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서 전쟁종식과 영구적 평화를 향한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분단한반도를 살아가는 국민이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색해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참여정부 시절 바티칸주재 대한민국대사를 지낸바 있으며 지난 해 5월 문재인 대통령 취임특사로 교황청에 다녀온 성염 전 대사와 천주교 청주교구 신성국 신부가 만나 ‘그리스도인의 눈으로 한반도 평화만들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 편집자 주
신성국 :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부터 시작된 남북의 획기적인 사건이 계속해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3차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2차 북미정상회담까지 앞두고 상황입니다. 이 같은 상황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 성염 : 제가 청년 시절부터 꿈꿔왔던 정치 현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눈앞에서 실제로 일어나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정치사회적 비극 그 뿌리에 남북 분단이 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우리 그리스도교가 지니고 있는 사회복음이 신앙인들에게 전달되지 않고, 성직자, 수도자들에게도 이해되지 않는 그런 상황마저도 똑같이 남북 분단과 얽혀있는 반공 이데올로기와 연관이 있다는 것이 제 확신이었습니다.
그걸 어떻게든 교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극복하는 일에 마음을 써왔기 때문에 남북 정상이 만나고 북미회담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니 꿈인가 생시인가 하는 감격을 느낍니다. 이를 꿈꾸고 추구했던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나셨는데, 이를 보고 돌아가셨다면 정말 ‘주님 이제는 제가 눈감게 해주셔도 됩니다’라는 기도를 올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일이 새벽처럼 우리에게 찾아왔습니다. 어찌 보면, 2006년부터 박근혜 정권 탄핵에 이르기까지 촛불이 바라는 역사가 이어져 남북 평화로 전환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세월호 침몰 등 정치지도자들의 무책임과 방관, 문화예술계, 학계를 자신들이 다 조종하려하고 핍박하는 행태를 국민들이 느꼈고 촛불로 모였습니다. 그것이 유혈사태로 번지지 않고 정권을 교체한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사적인 일을 이루었습니다. 세계가 놀라고 역사에 오래 기억될 사건입니다.
‘꼴찌가 첫째가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될 것이다’라는 구절을 요즘 묵상하고 있습니다.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분단입니다.
- 맞습니다. 제가 교황대사로 근무할 당시, 그 쪽 외교관들에게도 심지어 교황님께도 만나서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을 때 마다 꼭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컨대 제가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님 미사에 참석해서 5분 정도 말씀을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 “교황님, 제일 먼저 방문하실 나라는 대한민국입니다. 전 세계 유일하게 분단된 국가입니다. 그 나라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서 교황님의 정신적인 격려가 필요합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제 눈을 지긋이 쳐다보시며,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라고 답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두 세 달 후에 한국 방문을 결정하셨습니다. 꼴찌가 첫째가 된 것입니다.
지난 9월, 평양과 백두산에서 남북정상들이 만나는 장면은 감동과 충격을 주었습니다. 대사님께서는 3차 정상회담의 2박 3일을 어떻게 보셨습니까?
-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은 백두산입니다. 저는 2008년에 신부님들과 함께 백두산을 방문했습니다. 북한에서 보내온 고려항공으로 평양에 직항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비행기를 통해 삼지연으로 가서 차편으로 백두산 장군봉까지 올라갔습니다. 정말 맑은 날이었습니다. 여기가 ‘우리나라의 영기가 모여 있는 곳이구나‘하고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그런 자리에 남북 정상이 손을 잡고 오르지 않았습니까. 이는 역사에 길이 남을 사진이고, 전 세계가 감격하는 장면이겠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아주 성스러운 장면입니다.
