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물러가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니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로마 13,12)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1일, 교황청 관계자들과 성탄 인사를 위해 모인 자리에서 한해를 돌아보며 올해 계속 언론에 오른 교회 내 성범죄 퇴치의 중요성과 이런 일을 저지른 성직자, 수도자의 잘못을 통감한다고 고백하며 보편 교회가 이에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칠레 가톨릭교회에서 시작해 미국 유명 추기경의 사임에 이르기까지 성직자 성범죄와 은폐로 점철된 한 해를 마무리한다는 점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직자 성범죄 문제에 얼마나 큰 관심을 두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연설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탄은 세상의 구세주이시며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려는 우리의 복음적 결심을 쇄신하도록 이끈다”며 “가슴에 죄인들을 끌어안은 교회는 성스러우면서도 언제나 정화를 필요로 하기에 계속해서 속죄와 쇄신의 길을 따른다”고 설명했다.
예수의 탄생은 긴장, 불편, 어둠으로 점철된 사회정치 및 종교적 상황 속에서 이루어짐으로써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요한 1,5)로 대변되는 하느님의 논리(divine logic)와 인류를 절망과 어둠 속에 잡아두기 위해 선조차 악으로 바꿔버리는 악마의 논리(malign logic)가 드러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의 탄생을 통해 인류에게 주어지는 구원이 선물인 것은 맞지만, 이는 받아들이고, 소중히 여겨지며 결실을 맺어야 하는 선물이라고 설명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주머니 속에 하느님을 넣고 다닌다고 생각하는 엘리트 집단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보잘 것 없는 죄인임에도 주님께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교황은 “올해 내내 교회가 어려움의 순간들을 경험하고 있으며 강풍과 폭풍우로 뒤흔들려 왔다”며 이민자‧난민들에 대한 근거 없는 공포와 편견, 전쟁으로 인해 빈곤과 파괴의 상황에 처한 아이들, 약자와 여성에 대한 폭력, 전쟁 위협과 구금, 투옥, 난민 캠프에서 고문을 당하는 이들이 모두 교회가 느끼는 ‘괴로움’(afflictions)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으로 어떤 이들은 “잠든 듯 한 스승님에게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마르 4,38)라고 묻는 이도 있고 뉴스 보도로 마음이 차가워져 신뢰를 잃고 교회를 버린 이들도 있다”면서 “하지만 많은 이들은 ‘저승의 세력도 그것(교회)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라는 확신 안에서 교회에 기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괴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했던 순교자와 셀 수 없이 많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영웅적 예시가 있다고 해서 일부 교회의 아들과 사목자들이 보여주는 추문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교황은 특히 학대(abuse)와 자기 직분을 지키지 않는 배신(infidelity)을 특히 강조했다. 교황은 자신이 이해한 학대의 심각성을 다윗왕의 이야기로 설명했다. ‘기름부음 받은 이’인 다윗왕이 우리야를 죽이고 밧세바를 차지한 이야기(2사무 11 참조)를 들어 “다윗왕이 왕의 지위를 이용해 성범죄, 권력 남용, 양심 남용이라는 심각한 3가지 학대, 세 개의 죄를 한 번에 저질렀다”고 말했다.
특히 “다윗왕의 유일한 관심은 자기 이미지를 유지하고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는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오늘날에도 자기 지위와 설득력을 이용해 약자(the vulnerable)를 학대하는 주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이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끔찍한 행위(abominable acts)를 저지르고도 여전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도직을 이어 간다”고 지적하며 “그들은 하느님이나 그분의 심판이 아니라 오로지 정체가 들통나는 것만을 두려워”한다고 규탄했다.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부패의 장으로 들어가 하느님과 그분의 계명, 자신들의 소명과 교회, 하느님 백성을 비롯해 가장 작은 이들과 그 가정의 신뢰를 저버린 수많은 다윗왕들이 있다.
