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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에서 벌어지는 성범죄 신고 의무화
  • 끌로셰
  • 등록 2019-04-02 14:43:27
  • 수정 2019-04-02 17: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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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월 성직자 성범죄 해결을 위해 전 세계 주교회의 의장들을 소집한 회의 결과로 교황청 내 성범죄 신고를 의무화하는 자의교서(Motu proprio)를 발표했다.


「미성년자와 약자의 보호에 관한 자의교서」 (Motu proprio sulla protezione dei minori e delle persone vulnerabili, 이하 자의교서)라는 제목이 붙은 이번 교서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관계 당국에 학대를 신고하고 학대 예방 및 퇴치 활동에 협력할 의무 의식이 무르익기를 바란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 자의교서는 신앙교리성 등 여러 부서와 성(Dicastery and Congregation)으로 구성된 로마 쿠리아(Roman Curia)와 교황청 전체에 적용된다. 


자의교서 2항은 교황청에 근무하는 모든 인력은 “직무 수행 중 미성년자 또는 약자가 범죄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지하거나 그렇게 여길만한 원인이 있는 경우, 지체 없이 바티칸 시국 법원의 검찰관에게 고발장을 제출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했다.


자의교서와 함께 발표된 「바티칸 시국의 미성년자와 약자 보호에 관한 법 297조」(이하 법 297조)에 따르면 신고할 의무에 해당하는 범죄는 2013년 6월 11일 발표된 「형법 추가 규범」 2조에 명시된 ‘아동 범죄’로 18세 미만의 아동을 상대로 한 성매매, 성폭행, 성행위 등이 이에 해당하며 이번 자의교서를 통해 18세 미만 아동뿐만 아니라 ‘약자’를 상대로 한 범죄, 즉 상황에 따라 성인을 상대로 한 범죄도 신고 의무 대상에 포함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했다.


이에 관해 법 297조 1항은 “‘미성년자’와 ‘약자’는 본 법의 목적상 동일시된다”고 명시하며 “약자란 장애, 신체적 또는 정신적 결함 상태에 있는 모든 사람, 또는 개인의 자유를 박탈당하거나 범죄를 인식하는 능력 또는 어떤 경우에든 범죄에 저항할 의지를 보일 능력에 제한을 받는 모든 사람을 말한다”고 정의했다.


법 297조 3항은 자의교서 2항이 규정한 신고 의무 규정 위반에 대해 “바티칸 시국의 공무원이 규정된 고발 처리에 태만하거나 부당하게 고발 처리를 지체했을 경우 1,000유로에서 5,000유로의 벌금에 처해진다”고 규정했다. 


그리고 법 297조 2항은 이러한 범죄의 공소시효를 20년으로 규정했다. 특히 미성년자의 경우에는 피해 사실을 당한 해와 관계없이 18세가 된 후부터 20년의 공소시효가 발생한다고 규정했다.


이외에도 자의교서는 피해자에 대한 의료적, 법적 지원이 제공된다는 점(3항)을 명시하고 교황청에 채용되거나 봉사하는 모든 인물에 대해 미성년자 또는 약자와 접촉하는데 문제가 없는지 검증(5항)되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번 자의교서는 오는 6월 1일부터 적용된다. 교황청이 미성년자 또는 약자를 상대로 한 성범죄 신고를 의무화했다는 점에서 각 지역교회나 국가의 성범죄 신고의무제 도입을 촉구하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교황청 임시 공보실장 알레산드로 지소티(Alessandro Gisotti)는 이번 문건들이 “하느님의 백성이 보여준 구체적 조치들의 요구에 응답하고 있다”며 “전세계 주교회의 의장단 회의 이후의 중요한 첫 행보”라고 말했다.


교황청 홍보부 안드레아 토르니엘리(Andrea Tornielli) 편집국장 역시 < Vatican News >를 통해 이번 조치가 “첫 결실”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사제와 수도자들은 많지만 아동이 거의 없는 바티칸 시국에 관련된 문건들이기는 하나 더욱 진일보된 국제 규범을 염두에 둔 예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제적인 성직자 성범죄 피해자 단체 ECA(Ending Clergy Abuse)는 성직자가 성범죄를 저지른 것이 확인되거나, 이를 은폐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가해자와 은폐자 모두 성직을 박탈하는 것이 무관용 원칙이라고 주장하며 프란치스코 교황의 새 자의교서와 신설 법이 “이 같은 무관용 원칙을 표방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ECA는 공소시효를 폐지하지 않은 점과 성범죄를 은폐한 교황청 관계자들이 받는 처벌이 정직, 면직이 아닌 ‘벌금형’ 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며 “전 세계 주교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제시한 무관용 원칙을 따른다고 하면, 대다수의 아동성범죄 가해자들은 여전히 성무를 수행할 것이고, 민간 당국에 신고도 당하지 않을 것이며, 대중에게 알려지지도 않을 것”이라고 규탄했다.


이탈리아 성직자 성범죄 피해자 단체 역시 “미성년자가 운이 좋아 바티칸 시국 내에서 피해를 입는다면 권리를 보호받겠지만, 밖에 있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북미 성직자 성범죄 감시 단체 BishopAccountability.org 대표 앤 바렛 도일(Anne Barrett Doyle)은 < AP >와의 인터뷰에서 법 자체는 환영할만하지만 이번 법이 바티칸 시국에만 적용되는 법이라는 점을 아쉽게 여기며 “새롭고 더욱 확실한 법”을 적용해주기를 기대했다.


지난 2월 24일, 성직자 성범죄 해결을 위한 전 세계 주교회의 의장단 회의 마지막 날 교황청 공보실장을 지낸 회의 주재자(moderator) 페데리코 롬바르디(Federico Lombardi) 예수회 신부는 입장문을 발표하고 ▲ 미성년자와 약자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새 자의교서 발표 ▲전세계 주교들의 의무 확립 위한 지침서(Vademecum) 발표 ▲성직자 성범죄 및 약자 보호에 관련하여 각국 주교회의 또는 교구를 지원하는 교황청 테스크포스(TF) 설치가 이뤄질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필진정보]
끌로셰 : 언어문제로 관심을 받지 못 하는 글이나 그러한 글들이 전달하려는 문제의식을 발굴하고자 한다. “다른 언어는 다른 사고의 틀을 내포합니다. 그리고 사회 현상이나 문제는 주조에 쓰이는 재료들과 같습니다. 따라서 어떤 문제의식은 같은 분야,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쓴다고 해도 그 논점과 관점이 천차만별일 수 있습니다. 해외 기사, 사설들을 통해 정보 전달 뿐만 아니라 정보 속에 담긴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사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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