두 번째 장면은 능라도 5·1경기장 연설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본 제 아내는 “남한 북한 공동 대통령이네”라는 말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자리에 모인 회중들이 다 함께 일어서 갈채를 보내고 환성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우리 겨레가 이렇게 절실하게, 외세가 만든 분단에 편승한 반민족적인 집단을 제외하고는, 우리 민족이 통일을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를 보았습니다.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남북 공통대통령’이라는 말씀은 대단한 상상력입니다. 저도 언뜻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대사님께서는 바티칸주재 한국 대사로 재직한 경험이 있으시고, 이미 그 이전에도 젊은 시절 이탈리아에서 유학을 하셨습니다. 새 정부 들어서 대통령 특사로 교황청에 다녀오셨지요?
- 지난 해 5월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주교님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 취임 특사로 다녀왔죠. 이틀 동안 체류했습니다.
특별히 바티칸에 특사를 보낸 것은 의미가 더욱 깊었습니다. 지난해 북핵 위기가 초절정에 달해, 전 세계 언론이 ‘4월 위기’라고 부르던 때가 있었습니다. 미국 스텔스기가 평양을 언제 폭격할 것인가 하는 것이 전 세계 관심사였습니다. 그런 긴장 상태에서 유일하게 한반도를 편들어준 발언이 교황청에서 나왔습니다. 이집트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지금 한반도에서 미국과 북한이 치킨게임을 하고 있는데, 거기서 비극이 일어나면 많은 수가 죽는 것이 아니라 전 인류가 위기에 처할 수 있습니다”라고 심각하게 말씀하셨죠.
새로 출범한 정부에서도 당시 북핵 위기, 4월 위기에 유일하게 한반도 편을 들어준 발언에서 힌트를 얻어 특사를 보낸 것이고 내용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디모데오라는 가톨릭 신자가 대통령이 돼서 인사를 드리니, 많은 기도와 지도를 바란다’는 내용의 친서를 적었겠지요. 김희중 대주교님이나 저나 평소 우리나라에 대한 생각을 그곳의 고위층들과 나누고 싶었는데, 그런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입니다.
교황청의 세계적 위상, 대한민국에선 잘 모른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과 ‘한반도’ … 가장 위험한 두 가지 문제
문 대통령 취임 이후 미‧중‧러‧일에 특사를 보냈는데 여기에 바티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럽 내 독일, 프랑스와 같은 큰 나라에 특사를 보내지 않았고 바티칸을 선택한 것은 한반도 문제에 교황님이 중재 역할을 해주십사하는 정부의 요청, 메시지가 담겨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저도 그렇게 보았습니다. 바티칸이라는 곳이 우리나라 경복궁 정도의 좁은 땅이지만, 실제로는 13억 가톨릭 신자를 거느리고 있는 종교단체입니다. 바티칸이 가지고 있는 국제적 위상과 정치적 영향력을 적어도 현 정부는 파악한 것입니다. 이전 정부들은 그런 개념이 없었습니다. 가령 교황이 편들어 한 마디 해주면, 미국 대통령의 발언과 같은 비중으로 전 세계 국제 언론에 보도가 됩니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파악한 것입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교황청이 가진 국제적 위상을 대한민국에서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국민들도, 정치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예전에 통일외교위원회가 이탈리아에 감사차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이탈리아주재 한국대사관만 감사를 하고, 바티칸은 감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그분들과 식사를 하는데 당시 국회의장이 ‘대사님은 월급을 한국 주교단에서 받습니까, 교황청에서 받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만큼 바티칸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것이군요.
