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과 신학생들에게 성범죄를 저질러 미국 추기경직에서 물러난 시어도어 매캐릭(Theodore Mccarrick)이 성직을 박탈당했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로마 현지시간으로 16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성명서를 발표하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번 환속⑴ 처분에 항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한 점을 강조했다.
이번 결정에 따라 매캐릭은 더 이상 사제로서 활동할 수 없다. 신앙교리성은 성명서에서 “2019년 1월 11일 신앙교리성 회담(congressio)은, 형법 절차를 마무리하며, 워싱턴 D.C.의 명예대주교(archbishop emeritus) 시어도어 에드가 매캐릭이 성직자로서 활동하는 동안 다음과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는 판결을 내렸다”며 “회담은 매캐릭을 성직자 신분 박탈(dismissal from the clerical state) 형벌에 처했다”고 발표했다.
신앙교리성은 매캐릭의 구체적인 혐의로 “고해성사 중 유혹(solicitation in the Sacrement of Confession), 권력을 남용해 아동과 성인을 상대로 여섯 번째 십계명을 어긴 죄(sins against the Sixth Commandment with minors and with adults)”를 적시했다. 이번 판결은 매캐릭이 추기경직에서 사퇴하게 된 가시적 원인인 뉴욕 대교구에서의 아동성범죄와 더불어, 성인을 상대로 한 성범죄 역시 성직 박탈 결정에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 눈에 띈다.
신앙교리성은 판결 이후인 1월 13일 신앙교리성 제4차 평의회(Feria IV)에서 매캐릭의 항변을 청취했다고 명시하며 “항소 절차에서 제기된 주장을 검토한 결과, 평의회는 회담의 판결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난 15일 매캐릭 대주교에게 이러한 사실이 전달되었으며,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과정에서 매캐릭 측의 항소가 불가능하도록 이번 환속 처분의 기판력(res iduicata, 라틴어로 ‘(이미) 판결된 것’이라는 의미)을 인정했다.
이번 판결은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매캐릭의 추기경직 사퇴를 수리하고, 이후 매캐릭에 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며 “성범죄와 그 은폐 모두 더 이상 용인될 수 없는 것이며, 이러한 범죄를 저지르거나 은폐한 주교들을 (일반인과) 달리 대하는 것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는 성직자중심주의의 일종이다”라고 했던 말과 일치하는 행보다.
지난 해 뉴욕 대교구는 2017년 제기된 매캐릭의 아동성범죄 혐의에 신빙성이 있다고 발표했으며, 이후 매캐릭은 지난 해 6월 추기경직에서 사퇴하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에게 ‘기도와 속죄의 생활’(life of prayer and penance) 처분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다른 아동 피해자와 매캐릭에게 뉴저지 주의 한 별장에서 성폭행을 당한 신학생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한편 매캐릭과 관련해 미국 주교들이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매캐릭을 추기경에 서임되도록 방조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보니파스 램지(Boniface Ramsey) 신부는 자신이 1990년대 신학대 교수로 재직하던 당시 신학생의 증언을 토대로 이를 주교들에게 알렸으나, 오히려 램지 신부가 교수직에서 쫓겨나고 이후 2000년대 들어서도 수차례 조사 요청이 묵살됐다고 증언했다. 램지 신부는 미국 가톨릭매체 < Commonweal >에 매캐릭 사건을 인지하게 된 계기와 신학생들의 증언을 실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성범죄 혐의를 받아 환속 처분까지 받은 추기경은 매캐릭이 최초다. 이전까지는 신학생과 신부에게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혐의가 제기된 오스트리아 출신의 한스 헤르만 그로어(Hans Hermann Groër) 추기경, 1980년부터 2003년까지 교구 신부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러 추기경으로서 활동하지 못하도록 제재를 받은 스코틀랜드 주교 키스 오브라이언(Keith O’Brien) 추기경, 최근 호주에서 아동성범죄 혐의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조지 펠 추기경이 언급되었으나 이 셋 모두 추기경직에서 사퇴하거나 환속 처분을 받지 않았다.
이번 환속 처분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무관용’ 원칙을 확인해줌과 동시에 그 발표 시기를 고려해볼 때 21-24일 열리는 전 세계 주교회의 의장단 회의의 기조를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14일 미국 가톨릭매체 < Crux >와 인터뷰를 가진 신앙교리성 차관보 찰스 시클루나(Charles Scicluna) 대주교는 ‘다른 매캐릭들’이 존재할 수 있다며 “아직 찾지 못했다는 것은 그저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할 뿐”이라고 말했다. 특히 “주교들이 조직을 관리하는 대신 독이 든 성배를 건넨 사례들은 긴급한 문제로서 밝혀지고 해결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매캐릭에 관해 ‘누가 무엇을 알았는지’, ‘언제 알았는지’와 같은 질문이 “정당한 것 같다”면서 이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신앙교리성이 조사한 매캐릭의 아동성범죄 사건은 최소 3건이며, 이외에도 지난 6월 매캐릭이 추기경직에서 물러날 당시 성인 피해자들과 합의를 했다는 사실이 공개되기도 했다.
미국 주교회의 의장 디나르도 추기경은 매캐릭의 처분에 “성범죄가 용인되지 않을 것이라는 명백한 신호”라며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치든, 어떤 주교도 교회법 위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디나르도 추기경은 “매캐릭이 학대한 모든 이들에게, 이번 결정이 치유를 향한 하나의 작은 발걸음이 되기를” 기도했다.
11세 때부터 20년 간 매캐릭에게 성폭행을 당했으며, 교황청의 요청에 따라 피해 사실을 증언한 피해자 제임스 그레인(James Grein)은 매캐릭 성직 박탈 소식에 “승자란 없다”고 강조했다.
그레인은 “어떤 것도 내 유년 시절을 되돌려 줄 수는 없으며 내게 일어난 일을 증언하거나 논의하는 것은 전혀 기쁜 일이 아니다”라면서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나를 믿어준 것이 기쁘다. 나는 이제야 내 분노를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리고 “돈과 권력, 욕망을 찬양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어온 교회를 씻어내려야 할 시간”이라면서 “더 이상 매캐릭이 예수님 교회의 권력을 빌어 가정을 농락하고 아동을 성적으로 학대하지 못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 CNN > 기자 대니얼 버크(Daniel Burke) 역시 매캐릭 환속에 대한 한 신학생 피해자 반응을 전하며, 피해자가 이번 환속 조치를 “치유와 놀라움”으로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해당 신학생 피해자는 매캐릭이 성인을 상대로 저지른 범죄를 환속 조치의 근거로 들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⑴ 성직자나 수도자가 자신의 교회법적 권리와 의무를 영구 상실하고 평신도 신분으로 되돌아가는 것. (천주교용어자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