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원불교·조계종·천주교, 4대 종단이 함께 ‘종교인의 관점으로 보는 난민‘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4일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린 이날 심포지엄은 4대 종단 이주·인권협의회가 주최하여 종교인들이 한데 모여 각 종교에서 난민을 바라보는 관점과 현재 대한민국에서의 난민 인식, 수용 실태, 제도적 문제점 등을 논의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천주교에서 심유환 신부(예수회 난민 봉사기구 한국대표)와 이상민 신부(국내이주사목위원회 총무)가, 개신교에서 홍주민 목사(한국디아코니아연구소 소장)와 김은경 목사(NCCK 이주민소위원회 위원장)가, 원불교에서는 최서연 교무(원불교 인권위원회)와 강현욱 교무, 조계종에서는 혜찬 스님(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대표로 나섰다.
인사말에서 김은경 목사는 “난민 이야기를 하는데 있어 한국 전쟁과 같은 힘든 역사를 생각해야 한다“면서 ”이번 심포지엄이 난민에 대한 가치 정립 및 확산과 수용의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상민 신부는 개회사에서 난민을 종교적 관점에서 바라본 자리가 처음임을 강조하며 “교리나 경전을 근거로 난민에 대한 태도를 돌아보고, 난민 수용 정책과 제도의 미비함을 논의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난민을 구체적 인간이 아닌 ‘집단화된 타자’로 보는 시각
기조발제를 맡은 이일 변호사(공익법센터 어필)는 난민 수용 현황과 정책의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짚었다. 이 변호사는 특히 “정부와 국회의 정책 및 조처가 미미하다”면서 최근 열린 국회 예산특별소위에서 증액을 신청한 여당조차 난민 관련 예산 증액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난민에게 직접 돌아가는 게 아니라 심사에 필요한 비용이다. 심사해야 쫓아 낼 것 아니냐’는 식의 발언을 했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현재 난민 관련 조치들이 언론에 집중 조명된 500여명의 예멘 난민에 의해 급조된 것이라며 “우선 (난민을) ‘막는 것‘이라는 정책적 방향, 난민 심사절차의 극도로 낮은 인정률과 장기대기가 보여주는 신속성·공정성 부재, 불법 취업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미비한 생계지원방안, 취업허가 외에 난민신청자 신분이었을 때와 달라진 게 없는 인도적 체류 처우”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특히 이 변호사는 예멘 난민이 ‘여자를 성폭행한다’, ‘마약을 한다’ 등과 같은 가짜뉴스들에 대해 “만약 한국 사람들이 미국으로 피난을 갔는데, (한국에선) 매일 2만개의 화장실에 몰카 검사를 한다는 얘기를 하며 ‘한국 남자들은 대부분 성범죄자다’, ‘여성 폭력이 자주 일어나 그렇게 맞아죽는 여성이 많다더라’고 말하며 (한국 난민을) 거절한다고 (가정해보라)“고 말했다.
결국 이는 “난민을 구체적 인간이 아닌 집단화된 타자로 바라보는 시각”이라면서 “한국 사회가 이미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난민에게) 떠미는 방식으로 혐오가 작동했다”고 분석했다.
환영하기, 보호하기, 증진하기, 통합하기
심유환 신부는 가톨릭교회에서는 인간존엄성(Human dignity), 공동선(Common good), 연대성(Solidarity), 보조성(subsidiarity)의 원리로 난민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사람은 하느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난민을 포함한 약자들도 동등한 존엄성을 가진다”고 말하며 “어떤 종교를 가졌든 모든 사람이 나만큼 소중한 사람”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제주 예멘 난민 사태에서 제주교구의 모습이 모범적이었다며 “임산부나 자녀가 있는 난민가정을 우선적으로 보살펴 달라는 부탁을 제주교구가 잘 이행했다”고 말하며 강우일 주교의 노력을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프란치스코 교황의 제104차 세계 이민의 날 담화에서 언급된 ‘환영하기, 보호하기, 증진하기, 통합하기’라는 원칙을 다시 상기하며 프란치스코 교황은 임기 시작과 함께 이탈리아에서 가장 많은 난민이 도달하는 람페두사 섬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또 다른 소수자를 혐오의 희생양으로 삼게 될 수도 있다.
