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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로 침몰하다 못해 메르스로 다시 침몰하는 사회
  • 전순란
  • 등록 2015-06-16 10: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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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15일 월요일, 맑음


서울에 오면 단시일에 할 일이 많은데 어딜 떠날 준비를 하자면 두 배로 바빠진다. 보스코의 콜레스테롤 약을 처방받으러 선내과엘 갔다. 원장님은 얼마 전 큰아들이 처방을 받아갔다면서 우리 가족에 대한 정겨운 인사를 건네신다. 


우리 부부만 아니고 아들도, 그리고 손자들도 진료비를 안 받으시며 ‘공짜클럽’으로 대우해 주셔서 늘 신세를 진다. 십몇 년 전 매맞고 가출한 여성들을 내가 돌보던 수년간 그니들과 그 자녀들을 무상으로 진료해주신 분이다.


그분의 정말 선한 인술을 볼 적마다 그분이 믿는 안식교가 참 좋은 종교라는 확신을 준다. 나는 고기만 먹으면 소화가 힘들고 얹힌다고 하소연했더니만 다음에 쓸개에 돌이 있거나 다른 이상이 생겼나 검사를 하자 신다. 그분의 종교야말로 육고기를 안 드는 관습이므로 우리처럼 가여운 생명들을 잡아먹으면서 소회가 됩네, 안됩네 하는 중생이 거련해 보일지 모르겠다.


여러 달 치 콜레스테롤 약을 처방받아 그 옆의 ‘파랑새약국’에 들렀더니 주인이 바뀌었다. 몇 달 전에 횡성으로 귀촌을 했단다, "서울은 사람 살 곳 못 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서울을 못 떠나고 공해의 아비규환 속에서 허덕이거나 그 약국을 물려받은 약사는 '사람 살 곳 못 되는' 땅에 버려진 가련한 중생이 되고 말았다. 나도 지리산을 떠난지 이틀만인데 벌써 돌아가고 싶지만....


메르스 덕분인지 서울의 병원도 사람이 없어 기다리지 않고 곧장 진단과 처방을 받았다. 요즘 메르스에 얹힌 한국사회를 보면 모종의 '정신적 염병'에 미쳐가는 사회 같다. 매춘언론이 박근혜-이명박 정권을 위한 국정원의 대선개입을 세월호로 가라앉혀버리더니 지금은 세월호를 메르스로 침몰시키고 있다는 느낌이다. 


세월호를 외면한 국민에게 저주처럼 내려진 역병 같기도 하고... 작년 한 달 내내, 그리고 지난 일년내내 끔직하게 침몰해가는 대한민국 ‘정치적 양심’과 '도덕적 나병'을 지켜봐야했는데 올해는 메르스로 박근혜도 보건복지부도 삼성도 함께 침몰하는 ‘의료적 양심’을 목격하는 중이다. 10kg 장비를 뒤집어쓰고 메르스환자들을 치료하는 의사나 간호사들은 또 무슨 죄람?



오전에는 덕성여대 안경점에 들러 태양이 작열하는 남구를 생각해서 도수 있는 선글라스를 주문하고, 세탁소에 달려가서 겨울옷들을 맡기고, 집에 돌아와 점심을 해먹고, 오후에는 빵고가 말한 대로 SK대리점에 찾아가서 핸드폰의 ‘컨트리락’과 ‘통신사락’을 해제해 달랬더니 아이폰은 나라마다 락을 걸어 요금을 내고 풀어야 사용이 가능하지만 삼성과 LG에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고 우리나라 통신사들도 그런 짓을 않는다는 설명이다. 


출국 한 번 하는데 핸드폰 데이터 요금 차단, 사용중단, 락 풀기, 칩 바꾸기 등으로 핸드폰이 이렇게 많은 일을 시킬지 몰랐다. 우리 편의를 위해 쓰는 기기가 인간을 그만큼 부리는 셈이다.


보스코와 5시 30분에 집을 나서서 종로타워라는 건물 33층의 ‘탑클라우드’라는 레스토랑에서 사돈네가 초대하는 저녁을 먹으러갔다. 인왕산과 북한산, 경복궁과 창경궁, 청와대와 광화문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경관이었다. 여러 명의 서비스를 받으면서, 말하자면 보스코의 외교관 생활을 접고 나서 참 오랜만의 우아한 만찬이었다.


만찬 중에 김대사님(주교황청)에게서 걸려온 전화에서 빵고가 며칠 전 베르토네 추기경(바티칸 전 국무원장[총리])을 위한 대사관저 만찬에 초대받아가서 파리나 추기경, 혼대주교, 살레시안대학교 총장 같은 고위성직자들 틈에서 저녁을 먹은 얘기를 들었다. 서양사회라면 그럴 만한 일이지만 장유(長幼)가 유서(有序)한 한국사회에서 자란 빵고 신부에게는 아빠의 업보가 무거워 밥알이 곤두섰을지 모른다.


바깥사돈은 최고경영인으로서 열린 자세로 타인의 얘기를 경청하시고 세계경제(신자유주의)의 흐름에 대한 금융자본의 횡포를 체험한 분으로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인류사회에 보내는 경고에 수긍을 보내고 계셨다. 우리 며느리가 부친의 그 장점을 그대로 물려받았고 우리 큰손주 시아가 외할아버지를 꼭 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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