-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한민국 정부 외교관이고 정부에서 월급을 받습니다”라고 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아, 그러면 여기도 국감을 했어야 하는데”라고 웃고 넘어갔습니다. 이것이 바티칸에 대한 우리나라의 인식입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1960년대 쿠바 사태가 있었습니다. 당시 쿠바에 소련이 미사일 기지를 만들자, 당시 미 대통령이 미사일 부품을 싣고 오는 소련 선박을 검색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소련 선박이 오자, 케네디 대통령은 함대를 보냈습니다. 여기서 충돌이 발생하면 바로 핵전쟁이었습니다. 그 지경에 이르자 미국도 소련도 자존심 때문에 뒤로 물러설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교황 요한 23세가 케네디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여러분들의 자존심을 가지고 인류를 몰살 시킬 수는 없습니다’라는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그러자 케네디가 ‘당신은 세계 평화를 생각해주는 분입니다’라고 말했고 이를 명분으로 함대를 돌렸습니다. 위대한 정신지도자의 권고를 받아들였다는 명분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황청 대사로 근무할 당시 이탈리아 밀란의 한 언론에 기고를 한 고르바초프가 ‘교황 요한 바오로2세라는 인물이 없었으면 동구권은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소련의 마지막 수상의 말이었습니다. 그가 폴란드를 움직이고, 폴란드 노조를 움직이고, 더 이상 폴란드를 체코와 같이 진군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동구권 전체가 동요했고 우리로서는 사회주의를 포기해야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게 바티칸의 위상이 큽니다.
한 가지 더 기억할 것은 제2차 이라크 전쟁 당시, 거의 모든 아랍 국가원수들이 끝까지 전쟁을 막아달라고 호소한 인물은 바로 교황이었습니다. 교황도 특사를 두세 번 부시 대통령에게 보낸 바 있습니다. 전쟁이 발발하던 날 요한 바오로2세가 ‘하늘 무서운 줄 알아라’라고 부시에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전 세계가 교황청을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가 특사로 가서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 가톨릭교회가 추구하는 복음 선포는 ‘생명’과 ‘평화’ 가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올해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특별히 한반도 문제에 대한 평화 메시지를 여러 차례 발표하셨습니다.
- 그 이전부터도 있었습니다. 우선 교황청에 가서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니 얼마나 악당이냐. 교황청은 이를 어찌 규제할 것이고 국제 제재에 어떻게 참여할 것이냐’라고 묻는 것은 안 됩니다. 오히려 평화, 화해, 용서의 논리가 통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교황청주재 대사로 취임해서 노무현 대통령의 서한을 전달했을 때, “한반도를 잘 부탁드린다”고 말하자 교황께서 긴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이는 한국 정부에게 보내는 메시지였습니다. 이미 한반도 핵문제가 부상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교황님 메시지 중에서 ‘한반도가 강제로 쓰라린 분열을 겪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평화를 시도하는 것을 보고 감탄했습니다. 6·25같은 분단의 아픔이 있지만, 미래를 바라보며 화해와 대화로 간다는 것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 전체의 평화를 가져올 것입니다’라고 격려하셨습니다.
이 때 대량살상무기, 핵무기는 교황청 입장에서는 ‘점진적으로 평등하게 결연하게 해결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중에서 제 마음에 탁 걸린 말은 ‘평등하게’라는 말이었습니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하고 있으며 그것 때문에 위기다’라고 답할 수도 있었겠지만, 교황님의 메시지에는 ‘평등하게’라는 말이 들어있었습니다. 실무자들과 대화를 나눠보니 ‘여러분(한국)은 미국과 수시로 합동훈련을 하고 핵우산을 쓰고 있는 반면 북한이 가진 재래식 무기가 얼마나 유치하냐. 그러니 어디에 의지하겠는가?’ 라는 의미가 담겨있다는 식으로 암시를 주었습니다.
교황청이 얼마나 세계정세를 객관적으로 보는지 깨달았습니다. 일 년 후 성탄 메시지에서도 “한반도에서 진행하고 있는 대화, 서로 우호적인 마음으로 위험 요소를 극복하라”고 했습니다. 일본 대사가 교황청을 찾아와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거론했을 때도, 그에 대한 직접적 대답보다는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오로지 협상으로 해결되어야 합니다. 당사자가 존중되어야 합니다”라고 답하며 한쪽을 몰아붙이지 말라고 답했습니다. 특히 당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원조를 중단하지 말라고 호소했습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이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북한의 가장 취약한 계층에게 돌아가는 인도적 지원을 좌우하는 조건으로 협상을 삼지 말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교황청을 방문하여 회담을 가졌을 때, 핵무기 경쟁에 대해 “제발 평화로운 방법으로 해소하십시오. 협상을 위태롭게 할 일체 행동을 시도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교황청에서는 이러한 얘기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교황들은 이념에 상관없이 복음적 관점에서만 접근한 것인가요?
