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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甲)질, 을(乙)들의 연대, 그리고 병(丙)과 정(丁)의 침묵 - 부끄러운 침묵 그리고 사제의 삶
  • 지성용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8-09-03 15:28:11
  • 수정 2018-09-10 11:5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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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들이 무너지고 있다. 권력의 갑이었던 대통령이 촛불로 무너졌다. 기업의 갑이었던 삼성 이재용을 구속시켰다. 군인들의 갑이었던 기무사를 해체하고 다시 편성한다. 국정원, 검찰, 법원, 국회, 대학, 문화예술 등 어디 하나 빼 놓지 않고 갑들의 횡포가 드러나며 세인의 지탄을 받는다. 그러나 아직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한 영역 그곳은 바로 종교다. 


무너지지 않는 ‘갑’ 


대구 희망원과 대구가톨릭대학교의 여러 가지 문제들이 공영방송 < MBC >를 통해 보도되면서 유투브 및 SNS를 통해 많은 이들이 문제의 실상을 알게 되었다. <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는 고발프로그램에서 의혹을 제기한 충주성심맹아원 사건의 진실이나, 인천의 성모병원에서 일어난 알고 싶지 않은 사실들이 교회의 치부로 드러나도 교회는 흔들리지 않았다. 


조계사 문 앞에서 88세의 노스님이 사십일이 넘게 단식을 하며 조계종을 개혁해야 한다고 외치다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계신다. 총무원장 설정스님의 학력위조와 은처자, 재산은닉 문제가 < MBC PD수첩 >에서 ‘큰 스님에게 묻습니다’로 보도 되면서 많은 불자들과 신앙인들은 종교의 사회적인 역할에 대한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그래도 청와대 관련 수석은 “종교 문제는 종교 안에서 해결하기를 바란다,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부패한 승려의 손을 잡아주고 돌아갔다. 설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천주교 대구교구는 평신도 임성무(전 대구정의평화위원회 사무국장) 선생을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지난 2016년 10월 8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대구교구의 희망원 운영 비리 및 인권침해 의혹을 제기했다. 방송에서 임성무 선생은 천주교대구교구가 일제강점기 때에는 일본에, 군부독재 시기에는 박정희와 전두환 군부에 협력한 것부터 반성해야 한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했다는 것이 고발의 이유다.  



사라지는 ‘을’


이러한 ‘갑’들의 횡포에 ‘을’들은 연대하여 ‘갑’들의 문제를 지적하고 변화와 쇄신의 길을 가고자 했으나 문제를 제기한 ‘을’들이 사라지고 있다. 청주교구의 전 정평위 사무국장 김은순 씨는 청주사제폭행문제와 충주성심원 문제 등을 고발하다 교구 정평위를 그만두게 됐다. 


‘갑’들은 처음엔 대응하지 않는다. 대응하면 사태를 더욱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을’들의 약점이나 치부를 찾아보려 한다. 없으면 억지로라도 만들거나 왜곡하거나 확대하거나 때로는 가짜뉴스를 은근히 주변에 확산시킨다. 또한 ‘을’ 안에서 갈등을 조장한다. ‘을’들 안의 또 다른 ‘을’을 통하여 문제를 제기하며 문제를 제기한 ‘을’을 고립시킨다. 그들에게 동조하는 ‘을’들에게 불이익을 주며 연대하려는 ‘을’들의 시도를 원천봉쇄한다. 그리고 문제를 제기하는 고립된 ‘을’에게 견딜 수 없는 심리적 압박을 보이지 않게 은근히 행사한다.


침묵하는 ‘병’과 외면하는 ‘정’ 


조계종의 설조 스님은 목숨을 건 단식 중에 “내가 이렇게 목숨을 걸고 단식을 하는 이유는 총무원장 설정이나 권승들이 미워서가 아니라 조계종이 이렇게 썩도록 침묵하고 외면하고 방관하고 동조하는 사부대중들을 깨우치게 하기 위함이요”라고 말씀하셨다. 


