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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예수는 한 번도 사람을 멀리한 적이 없다” - 성유 축성 미사서 사제들에게 직무 의미 되새길 것 당부
  • 끌로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04-19 14:41:41
  • 수정 2019-04-19 18: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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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Vatican)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18일 오전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거행된 성유 축성 미사 강론에서 “기름을 붓기 위해 기름부음을 받은” 사제들이 언제나 신자들과 함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예수께서 군중 사이에 있는 모습을, 예수께 병자를 데려와서는 악령을 쫓아내달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그분의 가르침을 경청하고 함께 걷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이리저리 치이는 예수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고 설명했다.

 

예수께서는 한 번도 사람들과 멀리한 적이 없다. 그분께서는 민족 전체와 군중들 사이의 개인들과 항상 가까이 있는 은총을 베푸셨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께서 군중과 맺은 관계에서 ‘따름의 은총’, ‘찬미의 은총’, ‘식별의 은총’을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루카는 군중이 그분을 찾고(루카 4, 42), 그분과 함께 길을 가며(루카 14, 25),  그분을 밀어대고(루카 8, 42), 밀쳐대고(루카 8, 45), 그분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인다(루카 5, 15)고 전하고 있다.


교황은, “사람들이 이렇게 예수를 따르는 것은 어떤 조건도 없는, 사랑이 가득한 따름”이라고 말했다. 

 

예수의 이 같은 태도는 군중을 혼내서 이들이 먹을 것을 찾아오도록 하라고 제안하며 사람들에게 잔혹함에 가까운 태도를 보인 제자들의 인색함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며 “제자들의 이러한 태도가 성직자중심주의(Clericalism, 성직주의)의 단초”라고 설명했다. 

 

‘찬미의 은총’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예수님과 그분의 기적에 놀란 것도 있지만, 예수님의 인격 그 자체에 특히 놀랐다”며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길에서 그분에게 인사를 나누고, 그분의 축복을 받고 그분을 축복하기를 즐겼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식별의 은총’에 대해서는 “그러나 군중은 그것을 알고 예수님을 따라왔다”(루카 9, 11)는 구절을 들어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으로 찾아오신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식별의 카리스마를 불러일으켰다”며 이는 “논쟁거리에 대한 전문가적 식별이 아니라 예수의 권위, 즉 가슴에 와닿는 그분 가르침의 힘과 악령도 그분께 순종한다는 것”을 식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예수와 군중은 언제나 함께 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께서는 가난한 사람, 전쟁포로,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 그리고 탄압받는 사람들과 함께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기름부음을 받은 이들은 각자만의 모습과 이름을 갖게 된다”며 “기름을 한 군데 바름으로써 그 효과가 온 몸에 퍼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사람 또는 한 집단에게 주어지는 은총과 카리스마는 넘쳐 흘러 모두에게 이롭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유 축성 미사에 참석한 사제들에게 “우리의 복음적 모델이 이러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도록 하라”며 “주님의 기름부음으로 드러나고 생기를 찾은 각자 서로 다른 얼굴을 가진 이 군중을 기억하라”고 당부했다. 


우리 사제들이 받은 성령의 기름부음을 온전하고 실재하게 만들어주는 이들이 바로 사람들이며, 결국 이들에게 주기 위해 기름부음을 (먼저) 받은 것이다.

 

같은 날 오후 프란치스코 교황은 로마 벨레트리(Velletri) 형무소를 찾아 수감자들의 발을 씻겨주었다. 교황은, 예수께서 살던 시대에 발을 씻어주는 행위는 노예들이 하는 행위였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이처럼 “형제애란 언제나 겸손한 것이며, 남을 섬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교회는 매년 적어도 한 번씩 주교들에게 세족식을 하라고 말하는데, 이처럼 예수의 모습을 모방하고자 이런 행위를 하는 것은 주교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 아니며, 주교는 누구보다도 섬기는 이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필진정보]
끌로셰 : 언어문제로 관심을 받지 못 하는 글이나 그러한 글들이 전달하려는 문제의식을 발굴하고자 한다. “다른 언어는 다른 사고의 틀을 내포합니다. 그리고 사회 현상이나 문제는 주조에 쓰이는 재료들과 같습니다. 따라서 어떤 문제의식은 같은 분야,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쓴다고 해도 그 논점과 관점이 천차만별일 수 있습니다. 해외 기사, 사설들을 통해 정보 전달 뿐만 아니라 정보 속에 담긴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사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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