- 사회복음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 세계 지성인들이 바티칸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 한반도 사태가 터지면 세계 대전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국제 정치 전문가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과 ‘한반도’ 문제를 가장 위험한 두 문제로 꼽습니다. 그러니 평화를 보전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인류의 화약고 중 하나가 한반도인 것이군요.
-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그 점을 확실히 보여주셨습니다. 전 세계에서 제일 먼저 찾아온 곳이 대한민국이었습니다. 그동안 교황께서도 한반도를 돌아다니며 많은 것을 보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지막 떠나는 날 명동성당 미사에서 “남북이 한 형제다”라는 말을 일곱 번이나 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증오, 거리감을 누그러트리기 위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로마로 돌아가면서, 전 세계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기자들과의 대담에서 “제3차 세계대전이 시작 되었네요”고 말했습니다. 그것도 pèzzo a pèzzo, ‘조각조각’ 시작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뒤로 교황께서 전 세계를 다니며 약 일곱 번 정도 같은 발언을 했습니다. 저는 그 말에 놀랐습니다. 한반도에 와서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그분께서는 전 세계 여러 분쟁을 보고 그런 얘기를 한 것이겠지만 교황께서는 우리나라 성직자, 정부 요인들의 얼굴에서 어떤 느낌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긴장이 완화되자 교황청 입장에서는 얼마나 반가운 일이었겠습니까.
교황께서는 평창 올림픽 때 축하 메시지를 보냈고 심지어 교황청 대표도 왔습니다. 4월 부활 대축일에도 “한반도에서 진행되고 있는 대화가 평화로 이어지길 기원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같이 기도하자”고 말하고 그 자리에서 함께 신자들과 기도를 했습니다. 또, 4월 26일에도 “4월 27일 판문점에서 분단된 한국의 두 정상의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됩니다. 같이 기도합시다. 한반도 평화는 물론 전 세계 평화를 보장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6월 12일 삼종기도연설에서도 “사랑하는 한국 국민들에게 특별한 우정과 기도를 보냅니다. 싱가포르에서 북미정상회담이 열리고 있습니다. 전 세계 한반도의 평화를 보존하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맙시다”라고 말하며 기도하셨습니다.
특히 교황님의 부활절 메시지의 경우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데, 수많은 국가들의 문제가 있음에도 한반도를 위해 기도하자고 한 것은 우리 입장에서는 매우 큰 감동입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분단에 고착화되어 무뎌지지 않았는가 반성을 하게 됩니다.
-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반공주의자라면서 ‘북한을 상대로 핵 공격을 하자, 탱크를 몰고 들어가자, 참수부대를 보내자’는 말을 합니다. 이런 말을 하는 가톨릭신자가 있다면 이들은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 평화의 기도를 바치면서 증오와 전쟁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니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성직자들 역시 정의구현사제단과 같이 민족의 통일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는 사제들이 있는 반면, ‘무슨 민족이냐, 벌써 70년 분단이면 끝장이다’라면서 씨를 말려야한다는 식의 가혹한 이야기까지 하는 사제들도 있습니다. 이는 교황님들이 말씀하신 용서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주교님들은 북한을 찾아가고, 인도적 원조를 보내기 위해 노력하는 주교님들이 있고, 북한에 대해 모든 것을 단절시키고 적대감을 유감없이 표현하는 주교님들로 갈라져 있습니다.
