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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형제 까치들이여, 먹기는 먹되 우리 것도 조금은 남겨 두시게나!’
  • 전순란
  • 등록 2018-08-06 11:21:04
  • 수정 2018-08-06 11: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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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5일 일요일, 구름 많음


공소 가는 길. 아직 덥지 않은 아침 7시. 해가 아직 솔숲 뒤에 서성거리는데 부지런하지만 얄미운 물까치들만 이른 아침을 먹느라 우리 배 밭을 떼거지로 드나든다. ‘후여~’ 소리를 지르려다 ‘성당 가는 길’이라 프란치스코 성인을 흉내 내서 점잖게 ‘형제 까치들이여, 먹기는 먹되 우리 것도 조금은 남겨 두시게나!’ 하였다.




공소에는 오랜만에 도정 김교수 부부, 체칠리아와 그니의 대녀 실비아도 예절에 참석했다. 실비아는 농사짓느라 힘들었는지 많이 야위었지만 소녀처럼 더 귀여워졌다. 그러고 보니 이 뜨거운 삼복에 농사일로 모두들 야위었고 팅팅 살찐 염치없는 사람은 우리 부부뿐!


내가 내일 서울에 올라가서 다음 주에나 내려오겠다는 얘기에 마치 생지옥을 방문하는 시인 단테의 신세라는 듯 딱한 눈으로들 쳐다본다. 딸네 손주를 봐주러 한 주간 다녀온 친구는 서울의 공기가 얼마나 나쁜지 배기가스와 열기로 숨쉬기도 힘들었다고, 마치 더운 찜기 속 수증기를 함께 쐬는 기분이었다고, 어딜 가나 빌딩 양편에 매달린 에어컨 실외기에서 뿜어 나오는 공기로 인해 골목길은 더 힘들었다고, 이렇게 몸살하는 ‘어머니 지구’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치료를 할지 대책이 있긴 하는지 답답하더라고 호소했다. 지리산은 서울보다 좀 더 시원하다며 이상기후를 남의 일처럼 생각할 일이 아니더라고도 했다.




윗동네 강영감 부부는 요즘도 하루 한두 번 휴천재 앞을 오르내린다. 그 집 논이 우리 동네의 문전옥답이어서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논에서 산다. 나와 마주칠 때마다 아낙은 오늘처럼 눈을 흘기고,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안녕하쇼?’라는 인사를 건네는 보스코는 강영감을 못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지독한 욕설을 듣기도 했다. 몇 해 전 그 집 아들이 강변에 공장을 지으려는 것을 휴천강의 오염과 진주 상수원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우리가 저지한 까닭이다.


이틀 전 휴천강에 바람을 쐬러 갔다 윗동네에 혼자 이사왔다는 남정을 처음 만나 수인사를 나누고 우리 집 ‘초록기와이층집’을 얘기하자 ‘아~ 그 교수댁!’ 하면서 자기가 이사 오자마자 우리에 대한 ‘엄청난 소문’을 들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하기야 함양읍에서도 어떻게든 이 동네 강씨 성바치들과 인연이 닿는 읍민들을 만나 내가 수인사를 하다보면 휴천강 공장터 얘기가 맨 먼저 나온다.



점심은 블루베리 밭일을 하고 더위에 지쳐 돌아오는 진이네와 함께 먹었다. 준비한 밥상에 수저만 올리면 된다. ‘밥은 나누어 먹는 것’이라고 우리 조상님들이 일러 오셨으니까. 이 ‘꿀벌 부부’를 볼 적마다 ‘부디 잘 살아요’하는 축원이 절로 난다. 저녁나절 진이아빠는 마당과 감동 쪽에서 예초기를 돌려 깔끔하게 이발해 놓았다. 



스.선생이 15년 걸려 지은 ‘솔바우’를 도회지 사람에게 팔았고 그 위에다 새로 집터를 닦는단다. 김교수댁에도 요즘 불도저를 불러 집터들을 닦는 중이란다. 토마스2도 임사장네 죽염공장 앞에 마련해 둔 터에 올 가을 집을 지을 작정이고… 지리산 도정마을은 요 몇 해에 완전히 별장터로 바뀌었다.


그런 집터 공사들도 보고 싶은 호기심도 동하고 김교수댁 마당 끝 골짜기에서 물놀이를 하자고 귀촌댁들 다섯이 오후에 모였다. 하지만 그 심산유곡마저 물이 말라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졸졸 흐르고 있어 물놀이는 포기했다. 동네앞 휴천강도, 진주 일대의 식수원 경호강까지 말라가니 주변의 모든 게 걱정거리다.



휴천재에서 내 차가 서는 주차장은 식당채 옆, 독일가문비나무 밑. 한동안 산골에서 지내니 차가 먼지투성이 개구쟁이 같고 가문비나무에서 송진이 떨어져내려 앞유리가 마냥 지저분하다. 진이네 물컴프레셔를 빌려 차 소제를 하고 퐁퐁을 발라 앞유리창의 송진을 닦아내고 있으려니 모기들도 떼로 몰려와 구경을 하면서 내 다리를 맛을 보려 난리다. 


한 여름 밥상에 몰려드는 파리를 쫓느라 음식을 천천히 먹으라고, 모기가 없으면 ‘한여름밤의 꿈’이 너무 깊을까 하느님이 파리와 모기를 만드셨을까? 그런 건 당신 창조 목록에서 빼셨어도 되는데… 하기야 당신 눈에는 미운 게 하나도 없겠지만…


일기를 쓰는 시각이면 불빛을 찾아드는 나방들, 자세히 보면 참 고운 피조물들이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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