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쌀 짓는 사람들이 곡기를 끊었다
  • 강재선
  • 등록 2018-10-04 18:39:55
  • 수정 2018-10-04 18:40:45

기사수정


▲ 농업·밥상 살리는 농정 대개혁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 중인 농민들 ⓒ 강재선


지난 달 초부터 농민들이 문재인 정부의 ‘농정 실종’을 지적하며 단식투쟁에 나섰다. 이들은 정부와 국회가 국내 농업을 보호하고 먹거리 안전을 보장하라고 ‘무작정’ 천막을 치고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주로 먹거리를 만들고 지키는 일을 천직으로 삼던 이들이 곡기를 끊고 단식을 해 가면서까지 절박하게 요구하는 일은 무엇일까. 지난 2일, 청와대 인근에 자리를 잡은 단식농성장을 찾아가 이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작은 천막 안에서 누군가는 23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누군가는 열흘을 단식한 후 건강이 나빠져 잠시 중단한 상태였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연대의 의미로 새로 단식을 시작해 열흘째, 사흘째 함께 굶고 있었다.


지난 2일, 단식농성장 상황


진헌극 (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국민연대 공동대표와) - 단식 23일째

김영규 (GMO반대전국행동 조직위원장) - 단식 23일째

박웅두 (정의당 농민위원장) - 단식 11일째

김정택 (환경농업농민회) - 단식 3일째

유영훈 (전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이사장) - 10일 단식

채성석 (전 친농연 정책위원장) - 10일 단식


대체 이들은 왜 굶기 시작했을까. 


이들은 지난달 10일, 농업과 먹거리 분야의 적폐청산을 목표로 무기한 단식을 시작했다. 용감한 농민 네 명의 단식이 시작되자 다른 농민들과 시민단체, 먹거리 단체들이 연대하여 ’국민 먹거리 위기, 농업적폐 청산과 농정대개혁 촉구 국민농성단‘(이하 국민농성단)이 결성됐다.


자동화된 농업 단지 ‘스마트팜 밸리’?, “농업의 4대강 사업”


▲ 스마트팜 혁신밸리 조감도(예시) (사진출처=농림축산식품부)


국민농성단은 농업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해 생산성을 증대시킨 스마트팜(smart farm)으로 구성된 단지 ’스마트팜 밸리‘ 조성을 반대하고 GMO 완전 표시제 도입과 초‧중‧고교 친환경 무상급식 제공을 원한다고 했다. 


김정택 회장은 지방선거 출마로 인해 농식품부 장관과 청와대 농업비서관이 자리를 비운 5개월 사이에 박근혜 정부 당시 농민들이 저지했던 ‘스마트팜 밸리’ 사업이 다시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스마트팜 밸리를 다룬 <경향신문>의 지난 7월 보도와 이에 대한 농식품부의 해명자료를 종합하면, 스마트팜 밸리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까지 정작 지역농민들을 대상으로 의견을 듣거나 함께 고민해보는 자리가 마련되지 않았다. 


<경향신문>이 입수한 내부 문건에 따르면, 스마트팜 밸리 사업은 박근혜 정권의 ‘ICT창조마을사업’이라는 모델에서 그 연관성을 찾고 있다. 이후 농식품부는 해명자료를 내고 “스마트팜 밸리는 농가소득 개선을 위해 추진된 ICT창조마을사업과 직접 관련성이 없다”고 해명하고 이번 사업이 “청년이 농업에 유입되는 구조를 만들고 취약한 산업 인프라를 개선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보도들을 살펴보면 ‘ICT창조마을사업’에는 분명 스마트팜 보급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남주성 전 의장과 김정택 회장은 선정지역 당 1,800억에 달하는 정부 지원금 대부분이 스마트팜을 건설하는 건설 업체들에게 돌아간다면서 기술, 유지보수비용 문제로 인해 청년이든 지역농민이든 개별 농민이 이를 유지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남 전 의장은 “안 그래도 부족한 농업 예산으로 왜 그런 (지속 불가능한) 일을 하는지 (알 수 없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들은 입을 모아 스마트팜 밸리 사업이 ‘농업의 4대강 사업’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서 나온 첫 농업 얘기가 스마트팜 밸리라는 것이 황당하다”고 전했다.


결국, 지역농민들이 이어온 기존 농업과의 상생 또는 기존 농업 환경의 개선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뿐만 아니라 기술을 통한 생산성 개선과 청년 일자리 창출이라는 관련성 없는 의제들을 연결한 것은 이들을 더욱 황당하게 만들었다. 


▲ ⓒ 강재선


기대만큼이나 큰 절망… 그러나 ‘그래도 간다’


김 회장은 “올해 농업계에 폭염 등 여러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농업에 대해 한 마디도 없었다”고 한탄하며 “더이상 기다릴 틈이 없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그동안 정부가 추진한 여러 적폐청산 작업들을 보며 “촛불로 들어선 정권이라고 해서 ‘뭔가 바뀌겠구나’라고 대단히 기대했지만 농업만큼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단식 3일차였던 김 회장은 문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며 “제 아무리 정치가 표를 따라간다고 한들, 때로는 정치가 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대통령이 나서서 국민들을 향해 농업을 살리고 먹거리를 책임지겠다는 메시지를 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각오로 단식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GMO, 표시를 해 둬야 국민들이 판단할 것 아닌가


김 회장은 GMO에 대해 그 위험성을 지적하기보다는 ‘국민의 선택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차원에서 ‘완전 표시제’를 주장했다. 김 회장은 “미국 눈치를 본다고 쳐도, 국민의 선택권은 우리나라가 보장해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GMO시민청원단’이 지난달 GMO 완전 표시제를 시행하라며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렸고 서명 20만을 넘어 정부가 답변을 내놓았다. 그러나 김 회장은 청와대의 답변이 “검토할 것이 많다며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식약청의 얘기를 되풀이했다”고 평가했다.


▲ 지난 4월 21일, GMO완전표시제시민천원단은 청와대 분수광장 앞에서 GMO완전표시제 22만 국민청원 기자회견을 했다. (사진출처=한살림)


김 회장은 이러한 문제들이 먹거리 생산과 건강, 즉 국민의 삶에 직결된 문제임을 강조하며 “소비자, 국민들이 자신의 문제라는 것을 알고, 이렇게 깨어난 시민들이 나서야한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GMO 완전 표시제, 친환경 학교급식 등과 같은 문제가 아이들을 위한 일임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민농성단은 지난 28일 청와대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기도 했으며, 지난 1일에는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을 열고 여야가 모두 ‘농정대개혁’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김 회장은 이러한 운동과 노력이 국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며 “막막하고 절망적”이라고 말하면서도, 그래도 희망은 놓지 않을 것이며 “해 나갈 것”이라는 각오를 보였다. 그의 너털웃음은 농민들의 무모하지만 간절한 바람을 꾹꾹 눌러 담고 있었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