결국 이런 이견들에 따라 교황이라는 최고지도자의 입장이 공식 입장이 됩니다. 물론, 이데올로기 문제는 자유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사회복음을 통해 요한 바오로2세도, 베네딕토16세도 끊임없이 한반도를 걱정하며 세계 유일 분단국의 긴장 완화를 바라는 메시지가 나올 때 우리는 이를 따라갈 만합니다. 한반도 분쟁이 단순히 한반도 화약고가 폭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구 전체가 폭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제재할 것인가’ 아니라 ‘어떻게 평화롭게 해결할 것인가’
제도로서의 그리스도교는 어떤 역할을 했는가
시대가 정식으로 교회에 사회복음을 요구한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파견된 특사단은 한반도 평화에 관해 교황청에 어떤 제안을 하셨습니까?
- 마침 저희가 도착한 날이 트럼프 대통령의 교황 알현이 있던 주간이었습니다. 다른 국가 원수들도 여럿 왔었기 때문에 교황님과 직접 만날 수 없었고 미사 때 전달을 했습니다. 대신 국무원장인 파롤린 추기경과 만나 긴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분도 교황님의 걱정에 따라 심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거의 한 시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이야기를 나누며, 파롤린 추기경으로부터 “여러분은 어떤 해결책을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고 저희들은 “미국과 북한의 직접적인 대화와 더 나아가 통상까지 간다면 그것이야 말로 한반도 영구 평화의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또한, 지금 합동군사훈련을 하면 북쪽에서 얼마나 긴장을 하겠느냐는 이야기도 전했습니다. 그러니 “알겠다. 교황님께 전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후일에 듣기로는 파롤린 추기경의 말씀을 듣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거의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곧 북미 2차회담이 열린다고 하니 교황님의 호소력이 대단하구나 생각했습니다.
특사단이 단순히 인사차 방문한 것이 아니라 내용을 제대로 가지고 교황님을 뵈러 가신 것 같습니다. 참 큰일을 하고 오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북한 핵문제에 대한 성 대사님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 제 개인적인 입장은 성인이 되신 교황 바오로 2세의 “점진적으로, 평등하게, 결연하게 해결되어야 한다”는 말씀이 정말로 동서를 초월해서, 남북을 초월해서, 북미를 초월해서, 가장 지혜로운 이야기 같습니다. 북핵 무기 개발과 관련해 제가 가장 놀랐던 것은 제2차 이라크 전쟁이 터졌던 새벽 영국 수상이 방송에 등장해서, “다음은 북한 차례다”라고 말한 것이었습니다. 북한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미국에 가장 충실했던 사담 후세인이 어찌 제거되었는지, 미국에 맞서던 카다피가 어떤 종말을 맞았는지를 알고 있는 마당에, 북한으로서는 (핵 외에는) 기댈 것이 없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북한은 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남북 회담, 북미 회담이 열리고 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것을 동등하게 대접받는 것을 전 세계가 보게 되었습니다. 결국 북한은 목적을 달성한 것이니 버릴 때가 된 것입니다. 핵무기를 먹을 수도 없고, 쓸 수도 없으니 포기하겠다고 결정한 것입니다. 대신 우리에게 제재를 풀어주고 대등한 국가 관계를 인정해달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 입장이 이해가 됩니다. 문 대통령 역시 그 점을 십분 이해했던 것 같습니다.
또 하나 기억할 것은 제가 대사로 부임할 당시 첫 핵실험을 했습니다. 그러자 유엔 총회 및 안보리에서 제재를 결의했고, 당시 기자들이 바티칸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당시 국무원장이자 제 은사이신 베르토네 추기경에게 기자들이 “바티칸은 어떻게 이 제재에 동참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저는 그 대답이 오늘까지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이런 사태에 직면해, 바티칸은 어떻게 북한을 제재할 것인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사태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하고 긴장의 국면을 전환시킬 것인가를 고민하고 의논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기자들이 어떤 질문도 다시 하지 못하고, 조용히 썰물처럼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지금도 바티칸이 북핵 문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입장입니다.
