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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신부님’이 드라마 주인공이 된 것은 - (지성용) 교회 안의 메이데이를 기다리며
  • 지성용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05-24 15:31:04
  • 수정 2019-05-24 15: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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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의 노동



그리스도 교회 안에서의 ‘노동’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결과였다. 에덴동산에서는 손만 뻗으면 나무에 달린 과일을 따 먹을 수 있었지만 금지된 과일에 손을 댄 죄로 평생 노동의 굴레를 져야 하는 벌을 받았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얻을 것이다.’ (창세 3, 19)


성경이 쓰인 시기의 ‘노동’은 죄의 결과였고 최악의 조건이었다. 당시는 노예제 사회였다. 히브리인들의 결집으로 출애굽이 가능했던 이유는 생명을 위협하는 노동이 지속되었고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의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고 평등한, 정의로운’ 하느님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변방의 예수 종교가 로마의 국교로, 그리고 2천 년이 지난 지금 세계의 종교로 발돋움한 가장 큰 동력은 ‘평등’이라는 가치다. 노예나 주인이나 모두가 벗이 되고, 창녀나 세리들도 사람의 아들 예수와 한 자리에서 마시고 먹을 수 있었다. 조선 후기 천주교가 백여 년의 박해 동안 순교한 무명유명의 순교자들이 많았던 이유도 불평등한 조선사회의 압제와 불의한 사회 계급구조 가운데서 고통 받고 있던 백성들이 새로운 세상, 평등한 세상을 이룰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가 그 안에 살아 숨 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종교 안의 노동


재적 신자 4만 명이 넘는 이명박 장로 소속의 소망교회에서 교회 시설과 미화노동자들이 상습 체불에 항의해 노조를 설립하는 일이 있었다. 그러자 교회는 곧바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고 노조는 교회를 검찰에 고발하여 수사를 받았지만, 소망교회는 총회 헌법 시행규칙상 교회직원은 노동자가 아니므로 노조를 조직하거나 가입할 수 없다는 논리로 검찰수사를 비껴갔다. 


현재 자유한국당 당대표 황교안 총리는 2012년 『교회가 알아야 할 법 이야기』에서 “세상법보다 교회법이 우선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교회 유치원 교사를 노동자로 판단한 대법원판결을 “심히 부당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교회에 노동법이 적용돼선 안 된다는 완고한 논리는 사실 소망교회에서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것은 가톨릭교회나 불교의 사찰 노동자들에게도 마찬가지 문제다. 종교 안의 노동을 ‘봉사’와 ‘선교’의 명분으로 당연시하고 노동에 상응하는 비용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 종교 관련 기관들의 현황이다. 


노동조합법 제2조 1항에 “ ‘근로자’라 함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따르는 수입으로 생활하는 자를 말한다”라고 적시하고 있다. 그러니 교회 안에서 사무장이든 미화원이든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교회의 월급을 받고 생활하는 사람들은 모두 노동자인 것이다. 


가톨릭교회 안에서의 노동


2018년 2월에 천주교 인천교구 노동사목부는 ‘노동사목 40주년 미사’를 봉헌했다. 인천교구 노동사목 40주년 기념미사는 ‘똥물사건’이 일어난 지 40주년이 된 것을 기념한 것이다. 


1972년 5월 말 섬유노조 전 조합원의 83.2%는 여성이었다. 동일방직의 경우 1300여 조합원 중 남성은 200여 명에 불과했지만, 노동조합은 남성에게 장악돼 있었다. 게다가 남성 주도 노조는 노동자의 요구를 대변하지 못했다. 결국 여성노동자들이 중심이 돼 민주노조를 출범시켰지만 회사에선 온갖 폭력을 가했다. 1976년 7월 24일 탄압에 맞서 여성노동자들이 반나체 시위를 벌였지만 경찰에 의해 진압 당했다. 


▲ 남성 노동자들이 여성 노동자들에게 오물을 투척했다. (사진출처=한겨레)


똥물사건은 1978년 2월 남성 노동자들이 회사의 사주를 받고 여성 노동자들에 똥을 뿌린 사건을 말한다. 같은 노동자 남성이 노동자 여성에게 똥물을 뿌린 사건이다. 참 역설적인 것이 바로 그 2018년 2월은 인천성모병원 문제가 독립언론 < 뉴스타파 >에 연일 보도 되면서 사회적인 여론이 안 좋아지자 책임자인 원장과 부원장 성직자를 전면교체하고 운영에 대한 법적인 조치를 취하겠다는 약속을 보건의료노조와 지역시민사회단체 대표들과 하고 나서였다. 해고 노동자 홍명옥(전 인천성모병원 노조위원장)은 복직을 요구하며 2019년 5월 현재 아직도 1인 시위 중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1967년 심도직물 노동조합 사건 이후 1974년 지학순 주교의 구속을 시발점으로 민주화를 추구하던 재야 시민운동가들과의 연대와 개신교 성직자들 및 타종교 지도자들과의 교류를 촉진시켰다. 박정희 정권 몰락의 시작은 바로 1978년 동일방직 ‘똥물사건’이었다. 1978년 2월 21일 ‘동일방직사건’은 1979년 ‘YH사건’에 영향을 줬다. 이는 ‘부마항쟁’으로 이어졌고 박정희 정권을 몰락시켰다. 독재자 박정희가 무너질 것이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결국 그는 측근의 총을 맞고 유명을 달리했다. 


당시 천주교 인천교구의 나길모 주교와 인천교구 사제단은 주보를 통해 동일방직 노동자들을 지원하고 연대하는 투쟁에 동참했다. 천주교 인천교구는 그런 의미에서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러한 투쟁이 40년 지난 지금 인천교구의 노동문제는 역설적이게도 그때와는 반대의 상황이다.


