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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그냥, 재미로, 그저 즐기려고 세상을 창조하셨다는데... - [휴천재일기] 2019년 6월 6일 목요일 현충일, 흐리고 비
  • 전순란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06-07 13:06:19
  • 수정 2019-06-07 13: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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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6일 목요일 현충일, 흐리고 비


테라스에 새로 장만한 탁자의 햇볓 덮개를 천막집에 주문했는데 2주가 다 되도록 소식이 없다. 전화를 했더니 찾아오면 오늘로 해 주겠단다. 다음 주초에는 서울에 가야 하니 오늘은 끝장을 봐야 한다. 읍내로 나가서 아저씨에게 어떻게 만들지 상세하게 설명을 한 후 나는 어제 수리한 자동차 브레이크가 밀리는 듯해서 라이닝에 문제가 있나 읍내 단골 정비공업사엘 찾아갔다. 주인에게 설명했다, 내 차 브레이크가 너무 밀리는 것 같으니 봐달라고.



차를 점검한 주인은 브레이크 라이닝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면서 최근 다른 차를 탄 적 있느냐고 묻는다. 그제 어제 이틀간 인월 동아공업사 안주인의 차를 빌려 탄 일을 얘기했다. 다른 차 타다 내 차를 타서 그런 느낌을 받았으리라 설명해 준다. 


하지만 차가 이미 낡아 제때제때 반응을 않는다고, 나이든 할머니들이 행동에서 굼뜨듯, 차도 나이를 먹으면 사방이 성한 데가 없다 여기고 살살 달래면서 타시란다. 어르신이 운전면허를 반납하고 운전을 멈추면 10만원을 준다는데, 저 차는 운행을 멈춰도 돈을 주고서 폐차를 해야 하니 사람의 운명이 조금 낫다. 



천막사 아저씨는 탁자덮개를 만들면서도 자기 장사 하느라 진도가 안 나간다. 무려 두 시간을 인내심을 갖고 옆에서 기다리며 어르고 달래서 겨우 만들어왔다. ‘함양식’이다. 그 불친절과 그 게으름을 함양사람들끼리 서로 흉보고 서로 탓하면서도 고치질 못한다. 그러다 보니 이웃 동네 남원에 손님을 많이 빼앗긴다. 남원은 전국에서 물건 값이 저렴한 3대 시장 중 하나로 꼽히고 친절까지 하다. 그러니 25년 휴천재 지을 때도 자재와 사람을 모두 남원에서 조달했다.


보스코가 얼마 전 내가 걸렸던 감기에 걸렸는지 편두통이 심하다며 정신을 못 차린다. 수지침을 놔 주고, 서랍에서 신경염 약을 찾아 먹이고, '몸이 건강해야 병을 이긴다'고 점심엔 연포탕을 끓여줬다. 그가 아프면 내가 간호를 하는데 그의 병세마저 안타까워 '아예 내가 아픈 편'이 마음 편하다. 아무튼 엄마로든 아내로든 '전업주부 실직할 일은 없어' 좋다.


지난번 이층 데크 수리에서 뜯어낸 판자의 처리가 수월치 않다. 갖다 버릴 수도 없고 태울 수도 없어 쌓아놓고는 애를 태우는데 드물댁이 '갖다 솥단지에 불 때겠다'니 나서기에 고마워서 얼른 리어커로 실어 서너차례 날라주었다. 하도 무겁고 힘들어서 어깨가 무너지게 아프다.



오늘 밤에 비가 많이 온다는데 소담정 양파는 줄기가 누렇게 쓰러져 추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 온 뒤에 캐겠다지만 그러면 일부라도 썩을지 몰라 '우리 다 같이 캡시다'면서 드물댁, 용산댁, 도메니카 그리고 나 네 여자가 양파를 캤다. 소라도 잡을 기세로! 도중에 비가 후두둑 내리기 시작하더니만 망에 담아 차고로 옮기고 나서야 굵은 비로 바뀌었다.


실낱같이 가느다란 뿌리 한 개씩 흙에 꽂아 놓았을 뿐인데 하느님은 얼마나 근사한 양파로 만들어내셨는지... '하느님이 왜, 뭐가 아쉬워서 세상을 창조하셨나?' 물으면 '하느님은 그냥, 재미로, 그저 즐기려고 세상을 창조하셨다'고들 대답한다. '즐겁고 온전한 놀이'였단다(몰트만). 하느님의 아쉬워서 세상을 만드셨다면 그 목적에 매어 순수한 놀이의 재미를 놓치셨을 게다.



친구가 내게 말했다. ‘비는 주룩주룩 내리는데, 온몸이 힘들어 후들거려도, 큰일을 해낸 뒤라 뿌듯하고 고맙다’고. 나는 친구에게 ‘우리는 친구니까, 조건 없이, 까닭 없이, 그저 안타까워서, 내 일처럼 했을 뿐이다.’라고 설명했다. 무목적의 우정이 하느님 사랑으로 주룩주룩 내리는 밤. 이웃들이 있어 산골이든 도회지든 삶은 더 풍요롭고 행복하다.


하지(夏至)가 아직 두어 주 남았지만 하지감자 꽃이 피는 땅속이 궁금해 두더지처럼 흙속을 더듬어 감자알을 찾았다, 비온 뒤 도랑에서 미꾸라지 움키듯. 돌쟁이 조막만한 감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안주인에게 초대받아 오늘 저녁식사에 오른답시고 신나한다. 



깨끗이 목욕시키고, 새 옷 입혀 쪄서, 기름에 구워 식탁에 올린 햇감자! 감자알이 귀엽기도 하고 맛도 있어 아프다던 보스코도 잘 먹는다. 잘 얻어먹었으니 부디 감기도 내일쯤엔 먼 길로 떠나주기를.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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