우문현답이네요. 그만큼 교황청에서는 한반도와 북핵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철저히 복음 정신과 사회복음화의 입장이네요.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미국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북미 대화를 하라고 트럼프에게 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 천주교회도 교황청의 입장과 보조를 맞추며 한반도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 실제로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가 특사단으로 간 것도 한국 주교단이 이 정권에서 추진하고 있는 남북 대화와 평화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고 후원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번 평양 방문에도 김희중 대주교가 수행했는데, 거기서 나온 합의문에도 주교회의가 즉시 동조하고 협력하고 지지하겠다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의 기본 입장이 평화와 화해, 용서와 인도적 지원으로 결론이 맺어진 것입니다.
유럽연합의 경우를 보아도 그렇고 전 세계가 대륙들끼리 연합하고 동맹하고 공존하고 번영하는 시대로 발전해나가고 있습니다. 유럽연합이 우리 한반도 분단 상황에 주는 교훈이 클 것 같습니다. 대사님께서는 유럽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반도 분단 체제를 극복하고자 하는 현 정부의 방향이 그리스도교 정신에 합당하고 올바른 것이라고 보십니까?
- 그렇습니다. 이보다 정확하게 그리스도교와 복음에서 담고 있는 사회교리, 사회복음을 실현할 수 없습니다. 독일과 프랑스, 프랑스와 영국이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헤게모니 다툼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장벽을 허물었습니다. 하나 기억해둘 것은 2004년 유럽연합 탄생에 가장 큰 공을 한 것은 독일 아데나워 총리와 프랑스 대통령뿐 아니라 바티칸이었습니다. ‘하나 되는 것’은 그리스도가 마지막으로 남기신 소원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 때 로마에 모여서 서명을 함으로써 유럽연합이 출범되었습니다.
당시 유럽연합 헌법 첫 구절에 ‘유럽연합은 그리스도교를 뿌리로 하는’이라는 말이 들어가기를 바랬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그리스도교 신자인 국가수반들이 모인 유럽연합 헌법에 이런 구절을 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의문을 가지기도 했는데, 어떤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자유, 박애, 평등이 가톨릭 복음서에 들어있다. 하지만 제도로서의 그리스도교가 2000년 동안 근대에 이르기까지 현대 유럽의 탄생에 이바지했는지는 의문스럽다’고 평가했습니다. 그 때부터 교황청은 더욱더 사회복음, 사회교리를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아시는 것처럼 이는 바티칸 공의회가 끝난 후 제2차 주교시노드가 ‘정의 구현이 복음선포’라고 규정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평신도화(laicizzazione)’, 즉 종교지도자들의 훈수와 지도를 받지 않은 정치가들, 이들은 이미 성숙한 평신도들이죠. 저는 21세기를 평신도 시대로 규정합니다만 시대가 정식으로 교회에 사회복음을 펴기를 요구한 것이며, 국제 평화와 환경을 개선하는 풍토를 복음을 통해 펴지 않으면 그리스도교의 존재 의미가 어디 있겠느냐고 말한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한반도에 대한 교황청의 관심과 적극적 의사 표명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리스도교가 복음의 정신을 충실히 따를 때, 세상 안에서 빛을 주고 신뢰를 받지만 제도에만 묶여있다면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고 이는 결국 외면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 유럽연합 창립과정에서 드러난 것이군요. 저는 이번 3차 남북정상회담을 봤을 때, 철저히 사회복음에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 우리가 참 좋은 정치지도자를 만난 것 같습니다. 박근혜는 율리안나, 비서실장 김기춘은 스테파노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디모데오, 임종석 비서실장은 프란치스코입니다. 같은 천주교 신자임에도, 두 정권이 이뤄놓은 것이 이렇게 다른 것은 사회복음을 받아들이고 실천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에 따라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분단문제를 극복할 것인지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어떻게 시대의 징표를 이해하고 발 맞춰 살아갈 수 있을지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시간 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팟케스트 방송 ‘목소리’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