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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포럼] 가톨릭의 권위주의
  • 김근수 편집장
  • 등록 2015-06-15 11: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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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톨릭교회의 위기와 권위주의


한국 가톨릭은 한국 개신교가 낳은 증오의 범죄를 닮지는 않았다. 그러나 서양 교회사에서 가톨릭의 증오 범죄는 많았고 대규모였다. 개신교가 ‘타인은 악마다’라고 주장한다면 가톨릭은 ‘나는 천사’라고 말한다. 내가 천사라는 말이 타인은 악마라는 뜻을 논리적으로 포함하진 않지만, 정서적으로 타인을 나보다 아래 사람으로 얕잡아보기 쉽다.


가톨릭은 하느님이 주신 구원의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덜 관용적이기 쉽다. 더구나 진리를 안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권력을 독점하려 애쓰기 쉽다. 진실로 진리를 아는 사람은 권력을 멀리 하는데 말이다. 


권위주의는 외적으로 가톨릭교회 밖에 구원은 없다는 태도로, 내적으로 가톨릭교회의 핵심은 성직자라는 주장으로 나타난다. 즉 교회권위주의와 성직자권위주의 두 가지 모습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동안 가톨릭교회는 자신을 권위 있는 조직으로 여겨왔다. 그 자신감은 대단했다. 그런데 왜 가톨릭은 지금 크게 흔들리고 있을까. 오늘 가톨릭교회의 근본 위기는 어디에 있는가. 이 문제를 논의하려면 ‘가톨릭교회는 스스로 무엇으로 생각하는 가’ 라는 질문을 먼저 거쳐야 하겠다. 그러기 위해서 가톨릭교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트리엔트공의회와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살펴보아야 한다. 


트리엔트공의회는 루터의 개혁운동에 대응하기 위해 열렸다. 가톨릭은 개신교와 어떻게 다른가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공의회는 두 차례 세계대전을 가톨릭교회가 막지 못하고 지켜본 무기력에서 벗어나고 현대세계의 질문에 응답하기 위해 열렸다. 


공의회란 교황이 전 세계의 주교들을 소집하여 교회의 중요한 문제를 토의하고 결정하는 회의다. 공의회는 교황 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교황은 공의회 없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공의회는 오직 교황만 소집, 중단, 취소시킬 수 있다. 교황은 누구에 의해서도 심판받지 않는다.



2. 가톨릭 권위주의의 근거와 역사


가톨릭교회의 권위주의와 성직자 권위주의는 서로 부추기며 상승작용을 한다. 권위주의의 신학적 근거와 역사적 경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권위주의의 근거와 경험을 둘로 나누어 분석하기는 쉽지 않다. 이론은 순수한 백지 상태에서 출발하지 않고 이미 있는 역사적 바탕에서 시작하고 진행되기 때문이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가 서양철학을 ‘존재망각의 역사’라고 표현했다면, 그리스도교는 ‘하느님나라 망각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는 하느님나라를 선포했지만, 우리 앞에 막상 나타난 것은 교회’라는 독일 성서학자 마틴 켈러의 말이 있다. 논란되지만 주목할 만한 지적이다. 


그리스도교의 특징인 ‘철학 과잉, 역사 빈곤’의 긴 시대가 서양 역사에서 전개된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를 이해하면 가톨릭신학은 대부분 아는 셈 아니냐’라는 핀잔이 여전히 들린다. 특히 가톨릭은 예수의 인성, 신성, 삼위일체, 신 존재증명 등에 몰두하고, 하느님나라, 가난한 사람, 불의에 저항 등을 잊어 왔다. 


이 문제는 예수의 역사를 최초로 기록한 마르코복음에서 시작되었다. 마르코복음 첫 문장은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복음 또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 두 가지로 번역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예수가 복음의 주어인가 목적어인가’라는 논쟁은 오래 계속되었다. 


여기서 예수는 주어이자 목적어이다. 예수는 복음을 선포하는 주체이고 동시에 선포되는 대상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역사는 선포하는 예수에 주로 집중하고 선포되는 예수를 자주 잊었다. 