전두환 정권에 맞선 1986년 인천 5.3투쟁, 1987년 민주화운동 등의 뿌리는 ‘동일방직사건’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영화를 통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 1987년.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세상에 알림으로써 ‘87년 민주화대항쟁’을 만들어낸 불씨를 천주교회가 만들어냈고 정의구현사제단은 역사의 중심에서 예언자적인 역할을 했음이 틀림없다. 


명동성당으로 상징되는 천주교회는 민주화의 성지였고, 가톨릭노동청년회, 가톨릭농민회, 가톨릭대학생회, 천주교도시빈민회 활동 등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의 편이 되어 그들의 든든한 보루가 되어 주었다. 그러나 지금 교회는 가톨릭경제인회, 가톨릭법조인회, 가톨릭의사회, 가톨릭한의사회, 가톨릭고위공직자회 등 사회적으로나 정치 경제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의 사교의 장, 출세의 장으로 재편되었다. 종교가 본래의 역할이나 기능에서 벗어나 가난한 라자로를 외면하는 자기모순에 빠져버렸다. 


가톨릭교회 안에도 많은 노동자들이 있다. 본당의 여러 가지 사무를 주관하는 사무장, 교회건물과 재산을 관리하는 관리장, 사제의 생활을 보조하는 식복사, 전국 교구의 교구청 직원들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직원들, 교회가 운영하는 대학과 병원, 사회복지시설과 기관 등 수많은 이들이 교회 안에서 노동을 하고 있다. 그것은 신앙이나 봉사의 미명하에 비용 없는 열정만으로 지속될 수 없는 노동이다. 그 임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자녀들을 교육시켜야 하는 사람들도 다수다. 그러나 교회 직원들의 임금은 동일 노동에 비해 상당히 열악하고 복지나 환경 역시 열악한 수준이다. 때로는 담당하는 본당 사제의 인사이동으로 직원들이 예고 없이 해고되거나 권고사직되는 경우도 있어 고용불안에 시달리기도 한다. 


드라마에 ‘정의로운 신부님’이 등장한 이유


▲ 드라마 <열혈사제> 주인공 김해일 신부가 구담 구청장 기자회견장에서 구청장의 비리를 폭로했다. (사진출처=SBS 열혈사제)


노동조합은 근로자 2인 이상이 있으면 설립할 수 있으며 사업장 단위로 설립할 수도 있고(이를 기업별 노조라고 한다), 산업 단위로도 설립될 수 있다(이를 산별 노조라고 한다). 따라서 교회 내의 근로자들은 교회 단위로 노조를 설립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전체 교회를 상대로 노조를 설립할 수도 있다. 이렇게 설립된 노조는 ‘사용자’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 사용자는 각 교구의 교구장이 될 수 있고, 근로자는 교회 내에서 임금을 받는 모든 이들이 해당될 수 있다. 


가톨릭교회 역시 노동을 존중하고 복음선포를 하며 교회의 거룩함과 ‘세상 속의 교회의 개혁’을 위해서 노동조합은 반드시 필요하다. 노동조합이 없다면 이 세상은 소수의 특권을 누리는 세력들만의 이해가 무자비하게 관철되는 심각한 불평등구조를 벗어날 방법이 없다. 노동조합은 자신들이 소속되어 있는 사회의 불평등구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을 올바르게 해결할 수 있는 효율적인 수단을 제공한다. 사회의 특권 세력이 노동법과 노동조합 제도를 혐오하는 이유는 세상과 교회의 개혁이 노동조합을 통해 이루어질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고, 교회 개혁은 특권 세력의 기득권 박탈로 이어지기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 직원에게 노조 가입 불가를 말하는 것은, 헌법을 무시한 처사이며 노조는 국가에 의해 보호를 받는 합법적인 제도임에 틀림없다. 성직자도 당연히 노동자이며 일은 노동이요 일하는 자는 노동자다. 예수님도 목수이자 노동자였다. 사도 베드로도 고기잡이 노동자였고, 사도 바오로 역시 선교 중에 그물을 짜는 노동을 했다는 기록이 성경에 남아있다. 


최근 대형교회, 대형교구, 대형사찰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교회나 사찰이 결코 세상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교단의 비민주적인 의사 결정 과정과 많은 교회와 사찰들이 세상의 기준인 ‘성장’에 급급해하며 제사보다는 젯밥에 관심을 더 많이 쏟는다. 한국가톨릭교회가 이러한 종교 시장의 한 가운데에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을 해야 한다. 교회의 본질적인 사랑과 믿음에 관한 기본이 제대로 선다면, 교회가 시대의 징표를 읽고 교회의 새로운 역할과 비전을 고민한다면, 노조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지만 이러한 불의와 불공정, 비리와 부정이 계속된다면 논의는 계속 진행될 것이다. 노동조합은 조직의 부패와 부정, 불의와 불공정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을들의 연대’ 약자들의 연대 임에 틀림없다. 노동조합 역시 소수의 힘들이 모여 이룬 권력을 남용해서는 안 되며 효율적인 관리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


요즘 TV 프로그램 중에 사제나 수도자, 성당이나 가톨릭교회를 소재로 한 드라마 영화들이 눈에 띈다. 아마도 ‘세상에 믿을 만한 무엇’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정부도 정치도 공무원도 법원도 검찰도 경찰도 믿을 수 없으니 ‘정의로운 신부님’, ‘정의로운 교회’, ‘정의로운 종교’를 기대하는 염원이 반영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종교는 지금도 늦지 않았다. 스스로를 성찰하고 자성하며 종교의 멋과 품위를 지켜내고 세상의 마지막 보루가 되어 주길 진심 희망하고 기대한다. 



[필진정보]
지성용 : 천주교 인천교구 용유성당 주임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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