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부설 평화나눔연구소는 지난 12일 한국 천주교의 관점에서 장면 박사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대한 기여와 한국전쟁 전후 장면 박사의 행적을 재해석하고자 ‘평화를 위해 일한 가톨릭 선구자 장면’이라는 주제로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서울대교구청에서 열린 이번 심포지엄에는 평화나눔연구소장 최진우 한양대 교수를 비롯해 한홍순 주 교황청 대한민국 대사와 평화나눔연구소 자문위원들이 참여했다. 특히 이 자리에는 장면 박사의 아들, 장익 주교도 참석했다.
이날 발표에서는 장면 박사가 활발한 해외활동과 교황청과의 협력을 통해 대한민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주목을 끌어냈으며 가톨릭 가치를 실현하며 국내 정치를 펼친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조연설에서 한홍순 전 주교황청 대사는 장면 박사에 대해 “하느님께서 우리 민족의 참다운 인간화와 복음화를 위해 일할 일꾼으로 선택하여 양성하신 것”이라고 말하면서 UN의 대한민국 정부 인정을 비롯해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참전에 기여한 사실을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독실한 가톨릭신자로서 교황청의 협력을 이끌어내 대한민국 정부 승인 및 서강대학교 설립과 같이 “교황청이 한국에 대해 우호적 조치를 취하는 데에 긍정적인 구실을 했다”고 평가했다.
한 전 대사는 장면 박사가 이승만 정부 국무총리직과 내각 책임제 하의 총리직을 수행하며 “그리스도인 정치인으로서 사회 질서 재건에 가톨릭 사회 원리를 흔들림 없이 그대로 실천에 옮기려 하였던 것”이라고 총평했다.
뮈텔 주교가 안중근과 장면에게 보인 서로 다른 태도
홍성군 창원대 교수는 장면 박사의 일생을 검토하고, 뮈텔 주교가 안중근과 장면에게 보인 서로 다른 태도를 비교했다. 3·1 운동을 폄하하고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고해성사를 거부하는 등 일제에 협력하거나 적어도 상황을 방조했다는 평가를 받는 과거 한국 천주교회가 장면 박사와 같은 인재를 키우는데 인색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장면 박사가 이를 토대로 훌륭한 평신도이자 지성을 갖춘 정치인이 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홍 교수는 내각제 하에서 실질적 권한을 가지고 있던 장면 총리가 5·16 군사 쿠데타가 벌어지자 가르멜 수도원에 54시간 은신하고 사태를 방관하고 결국 총리직을 사퇴함으로써 쿠데타를 인정했다고 비판받는 점에 대해서 “이러한 행동으로부터는 어떤 비겁함도 추론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위험이 발생했을 때 숨는 것이 상황 대처의 기본”이라고 옹호했다. 장면 박사의 행적이 “싸움에서 마침내 평화를 선택한 것”이라고 해석하며 “세상의 눈에 조롱거리요 패배의 상징으로 비쳤겠지만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공로이자 진정한 승리”라면서 밀알과 같이 바닥에 떨어져 썩음으로써 “민주와 평화의 초석”이 되었다고 말했다.
가톨릭 정치가로서 장면 요한의 삶
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1980년대 이후 한국현대사의 주체”가 “민중”이 되는 연구자들이 사학계의 주류가 되면서 “외교관으로서 장면이 쌓은 대한민국의 승인과 6·25전쟁 유엔군 참전을 이끌어 낸 외교적 성과는 묻히고 대신 남북 분단을 공고히 한 역사의 죄인이 되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당시에는 “반공 이데올로기가 남한 지식인들 대다수의 지지를 얻었던 정치적 이념”이라면서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남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는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국공로자이자 이승만 독재에 맞선 민주투사”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업적 인정하지만, 아쉬움 많은 행적
토론자로는 신정환 교수, 전 통일부 장관 홍용표 한양대 교수 그리고 한홍순 전 교황청대사가 참여했다.
신정환 교수는 가려진 장면 총리의 업적을 인정하면서도 “의문점들이 제대로 재평가되어야 앞으로도 장면 총리를 존경한다는 논리가 더 단단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막스 베버의 말을 빌려 “자기 일의 결과를 생각하고 그 결과에 대해 역사와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책임윤리”와 “양심에 따라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느님에게 맡기는 신념윤리” 중에서 장면 박사는 “정치가로서의 책임윤리보다는 도덕군자로서의 신념윤리가 강했던 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고 평가했다. 신 교수는 그러면서도 장면 박사가 “책임윤리도, 신념윤리도 없는 정치가 횡행하고 진영논리가 지배하는 우리 시대 정치계에게 경종을 울리는 모델이 되고 있다”면서 “장면 박사의 윤리가 돋보이는 기회가 많이 왔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홍용표 교수는 앞선 두 발표가 강조했듯이 “UN의 대한민국 정부 승인과 같은 장면 박사의 족적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것”에 안타까움을 표하면서도 “정치인으로서의 장면 총리의 행적을 평가해보면 큰 족적이 있으나 분명 아쉬운 점이 있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5·16 군사쿠데타가 발발한 이후 가르멜 수도원에 54시간동안 칩거한 이후 총리직을 사퇴한 사실에 대해 “인간적 고뇌, 인간존중, 평화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었다”면서도 “이렇게 행동했어야만 했는가는 의문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쿠데타는 결국 초헌법적, 불법적 행동이고 불의”라면서 “빨리 나와 조치를 취하면 되지 않았을까”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또한 홍 교수는 지나치게 미국 의존적인 장면 총리의 태도를 지적했다. “주한미군사령관이 작전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한국의 지도자가 사령관에게 책임지고 처리하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용기 있는 지도자의 모습인가?”라고 질문했다. 그리고 쿠데타를 피해 관저에서 피신했을 때도 처음 향한 곳이 미국대사관, CIA 사택이었다고 지적하며 장면 총리는 부통령 때부터 이승만이 자신을 제거하려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미국대사를 만날 때마다 나를 보호해줄 수 있겠냐고 물어봤다”고 말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것과 (보호해줄 수 있는 사람이) 미국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런 한국 지도자를 미국은 어떻게 평가했을까 하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고 평했다. 홍 교수는 “지도자라면 (쿠데타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리더십을 발휘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하며 “지도자로서 헌정을 지키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결론 내렸다.
한홍순 전 대사는 토론을 마무리하며 평가가 엇갈리는 장면 전 총리의 행적에 대해 “정권을 수호할 것인지 (국민의) 생명을 수호할 것인지의 문제는 이미 정치활동에 들어서면서부터 장 박사의 내면에 있었던 갈등”이라고 지적하며 가톨릭 신자로서의 장면이라는 점에서 장면 총리의 정치 행적을 되짚어 봐야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