“당신은 베드로입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마태오복음 16,18) 라는 구절을 가톨릭은 예수가 가톨릭교회를 세운 근거로 보아 왔다. 성서신학이 발달하기 시작한 19세기 이후 이 해석은 많은 도전을 받았다. 


이 구절을 낳은 공동체에 베드로의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 구절을 족보 의미에서 연대기적으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역사의 예수가 어떤 교회도 세우지 않았다는 사실은 20세기 성서학계에 상식이 되었다.


교회권위주의는 예수가 가톨릭교회를 세웠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생전의 예수가 가톨릭교회를 친히 세웠고, 초대 교황으로 베드로를 직접 지명하였다는 것이다. 오직 가톨릭교회만 예수에게 직접 연결된다는 것이었다. 


이를 지탱하는 신학적 근거로 사용된 성서구절은 이것이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복음 16,18-19)


18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발전한 성서신학의 연구 성과는 이런 전통적 이해를 흔들어 놓았다. 오직 마태오복음에 나타나는 이 구절을 둘러싸고 많은 논의가 빚어졌다. 그 다양한 논의를 다 소개할 수 없지만, 결론은 이렇다. 


예수는 교회를 세우지 않았다. 예수는 교황 제도를 제정한 적 없다. 이런 이해는 이제 가톨릭에서도 상식이 되었다. 예수는 가톨릭교회를 세우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예수 정신을 받들고 이으려고 가톨릭교회를 세웠다. 


예수가 원한 교회는 무엇인가. 그 교회는 곧 가톨릭교회라고 가톨릭은 이해하였다. 16세기 개신교의 개혁운동에 대응하는 가톨릭의 트리엔트공의회 이후 발간된 사제들을 위한 ‘로마 교리서’는 “그리스도의 나라는 곧 교회다(regnum Christi, quod est ecclesia)”라고 말했다. 하느님나라와 교회를 동일시한 말이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7성사를 제정하였다. 7성사를 온전히 집행할 자격을 갖춘 계급은 오직 성직자라고 선언하였다. 하느님나라는 곧 가톨릭교회요, 가톨릭교회는 곧 성직자인 셈이다. 성직자는 교회의 주인이요, 신자는 구경꾼으로 자리 잡았다. 가톨릭교회의 지배층은 성직자요, 신자는 피지배층이다. ‘주교 있는 곳에 교회 있다’는 격언이 트리엔트공의회를 한마디로 보여주었다. 


예수가 7성사를 친히 만들었다는 트리엔트공의회의 주장도 20세기 가톨릭에게 난감하게 되었다. 가톨릭 신학자 칼 라너는 이 곤경을 헤어나도록 도와주었다.: 예수에게 직접 연결되는 성사는 세례성사와 성체성사다(미사). 나머지 5성사는 예수 정신에 어긋나지 않는다. 예수가 7성사를 직접 제정하였다고 신학적으로 우기지 않고도 7성사를 예수 정신에 연결하여 설명한 것이다. 


20세기 중반까지도 가톨릭교회는 인간 평등을 인정하지 않았다. 가톨릭 신자와 다른 사람이 어떻게 평등하며, 성직자와 신자가 어떻게 평등하냐는 말이다. 20세기 중반까지도 가톨릭교회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았다. 


가톨릭 신앙을 믿을 자유는 있어도 다른 종교를 믿을 자유는 없다는 말이다. 20세기 중반까지도 가톨릭교회는 민주주의를 찬성하지 않았다. 세레 여부에 따라, 성직자 여부에 따라 인간은 다르다는 말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소집한 교황 요한23세는 개막연설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답답한 창문을 활짝 열어 신선한 공기가 교회로 들어오게 하라.” 교회 안에 갇힌 가톨릭교회를 잠에서 깨우는 외침이었다. “시대의 징표를 복음의 빛으로 해설”하라는 구절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 되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1962-65) 하느님이 원하는 교회는 곧 가톨릭교회‘이다’(est)가 아니라 가톨릭교회 ‘안에서 실현 된다’(subsistit in, 제2차 바티칸공의회, 민족의 빛 8)라고 선언하였다. 교회를 가톨릭교회와 동일시하지 않으며, 다른 교회도 하느님이 원하는 교회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개신교의 신학적 가치는 가톨릭에 의해 인정되었고, 가톨릭의 자만심은 한풀 꺾였다. 이것은 교회 역사에서 혁명적 선언이다. 개신교와 가톨릭의 대화는 논리적 근거와 힘을 얻게 되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교회는 인류 구원의 성사’(교회 헌장 9)라는 새로운 표현이 등장하였다. 교회는 그 조직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인류 구원에 봉사하는 도구라는 뜻이다. 이로써 교회 지상주의는 이론적 근거를 잃게 되었다. 인류 구원에 보탬이 되지 않는 교회는 존재 의미가 없는 것이다.


