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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철) 지옥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 - 바람소리 34. 회당에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다 (마태1,21-28)
  • 김유철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04-25 17:57:08
  • 수정 2019-04-25 17:5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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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무서운 규제 장치입니다.


소귀 신영복(1941-2016)선생은 『강의』(2004.돌베게)라는 책에서 사서삼경 중 하나인 서경(書經)을 소개하면서 “기록은 무서운 규제 장치입니다”라고 했다. 서경은 중국의 2제(요·순) 3왕(우왕·탕왕과 문왕 또는 무왕)이 주고받은 많은 말을 기록한 것이다. 신영복 선생이 깊은 의미를 담아 우리에게 소개한 부분을 인용한다.


“중국에는 고대부터 사관에 좌우左右 2사二史가 있었는데 좌사左史는 왕의 언言을 기록하고 우사右史는 왕의 행行을 기록했습니다. 이것이 각각 『상서』와 『춘추』가 되었다고 합니다. 천자의 언행을 기록하는 이러한 전통은 매우 오래된 것입니다. 사후死後의 지옥을 설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구속력이 강한 규제 장치가 되고 있습니다. “죽백竹帛에 드리우다”라는 말은 청사靑史에 길이 남는다는 뜻입니다. 자손 대대로 그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는 것은 대단한 영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반대로 그 악명과 죄업이 기록으로 남는다는 것은 대단한 불명예요 수치가 아닐 수 없지요. 임금의 언행을 남기는 것은 물론 후왕後王이 그것을 거울로 삼아 바른 정치를 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국회의사당 지붕은 왜 둥글까


▲ ⓒ 가톨릭프레스 자료사진


“국회 로텐다홀에서 의원들이 농성 중입니다.”라고 기자가 말하는 순간 그런 의문이 생겼다. 서양 건축에서 둥근 천장이 있는 원형 홀이나 원형 건물을 로텐다(rotunda)라고 하는데 국회의사당의 지붕은 왜 둥글까란 의문이 들었다. 미국 의회 역시 둥근 지붕을 가지고 있어 그들이 오래전부터 의회의 중앙홀을 로텐다홀로 불렀지만 우리는 왜 그들의 말을 그대로 할까란 의문도 덤으로 생겼다. 


대한민국은 공화국인 만큼 정치의 중심은 분명 국회다. 제헌국회 이후 여러 과정을 거쳐 현재의 여의도 의사당은 1975년 9월 문을 열었다. 국회의사당 전면 8개 기둥을 포함한 외부의 24개 기둥과 본회의장 365개의 천장조명은 모두 의미가 담겨 있는 숫자들이다. 아울러 앞에 말한 로텐다홀 천장의 노란색과 24개의 선 역시 단순한 ‘인테리어’가 아님은 분명한 일이다.


그러나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불통과 다툼으로 해가 뜨고 달이 지는 것을 중계방송 하듯이 보고 있는 국민들의 심정을 높은 의원나리들이 알기나 알고들 있을까?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인 나경원(아셀라) 의원을 포함한 한 무리의 의원들이 이른바 국회 로텐다홀에서 피켓팅을 하고 있는 사진이 올라왔다. ‘좌파민주당/ 2중대 3중대 양성/ 선거법 반대’ ‘동료의원 성추행/ 문희상 국회의장 즉각사퇴’ ‘대통령 입맛대로 수사조작/ 공수처 절대반대’ 그들이 든 피켓의 내용이 민망하다.


그러니 기록해야 한다.


정당정치이니 정쟁(政爭)이 있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 정쟁을 바라보는 피로도가 임계치다. 물론 정쟁을 일으키는 자들이 노리는 것은 상대 당이나, 국회의장, 대통령이 아니라 바로 국민에게 그런 피로도를 심어주어 현 정권의 무능함을 드러내고 정치에 대한 관심을 없애기 위함임은 뻔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을 그들은 똑똑하다고 하는 일들이겠지만 똑똑하다는 자들의 말言과 몸짓行 즉 언행은 낱낱이 기록되고 있는 중이다. 그 기록이 남아 역사의 순간마다 어떤 일과 어떤 말을 했는지는 지옥보다 더 무섭게 오래도록 남아 후세에 전해질 것이다.


앞서 말한 서경書經이 사서삼경의 하나 일 수 있는 것은 수많은 정치적 사례들을 깊게 체득한다면 나라의 정치 수준을 높일 수 있다는 뜻으로 새겨야 한다. 신영복 선생의 표현처럼 “기록 문화는 후대의 정치가들이 참고할 수 있는 사례집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서 어떠한 제도보다도 강력한 규제 장치로 작용하리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기록문화가 사회와 역사를 발전시킬 것이다.


천기누설의 진앙지는 어디인가

 

중대한 기밀이 새어나가는 일을 ‘천기누설’天機漏洩이라고 부른다. 현대인에게 익숙지 않은 이 용어가 거리에 떠다닐 때가 있다. 이른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을 때가 그렇다. 아직 다음 대선이 한참 남아있기에 지금은 누구도 천기누설을 하고 있지 않지만 보나마다 한 해만 더 지나가도 천기를 알고 있다는 용한 점쟁이들의 누설은 곳곳에서 들릴 것은 뻔한 일이다. 분명한 것은 여의도가 진앙지가 될 것이다. 또한 곳곳에서 들리는 천기누설에 따라 숱한 쥐떼들이 어둠속에서 미친 듯이 이합집산 할 것은 분명한 일이다. 여의도 로텐더홀이 쥐떼 소굴인가?


허나, 하늘이 품은 형언할 수 없는 기운이라는 ‘천기’를 권력이나 금력을 품은 성공 혹은 출세의 지름길로 보는 관점이 문제이지, 천기 자체가 문제일 까닭은 없다. 천기를 땅의 관점이 아니라 하늘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풀잎하나에도 우주가 들어있고, 모난 돌덩이 놓인 자리에도 그 기운이 미치지 않은 까닭이 없는 것이다. 하물며 교회며 국가며 민족을 포함한 하느님의 모상인 사람이 어울려 사는 세상은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거울 속 너는 누구냐?


▲ (사진출처=Getty Images)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대통령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천기는 커녕 오늘 해야 하는 걱정만 해도 산더미만한 사람들이 있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김씨, 박씨, 베드로 형제, 마리아 자매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주어진 천기는 자신을 알아보는 것이다. 예수님을 보고 “저는 당신이 누군지 압니다.”(마르 1,24)라고 말했던 존재는 어쩌면 자기에게 다가왔던 예수님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었던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천기누설! 하늘의 오묘함이 새어나오는 것은 사주나 관상 혹은 예언이 아니라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에 있는 것이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로텐더홀에서 피켓팅을 하고 있는 1억5천여만원의 연봉 급여자들아, 거울 앞에 당겨 앉아 물어보라. “나는 누구인가?” 그것이 천기누설의 시작점이다.  



[필진정보]
김유철(스테파노) : 시인. 천주교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 <삶예술연구소>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여러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한국작가회의, 민예총, 민언련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시집 <천개의 바람> <그대였나요>, 포토포엠에세이 <그림자숨소리>, 연구서 <깨물지 못한 혀> <한 권으로 엮은 예수의 말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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