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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철) 예언은 늘 곁에 있다. - 바람소리 37. Memento Mori
  • 김유철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05-21 12:31:25
  • 수정 2019-05-21 12: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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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있는 자리도 끝이 난다.


하루 앞을 모르는 것이 사람 일이지만 7월 24일이면 현재의 검찰총장이 퇴임하게 될 것이다. 그 날이 임기 만료일이기 때문이다. 검찰총장의 임기는 2년 단임제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기를 채우는 사람이 드물다. 참고로 2000년 이후 현재의 문무일 검찰총장 이전까지 그 자리를 거쳐 간 인물이 13명인데 ‘고작’ 2년의 임기를 다 채운 사람이 5명이고, 이런저런 사유로 ‘옷 벗은’ 총장이 8명인 점을 본다면 분명이 그 자리가 엄청난 권력자리이지만 편치 않은 자리임에 틀림없다.


예전에 한 검사장이 옷을 벗으며 말한 것이 회자된 적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마 평생 검사 할 줄 알았던 것 같다. 사람 일은 이렇게 한치 앞도 모르는데 어리석고 자만했다”며, 그는 이어 “로마제국시절 노예들이 외쳤다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란 말이 생각난다. 아무리 힘 있는 자리라도 모든 것은 변하니 겸손하고 교만하지 말라”고 의미 있는 말을 던졌다. 


비풍비번(非風非幡)

바람도 아니고 깃발도 아니다


며칠 전 문무일 검찰총장이 국회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한 이른바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에 대한 기자회견을 했다. 그 자리에서 검찰의 중립성에 대한 기자의 질문이 나오자 그는 돌연 자신의 양복 윗옷을 벗고 흔들었다. 그러면서 “지금 뭐가 흔들리고 있나. 옷이 흔들리는 것이다. 그런데 흔드는 것은 어디인가”라고 되물었다. 이어 미스터 검찰총장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옷을 보고 말하면 안 된다”며 “흔들리는 것이 어느 부분에서 시작되는지를 잘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론은 친절(?)하게 그의 숨은 의미를 세세히 전했다.


그러나 검찰총장이 미처 새기지 못한 것도 있다. 그는 그의 손에 들린 양복을 ‘흔드는 곳’이나 ‘흔드는 세력’을 말했지만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 같다. 불교의 화두가 담긴 <무문관>에 나오는 글이다. 어느 날 사찰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고 두 스님이 서로 논쟁을 했다. 한 스님은 “깃발이 움직인다”고 말하고, 다른 스님은 “바람이 움직인다”고 주장했다. 서로의 주장만이 오고갈 뿐, 논쟁은 결코 해결되지 않았다. 이 때 혜능선사가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고 말했다. 


하늘의 예언은 어디서 만날까?


신·구약 성경을 읽는 동안 예언자들의 신탁(神託)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 때가 개인적으로 20대였고, 흔히 말하던 군사정권의 통치시절이라 수 천 년 전의 예언자들이 지금여기에 나타나기를 고대한 까닭도 있었다. 예언이 단순히 앞날에 대한 예고나, 예보가 아니라는 점. 예언자 자신의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이 당시의 젊은이에게는 무엇보다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던 같다. 그러나 어찌 하늘의 뜻을 전하는 예언이 예언자의 입에만 있을 것인가?


2019년의 봄도 이제는 지나갔다. 계절은 여름의 시작인 하지를 향해 달음질치고 수목은 더할 나위 없이 푸름이 짙다. 산기슭을 걷다보면 온갖 생물체의 에너지가 넘치고 계곡마다 흐르는 물소리가 온몸을 전율시킬 정도다. 지나간 봄이든, 눈앞의 여름이든 머잖아 다가올 가을과 겨울마저 사계절 이름의 하나이지만, 모든 것은 있는 그때마다 맞이하는 매듭이며 동시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연속이라는 선언이기도 하다. 


집착하는 곳에 피울 꽃은 없다.



흔들리고 있는 것은 바람이거나 옷이나 깃발이 아니라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밀리면 끝이다’ ‘양보는 없다’ ‘우리가 법이야’라고 안간힘을 쓰며 집착하고 있는 마음이다. 그런 마음에 피어 날 꽃은 없고, 흘러갈 물은 없다고 오래전 예언자들이 하느님의 뜻을 전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그것은 해해연년 거듭되는 일상 안에서 눈으로 보고 확인하고 피부로 느끼라는 친절한 시청각 교육이었음을 우린 깨닫는다.


때가 되면 죽은 줄 알았던 마른가지에서 꽃 몽우리 움트고 결국 그 몽우리에서 환한 꽃이 얼굴 내미는 것은 퇴임하던 검사장이 했던 ‘메멘토 모리’와 같은 말이다. 아이들 웃음소리와 보름달 꽉 찬 모습에서 하늘의 예언을 듣지 못한다면 우린 어디에서 하늘소리를 들을 것인가? 오늘도 어딘가 해 뜨고 비 오며 바람 부는데 회전의자 있는 곳에서는 헛기침 소리 여전하다. 이보시오 들으시게. “Memento Mori, Memento Mori, Memento Mori”



[필진정보]
김유철(스테파노) : 시인. 천주교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 <삶예술연구소>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여러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한국작가회의, 민예총, 민언련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시집 <천개의 바람> <그대였나요>, 포토포엠에세이 <그림자숨소리>, 연구서 <깨물지 못한 혀> <한 권으로 엮은 예수의 말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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