교회는 또한 ‘하느님 백성’(교회 헌장 9)이라고 선언되었다. 성직자뿐 아니라 평신도가 또한 중요하다는 말이다. 평신도의 중요성을 제2차 바티칸공의회처럼 강조한 공의회는 역사에 없었다. 신자 없는 사제 없다. ‘주교 있는 곳에 교회 있다’는 격언이 ‘교회 있는 곳에 주교 있다’는 말로 바뀐 셈이다. 


교회는 언제나 ‘정화가 필요하다’(교회 헌장 9)라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또한 선언하였다. 교회 쇄신을 위한 노력은 가톨릭신자들의 권리가 아니라 의무이다. 


그런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미결로 남겨둔 주제가 몇 개 있었다. 교회를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공동체적 성격을 강조한 부분과 교회를 수직적 위계질서로 표현한 부분이 교회헌장 문헌에 같이 포함되고 말았다. 보수파 주교들과 개혁파 주교들의 타협이 낳은 결과였다. 


그 후 공의회 정신과 교회에 대한 이해를 둘러싸고 각기 공의회 문헌을 인용하여 정당성을 주장하는 일이 생기게 되었다. 이 문제는 공의회 폐막 이후 계속되고 있다.


예수 등장 후 세 번째 천년기를 맞은 2000년 교황 요한바오로2세는 가톨릭교회가 역사에서 저지른 큰 죄 7개를 인류 앞에 공개 사과하였다. 갈릴레이 등에 대한 이단 심문, 십자군 원정, 유다인 차별, 다른 종교와 반목, 여성 억압, 기독교의 분열 등 교회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면서 용서를 구했다.


같은 해 한국천주교회 주교회의는 담화를 통해 천주교회가 민족 역사에서 범한 큰 잘못을 사과하였다. 한국사회에서 참된 복음의 표지가 되지 못하고, 민족의 수난기에 자주독립과 해방을 위한 노력에 크게 동참하지 못하였고,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에 소홀히 하였다고 반성하였다. 그러나 구체적이지 않고 추상적인 사과는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한민족 역사에서 가톨릭교회는 평신도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런 역사는 세계적으로 유일하다. 평신도들은 교회 조직보다 성서공부를 통해 하느님을 먼저 만났다. 조선의 신분차별에 저항하는 순교자교회로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들이 천주교회의 주도권을 쥐고 보수적 성직자교회로 탈바꿈시켰다. 


일제 강점기, 해방 공간 등 이후 역사에서 그 흐름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안중근 의사에 대한 냉대, 일제 식민지 시절 친일행위, 해방공간에서 미군정에 대한 협조, 유신시절 이후 군사정권과 밀월 등 한국천주교회의 어두운 역사는 아직도 제대로 처리되고 있지 못하다.


200년 전 선교 초기의 순교자들의 순교, 70년대 이후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일부 사제와 신자들의 공헌을 제외하면, 한국천주교회 역사는 대부분 가난한 민중들의 삶과 고통과 별로 관계없는 길을 걸어오고 있다. 


과거의 잘못을 지금 사과하면 어떻게 될까. 지금 잘못을 미래 사람들이 사과할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 지금 나는 맘 편히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지금 내 죄를 미래의 후배들이 내 대신 사과할 예정이므로. 사과가 가져오는 잘못된 관행을 말하는 것이다.  


