용 : 천주교 인천교구 용유성당 주임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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