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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에 반대하는 무리는 메신저를 악마화해 - [이신부의 세·빛] 메시지와 메신저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10-11 17:09:30
  • 수정 2019-10-11 17: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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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7주간 토요일 : 요엘 4,12-21; 루카 11,27-28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메시지는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으니,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직접 인간 역사에 개입하시는 메시아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것이고, 회개란 이 시대에 동참하는 행동을 의미했습니다. 당시에도 사두가이나 바리사이, 젤로데나 에세네파, 심지어 세례자 요한까지도 자신들의 주장을 하느님 나라 사상으로 포장하여 말했기 때문에 새로울 것은 없었지만, 충격적으로 새로웠던 것은 그 나라가 ‘다가왔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사두가이나 바리사이나 젤로데나 에세네파, 그 당시 이스라엘 사회를 움직이던 어느 세력도 감히 그렇게는 말하지 못했습니다. 오로지 세례자 요한만 임박한 이스라엘의 파국을 염두에 두고 예수님과 같은 표현을 썼을 따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임박한 하느님 나라를 파국으로가 아니라 복음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회의 주류를 자처하던 소수 엘리트들과 달리 소외되어 있던 다수 민중 속으로 들어가셨고 그들에게 기쁨이 될만한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죽어서 내세에 좋은 데 가리라던가 하느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식의 종교적인 소식이 아니라 지금 벼랑에 내몰려 있던 그들에게 희망이 되고 위안이 되는 삶의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그래서 ‘복음’이라고 말씀하신 것이고 이것이 주류와는 물론 요한과도 다른, 예수님께만 독창적이었던 메시지의 특징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류 엘리트들에게는 그분의 메시지가 매우 불편한 소식이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안에서 그분의 메시지가 명성을 얻으면 얻을수록 그들은 직접적으로 그분의 메시지가 그들을 겨냥하지 않았는데도 그분을 모함하고 중상하다가 급기야는 제거해 버릴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 음모의 작전은 그분의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이신 그분을 공격하는 것이었습니다. ‘먹보요 술꾼’이라는 험담에서부터, ‘죄인들과 어울린다’는 가짜뉴스에다가, ‘마귀 두목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악의적 프레임까지 뒤집어 씌웠습니다. 


메시지가 명성을 얻자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에 주목하는 경향은 지지자들 안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어떤 여인이,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고 외친 일이 그것입니다. 이 일을 보도하는 루카의 의도를 짐작해보자면, 이런 경향에서 나온 일들이 이밖에도 얼마든지 많이 일어났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덕담을 들으신 셈 치고 되돌려주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메신저이신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당신을 칭찬하기만 하고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는 구경꾼들보다는 그 메시지를 듣고 실행하는 이들이 더 바람직한 성취였습니다. 


메시지에 반대하는 무리들이 메신저를 악마화시켜 메시지까지 무력화시키는 일은 지금도 흔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중이 무지몽매하던 시절에는 그 어처구니없는 시도가 먹히기도 했습니다. 억울한 사람을 잡아다가 고문하고 거짓 자백을 받아내어 간첩으로 조작해도 ‘빨갱이’에 의한 공포에 사로잡혀있던 국민은 정보 당국과 검찰의 발표와 언론의 보도를 진실로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70년 전에 제주에서, 40년 전에 광주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다 그러하고, 테러가 일어나거나 항공기를 폭파하거나 군함을 침몰시켜도 모조리 북한의 소행이라고 정부가 발표하면 통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국민으로서는 6.25 전쟁에 대한 공포스런 기억이 있는데다가 도무지 확인할 길도 없었고 정부와 언론을 구성하고 있던 엘리트들에 대한 신뢰도 어느 정도 있었기 때문에 그런 거짓이 통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이런 거짓 역사에 대한 학습효과도 있는데다가 일방적이었던 언론 환경이 인터넷 덕분에 쌍방향으로 달라져서 신문 방송이 보도해도 독자와 시청자들이 근거를 찾아서 사실 확인을 다 해 봅니다. 그리고 정부와 언론, 심지어 판·검사 같이 엘리트 행세를 하던 작자들이 얼마나 거짓을 꾸며댔고 또 얼마나 그 인격이 허접한지를 다 보았기 때문에 메시지만으로는 믿지 않습니다. 메신저를 확인해 보는 것입니다. 메신저가 믿을 만하면 그가 말하는 메시지도 믿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메시지를 믿을 만하게 세상 사람들이 받아들이도록 하려면


‘결판의 골짜기’에서 ‘주님의 날’이 가까웠다고 선포하는 요엘의 예언 메시지는 예수님에 의해서 확대되어 선포되었고, 그분을 따르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계승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메시지를 믿을 만하게 세상 사람들이 받아들이도록 하려면, 예수님이라는 메신저가 그러하셨듯이 우리도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믿을만한 메신저로 처신해야 합니다. 왜 무신론자가 이렇게 많고 또 냉담자가 늘어나는지에 대한 대답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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