사제와 주교들을 향해 이 같이 강조하고 특히, 성범죄 가해 성직자와 그 은폐에 가담한 주교들은 “격 없는 친밀함, 훌륭한 활동 그리고 천사 같은 얼굴 뒤에서 염치도 없이 죄 없는 영혼을 집어삼키려 하는 악랄한 늑대의 모습을 숨기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들의 ‘죄’와 ‘범죄’(sins and crimes)가 배신과 부끄러움으로 물들어 있다며 “이로 인해 교회의 얼굴이 망가지고 신뢰를 깎아먹게 된다”고 말했다.
교회는 이런 범죄(crimes)를 저지른 사람이 누구든 이들을 법정에 세우기 위해 필요한 어떤 노력도 아끼지 않을 것임을 명확히 하도록 하자.
교황은 아주 강한 어조로 “교회는 (이 과정에서) 어떤 사례도 서둘러 처리하거나 넘겨짚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며 “이러한 일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 이는 모든 교회의 선택이자 결정이다”라고 못 박았다.
내년 2월로 예정된 전 세계 주교회의 의장 회의가 “아낌없이 정화의 길을 추구하겠다는 강한 결의를 재표명할 것”이라고 말하며 “아동을 보호하고, 이러한 비극을 피하며, 피해자들을 치유하고 복귀시키는 일”을 논의하고 “교회 지체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이러한 재앙을 뿌리 뽑는 기회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단 한 사례의 학대일지라도, 이 문제에서 더욱 심각한 추문은 진실을 숨기는 것이기에 교회는 사람들에게 침묵하지 말고 이를 객관적으로 밝힐 것을 명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윗왕이 예언자 나탄을 만난 후에야 자기 죄의 심각성을 깨달았음을 지적하며 “우리에게도 수많은 다윗왕들이 위선적이고 변태적인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예언자 나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해자는 능숙하게 자기 자취를 숨길 줄 알고, 가해자에 의해 세심하게 선별된 피해자들 역시 종종 침묵을 나은 것으로 여겨 부끄러움에 대한 공포와 거부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살아간다.
교황은 이 같이 말하며 진실을 밝히는 것이 “전혀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아직까지도 숨어있는 교회 내 성범죄 가해자들에게 “스스로 회개하고 인간적 정의(human justice)에 자수하라. 그리고 하느님의 정의(divine justice)를 기다려라”라고 명령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렇듯 자신의 소명과 직무를 저버린 이들과 배신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교회 역사에서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교황은 다윗왕과 유다의 이야기를 들어 “다윗왕과 유다는 우리 인류의 일부인 약점을 표상하기에 언제나 교회 안에 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리스도의 빛이 더욱 빛나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영적 부패(spiritual corruption)에 맞서 싸울 의무가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한해에 있었던 기쁨(joys)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최근 성공적으로 끝마친 젊은이들의 시노드를 비롯해 재정투명성 확보를 위한 재정정보국(AIF) 과 교황청 행정부 개혁, 그리고 바오로 6세와 로메로 대주교 시성 및 알제리 순교자들의 시복과 같은 일도 있었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특별히 “사제 생활과 수도 생활의 구조 안에서 관리직을 부여받은 이들의 주의와 보호 의무로 이어져야 할 (다윗왕과 유다와 같은 이들에 대한) 더 넓은 자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모든 기관의 힘은 언제나 정화되고자 하는 의지와 겸손히 자기 실수를 인정하고 이를 교정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
결국, 이를 위해 “진정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 마음을 열어야 한다”며 “그분께서는 우리 어둠을 빛으로 바꿔주시는 빛, 악을 이기는 선의 빛, 증오를 이기는 사랑의 빛, 죽음을 이기시는 생명의 빛, 모든 것과 모든 이를 빛으로 바꿔주시는 하느님의 빛이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결국 예수는 “가난하면서 부유하시고, 자비하고 정의로우시며, 드러나 있으면서도 숨겨져 있고, 작으면서도 크신 우리 하느님의 빛이시다”라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탄은 교회가 이러한 혼란 속에서 더욱 아름답고, 정화되고 빛나는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확신을 준다”며 성직자 성범죄를 비롯한 “모든 죄와 실패야말로 교회의 힘이 우리가 아니라,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위해 목숨을 바치셨으며 세상의 구원자이시며 우주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달려있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라고 강조하며 이를 명확한 쇄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