원불교 강현욱 교무는 “일제강점기에 백만 명 이상의 동포들이 강제징용 또는 압제를 피해 먼 타국 땅에서 불합리한 차별과 억압 속에서 난민으로 살아가야 했던 우리의 과거를 기억해야한다”며 그럼에도 정부가 0명의 난민과 339명의 인도적 체류자만을 인정함으로써 이들이 “불안정한 삶을 살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강 교무는 이러한 난민에 대한 “혐오“가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이나 만보산 중국인 학살 사건과 같다며 “당시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자연적, 인적 재앙에 의해 발생한 정신적 공황상태를 소수자였던 조선인, 중국인에게 전가하여 보상받으려 발생된 사건”이라고 말했다.
강 교무는 원불교의 ‘처처불상 사사불공‘(우주만물이 진리의 화신이니 모든 일을 불공하는 마음으로 행하라) 정신으로 이겨내야 할 것이 바로 이러한 난민에 대한 “혐오“라고 말하며 “가장 약자인 난민에 대한 혐오를 하루 속히 해소시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또 다른 소수자를 혐오의 희생양으로 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짜 뉴스와 그릇된 신학들로 인해 난민들이 사회에서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홍주민 목사는 한 예멘 난민 친구가 현지 공습으로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꺼내며 “난민은 피붙이를 묻고 떠나온 사람들”이라고 호소했다.
홍 목사는 이주민센터 관련 일을 하며 “반공무원 신분이었던 내게 난민과 미등록이주노동자는 손길을 줄 수 없는 금단의 영역”이었다며 제주 예멘 난민 사태 이후 민간영역에서 실천한 ‘한 끼에 5천원, 1천 끼 운동’, 이층침대 20개를 모금한 ‘누울 자리’ 모금, 오산 ‘디아코니아 쉼터’ 등을 소개하며 난민들에 대한 실질적 노력을 강조했다.
홍 목사는 “가짜 뉴스와 그릇된 신학들로 인해 난민들이 사회에서 유령처럼, 비존재로 사회를 떠돌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겨레의 취재로 난민 가짜뉴스 진원지로 밝혀진 ‘에스더 기도운동‘을 언급하며 난민에 대한 혐오가 “특정한 단체만의 문제가 아닌 수구정치 세력과 수구개신교의 암묵적인 동거가 있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개신교 역시 “근본주의 신학의 포로가 되어 비정상적인 유사 개신교의 행태에 익숙해졌다”고 비판하며 “제주 예멘 난민사태 초반부터 개신교 교회는 다른 어떤 종교보다 극단적인 혐오와 무관심 정서를 유지했다”고 분석했다.
‘난민을 환영한다’
조계종을 대표해 나온 혜찬 스님은 난민 인권 센터의 10월 30일 성명서 <난민을 환영 한다>를 언급하며 “바라문이여 누가 천한자인가? 천민 계급을 타고 났더라도 그 행실이 올바르고 진리를 구하는 자와 바라문으로 태어났어도 계율을 지키지 않고 쾌락에 탐닉하는 자, 누가 천한자이며 누가 귀한자인가?”라는 부처의 말씀을 인용했다.
이 자리에는 특히 라이베리아(Liberia) 출신 난민 아미아타 핀다(Amiatta Finda)씨가 함께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할례 전통을 피해 탈출한 핀다 씨는 시에라 리온, 기니, 가나에서 20여년이 훌쩍 넘는 난민 생활 후 2012년 한국에 도달했다.
하지만 핀다 씨는 난민 자격심사에서 탈락했다. 이후 시민사회 단체의 도움으로 행정소송을 진행했으나 대법원에서도 패소해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자녀조차 형식적으로 출생 국가가 라이베리아가 아니라는 이유로 할례 위험이 없다는 판단이 내려져, 난민 자격을 인정받지 못 했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다.
핀다 씨는 “우리는 모두 인간이다”(We are all human)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낭독하며 한국 생활에 대한 기대와 실망, 일터와 사회 안에서 경험한 차별을 이야기하며 “이들은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핀다 씨는 “난민 공동체가 할 수 있는 일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며 “(한국 사회를) 설득할 때 우리가 뭔가 이룰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핀다 씨는 “흑인이든, 백인이든 다치면 붉은 피가 흐른다”고 표현하며 인권은 모두에게 동등하게 적용되는 권리임을 강조하고 “서로 보듬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호소했다.
핀다 씨는 오랜 난민 생활을 통해 공동체를 형성할 때 큰 힘이 생긴다는 것을 배워 현재 ‘동두천 난민 공동체‘ (Dongducheon Refugee Community)를 형성해 아프리카 난민들을 한데 모으는 일을 하고 있다. 핀다 씨는 <가톨릭프레스>에 “공동체는 모든 유형의 난민을 위해 많은 일을 해왔다”면서 “지금은 구조를 정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