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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제도가 아니라 살아있는 실재 - [이기상-신의 숨결] 만남의 그리스도론과 섬김의 인문학③
  • 이기상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07-22 11:26:40
  • 수정 2019-07-30 15:4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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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곧 ‘하느님의 백성’이다


▲ 2017년 세월호 참사 3주기 미사 ⓒ 가톨릭프레스 자료사진


20세기 들어서서 가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그 동안 세상에 대하여 취해 왔던 소극적인 태도, 즉 은둔하고 기피하는 자세를 청산하고 교회 자체가 세계 안에 자리 잡고 “세상을 성화하는 성사”(Sacramentum Mundi)로서, “민족들을 비추는 빛”(Lumen Gentium)으로서 역할을 다하기로 세상에 천명한다. 그리고 온 세상 다양한 민족과 문화권 속에 퍼져 살고 있는 모든 “하느님의 백성”(Populus Dei)을 고루 돌보는 진정한 의미의 “하느님의 교회”로 거듭날 것을 대내외에 공표한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교회는 성직자 중심의 위계질서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성직자가 중심이 되어 움직이는 조직체계로서의 교회에서는 하느님의 백성들과 진정한 만남을 기대하기 어렵다. 여기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이 된 첫 담화에서 이렇게 분명히 말한다.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길을 열어가는 거룩한 하느님의 백성입니다.”(III, 16.) 


교회가 곧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천명하고 나선 것이다.


그리고 가톨릭 사상가 로마노 과르디니의 말을 인용하며 교회는 변화하는 시대를 만나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교회는 탁자 위에서 고안되고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라, 살아 있는 실재입니다. 교회는 오랜 시간 살아 있고, 살아 있는 다른 모든 것처럼 그 모습이 변하며 성장합니다. 그렇지만 그 본질은 항상 같습니다. 교회의 심장은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 교회의 정신은 다시 깨어납니다.”(II, 30.)


또한 교회는 변화하는 거리[상황]에 뛰어들어 실제의 사건[사태]에 맞닥뜨려 그것과 마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회는 자기 안에서 나와 변두리로 가야 합니다. 교회는 자기 자신을 확신하는 영적 병듦을 피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교회는 탈이 납니다. 교회가 거리로 나가면 모든 사람이 그런 것처럼 여러 사건과 마주하게 될 겁니다. 그렇지만 교회가 자신을 가두고 있으면 고립된 의식으로 늙어 갑니다. 거리로 나가서 사건과 조우하는 교회와 자신을 확신하는 병에 걸린 교회 중에 저는 분명 앞의 교회를 선호합니다.”(II, 46)


교회는 자기 안에서 나와 거리로 나가야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의 복음화 과제에서 최우선인 것은 규정의 축소나 삭제가 아니라 “거리로 나가서 사람들을 찾고 그들을 직접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러면서 이 모든 것을 그리스도와 함께, 그의 십자가와 더불어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심장이며 근본이고 기준임을 단언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십자가 없이 하려고 한다면, 십자가 없이 일구어 나가거나 십자가 없이 그리스도를 고백한다면, 우리는 주님의 제자가 아니라 세속인에 불과할 뿐이라고 힘주어 말한다.(III, 16) 그리고 거기에 바로 가톨릭교회의 영성이 자리하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교회의 본질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하느님의 백성, 거룩한 하느님의 백성들의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교회의 생명이나 활동을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목자이지만, 역사 안에서 그분의 현존은 인간 존재의 자유 안에 스며 있습니다.”(III, 193)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의 시대상을 “폭력과 증오, 무죄한 이의 고통과 돈이 지배하는 제국의 그림”이라고 묘사한다. 그것은 온갖 형태의 이기주의에 갇혀 자기만족에 안주하려는 현대인의 속성에서 기인하고 있다. 그 결과 “세상은 자아도취와 소비지상주의, 쾌락주의에 빠져 있다”.(IV, 94.) 


이 세상의 권력가들은 살아 계신 하느님을 내쫓고 그 자리에 유행이라는 우상을 대신 앉혀 놓았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 사업을 통해 인류에게 베풀어 주신 풍요로운 삶이 소위 ‘죽음의 문화’로 대체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우리가 인간적, 그리스도교적 가치를 배제한 채 현세 권력에만 매료되어 있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이라고 하는 우상의 포도주에 취해 있는 것이다. 


교회는 영적 세속주의와 죽음의 문화에 대처해야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인류는 두 가지 선택지 앞에 서게 되었다고 말한다. 한 부류는 예수의 무덤만을 보고 절망에 빠져 세속적인 것으로 도피하고 자신들만의 우상을 만든다. 다른 한 부류는 베드로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생명 그 자체로 믿고 생명을 향해 자신의 마음을 연다. 천사는 무덤 주위를 맴돌며 주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루카 24,5)고 일깨운다. 


▲ 에릭 라벨로의 `The Untouchables` 프로젝트. 성직자의 아동성폭력, 시리아 내전, 태국의 아동성매매 등 전세계에서 벌어지는 아동인권문제를 상기시킨다.


영적 세속주의가 판을 치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거짓 영에 빠져 거짓 신을 섬기며 거짓 신에게 헌신하고 있다. 많은 공장 노동자들이 이윤이라는 신을 섬기는 자본주 때문에 적정한 임금을 받지 못하고, 많은 여성들은 통치라는 신 밑에서 희생당하고 있다. 많은 어린이들은 욕정이라는 신을 위해 제물이 되고, 아름다운 산과 들은 개발이라는 신을 위해 황폐화되고 있다.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욕심이라는 신을 위해 희생당하고, 무방비 상태의 많은 사람들이 국가안보라는 신을 위해 희생당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 공동체도 이러한 이기주의가 보여주는 잘못과 죄악으로부터 멀리 있지 않다고 고백한다. 개인의 이기심을 합리화 시키고 가족·지역·주민·민족·시민이 공존할 수 있는 윤리적 가치를 무시하는 사회 중심부의 죽음의 문화와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미래가 없는 수많은 어린이의 고통스러운 얼굴에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노인들의 떨리는 손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 하나 없이 힘든 삶을 이어가는 수많은 가족의 비틀거림에서 당신을 드러내시는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에게 성숙의 기회를 부여하시는 하느님”의 선물을 받을 준비를 해야 한다고 권한다.(II, 64) 


▶ 다음 편에서는 ‘신앙인들이 가야할 영성의 길’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 참고문헌 >


사베리오 가에타, 『교황 프란치스코. 새 시대의 응답자』, 강선남 옮김, 성바오로, 2014. [II] 


매튜 번슨, 『교황 프란치스코, 그는 누구인가』, 제병영 옮김, 하양인, 2013. [III]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아브라함 스코르카, 『천국과 지상』, 옮긴이 강신규, 율리시즈, 2013. [IV] 




[덧붙이는 글]
이기상 교수님의 ‘허무주의 시대와 영성 - 존재의 불안 속에 만나는 신(神)의 숨결’은 < 에큐메니안 >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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