남미주교회의는 1968년 메델린 문헌, 1979년 푸레블라 문헌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제2차 공의회정신에서 더 진전된 선언을 하였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규제받지 않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라는 표현으로 제2차 공의회정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교리적으로나 역사적 경험으로 보아 가톨릭 권위주의는 크게 힘을 잃었다. 가톨릭은 어쩔 수 없이 겸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종교에서 논리가 어디 힘을 발휘하던가. 종교 내부의 전통과 정서는 논리와 이론적 설명을 크게 압도하곤 한다. 이러한 가르침의 변화를 제대로 교육받은 신자는 거의 없다.


"ex opere operato"(성사聖事의 유효성은 성사 집행자(성직자)의 도덕적 품성에 관계없이 집행 행위에 따른다)는 교리가 가톨릭에 있다. 성사 집행자인 사제의 도덕 수준이 성사의 원천인 하느님의 자비를 훼손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하느님의 권한을 지키고, 사제들의 도덕 함양을 촉구하는 교리다. 


그런데, 이 교리를 잘못 해석하면 큰일이다. 사제가 제멋대로 살아도 성사 효력에 아무 지장이 없으니, 사제는 자기 관리에 소홀해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마치 성직자의 면책특권을 뒷받침하는 교리로 이해될 수 있다. 이 내용을 제대로 설명 듣지 못한 신자들이 많다.



3. 가톨릭은 권위주의를 버리고 가난한 사람에게 가야


‘모두 밖으로 나가시오’(extra omnes). 교황 선거를 시작하기 전에 투표자인 추기경들만 남기고 다른 사람은 모두 투표장 밖으로 나가라는 외침이다. 이 말을 “교회 밖으로 나가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충고로 연결하고 싶다. “사제는 출세에 신경 쓰지 말고 가난한 사람에게 가라”(프란치스코 교황)


가톨릭교회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인류 구원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인류, 그중에도 가난한 사람, 고통 받는 사람의 권위에 봉사해야 한다. 한마디로 가톨릭은 자신을 버리고 가난한 사람에게 무릎 꿇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을 성장시키는 모습이 진정한 권위다. 


가톨릭교회는 겸손해야 한다. 가톨릭성직자는 겸손해야 한다. 진리를 주우려면 몸을 굽혀야 한다.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 이야기(요한복음 7,53-8,11)에서 칼 라너는 이렇게 비유하였다. 세상 끝 날에 온 인류가 가톨릭교회를 끌고 와 하느님에게 고발하였다. 


‘하느님, 성서에 따르면 이 죄 많은 가톨릭교회를 돌로 쳐 죽여야 마땅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하느님은 고통스런 얼굴로 대답하였다. ‘여러분 중에 죄 없는 자부터 가톨릭교회를 돌로 치시오.’ 아무도 가톨릭교회를 돌로 치지 못하고 물러간 후, 하느님은 가톨릭교회에게 말했다. “가톨릭교회여, 다시는 가서 죄짓지 말라.”


가톨릭교회는 이 터키 속담을 기억해야 한다. “생선은 머리부터 썩는다.” 권력 있는 곳에, 권위주의 있는 곳에 부패 있다. 가톨릭교회는 교회와 성직자 탓에 썩어갈 수 있다. 역사는 그에 대해 풍부한 자료를 제시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에게 봉사하는 것이 진짜 권위다. 자신을 최고로 내세우는 가짜 권위주의를 버리고 고통 받는 사람의 권위를 존중하는 것이 진짜 권위주의다. 가톨릭교회가 최고라는 교회권위주의, 성직자가 최고라는 성직자권위주의를 얼른 버려야 한다. 이웃 종교, 평신도를 존중할 뿐 아니라 가장 먼저 가난한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 


그런 모습을 지닌 가톨릭교회를 기대한다. 가톨릭교회가 잘못된 권위주의를 버리지 않으면 가난한 사람을 존중하고 편들기 어려울 것이다. 예수는 잘못된 권위주의를 진즉 포기하였다. 자기를 높이는 권위주의를 버리고 남을 성장시키는 참 권위주의가 그리운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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