해당 종교의 사제들이나 승려들은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제기하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고 손가락질한다. ‘너는 얼마나 깨끗한데?’라는 식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있나?’라는 식이다. 실제로 조계종의 문제를 제기한 승려 적광 스님을 조계종 호법부 승려들이 감금 폭행하고 강제로 제적원에 사인을 하게하면서 현재 적광 스님은 정신적 충격과 몸의 병으로 승려생활뿐 아니라 일상생활 유지가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그러나 실제로 폭력을 행사한 이들은 종단에서 권력과 돈을 주무르는 주요한 보직에서 여전히 일하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은 더하다 볼 수 있다. 거꾸로 문제를 제기한 명진 스님이나 도정 스님 등 많은 의식 있는 승려들은 자리 보존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됐다. 최근에는 명진 스님이 권력의 주요한 사찰대상이었다는 것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청주교구에서 벌어진 충주성심맹아원 장애아동 의문사 사건 역시 자식이 죽었는데 부모가 정확한 사인도 알지 못하고 자기 딸을 묻어야 했던 황망한 사건이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이 죽었는데 이유도 모른 채 아이를 땅에 묻을텐가! 세월호 사건이 2014년부터 2018년 지금까지 이렇게 부모들을 멈추지 못하게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세월호는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없이는 절대로 끝날 수 없는 사건이다. 진상규명을 하는 과정 중에 그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그래도 한 때 정의를 구현한다고 이름이 알려진 사제가 “대법원의 판단이 났는데 그것을 믿지 않는다는 말인가?”, “이제 교구도 가만있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부분이었다.


사실관계를 명확히 해야 할 것은 충주성심맹아원 장애아 의문사 사건의 과실치사 혐의에 대해 2심 무죄판결에 대한 상고를 대법원이 기각한 것이지 사망의 원인이나 사망에 이르게 된 경위가 모두 무죄가 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판결에는 당시 담당교사의 '업무상과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명확하게 명시하고 있다. 더욱이 민사소송에서는 '현저하게 불성실한 보호감독의무의 이행은 일반인의 수인한도를 넘는 것으로서 그 자체로서 장애인 거주시설에 입소한 망인이 적절하고 충분한 보호감독을 받아야하는 권익을 침해하는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명시하면서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같은 사건에서 관련된 이들의 침묵에는 이유가 있다. 인사권과 예산권을 쥐고 있는 정점의 일인, 갑 위의 갑, 슈퍼갑, 슈퍼 울트라 갑의 ‘역린(逆鱗)’을 건드릴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당장 사찰의 ‘주지’자리나 성당의 ‘주임’자리를 흔들 수 있는 문제가 되고 나의 절의 운영과 성당의 운영, 나의 자리보전에 중차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침묵 그리고 사제의 삶



2018년 1월 엄동설한 어느 날 인천 숭의동의 선술집에서 교구의 호인수 신부님과 민주노총 김창곤 위원장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이후에 호신부님은 이 사건을 회상하며 빛두레 주보에 이렇게 적어 놓으셨다. 

 


“정작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겁니다. 왜 300명이 넘는 신부들 가운데 누구 한 사람 나서서 교구의 잘못을 지적하고 시정을 촉구하는 분이 안 계십니까? 왜 전태일 열사 같은 분이 없습니까? 신부는 왜 되셨습니까? 무엇이 두려우십니까? 왜 모두 눈 감고 고개 숙이고 계십니까?” ‘왜’, ‘왜’를 계속하는 그의 목소리는 처절했다. 아, 그랬구나! 그가 오늘 내게 하고 싶은 말은 주교와 일부 병원 신부들에 대한 성토가 아니었구나! 부끄러웠다. 한없이 부끄러워서 그의 눈을 똑바로 볼 수조차 없었다. 순간, 나는 결심했다. 그래! 고해를 하자! 참담한 심정으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미안합니다. 입이 열 개라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솔직하게 고백하겠습니다.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적지 않은 신부들이 교구의 실태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거나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도 매일 미사 드리고 성사를 집행하는 데는 별 지장이 없으니까요. 다른 하나는 알고 있고 관심이 있어도 애써 모른 체하고 입을 다문다는 겁니다. 여기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신부들이 가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사제 생활은 불편과 부족을 거의 느끼지 못할 만큼 풍족하거든요. 홀아비 사정은 과부가 잘 아는 법인데 저희들에게는 가난하고 외로운 과부가 되어야겠다는 절실함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신부가 가난하다면 지금보다는 한결 정의롭고 치열해질 텐데요. 둘째는 공연히 목소리를 높이다가 주교의 눈 밖에 나면 나만 손해라는 얍삽한 이기심 때문입니다. 비겁합니다. 남 얘기가 아닙니다. 제가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회개하려는 용기가 없으니 용서해 달라는 말씀조차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그의 두 눈이 촉촉이 젖는 것을 나는 보았다. 

(호인수, ‘빛두레’ 제1360호, 열린교회로 가는 길)



자리에 있던 분들이 하나 둘 돌아가고 신부님을 전철역까지 모셔다 드리면서 나는 속으로 신경림의 갈대를 읊조리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덧붙이는 글]
다음은 <공동선> 9,10월호에도 실린 글입니다.

[필진정보]
천주교 인천교구 용유성당 주임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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