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은 24일 성탄 전야 미사 강론과 성탄 우르비 에트 오르비(Urbi et orbi)⑴ 메시지를 통해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그만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모든 인간을 대가없이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교황은, 우리 역시 우리 이웃이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지 평가할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사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수께서는 삶을 바쳐 역사를 바꿔”
교황은 24일 성탄 전야 강론에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다”(티토 2, 11)고 강조하면서 “이러한 은총은 무엇인가? 이는 바로 하느님의 사랑이며, 삶을 변화시키는 사랑이고, 역사를 쇄신케 하는 사랑이며, 악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사랑이며, 평화와 기쁨을 퍼트리는 사랑”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통해 하느님의 은총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난 것”이라고 말하며 “오늘 밤 우리는 그럴 자격이 없음에도 그분께서 우리와 같이 낮아지셨음을 깨닫는다”고 말했다.
교황은 “예수께서는 내게, 당신에게, 그리고 우리 각자에게 ‘나는 너를 사랑하고, 언제나 사랑할 것이다. 너는 내가 보기에 소중하다’라고 말씀하신다”며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행동하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당신을 사랑하시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교황은 “하느님을 우리가 찾기 전에, 그보다 먼저 우리를 찾고 계시는 하느님이 우리를 찾으실 수 있도록 하자”며 “구원하시는 분은 예수님이기에, 우리도 우리 능력이 아니라 그분의 은총에서부터 출발하자”고 강조했다.
우리가 바뀌면 교회가 바뀌고, 다른 사람들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을 바쳐 우리 스스로를 변화시키기 시작하면 역사가 바뀐다.
교황은 “예수께서는 그 점을 오늘 밤에 보여주고 계신다”며 “예수께서는 누군가에게 어떤 행동을 강요하거나 말로써 역사를 바꾼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을 바쳐 역사를 바꿨다”고 역설했다.
마지막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일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수 탄생과 관련된 일화를 이야기하며 예수가 태어났을 때 목동들은 각자 값진 선물을 들고 온 반면, 그 중에는 아무것도 들고 오지 않은 목동 하나가 있었다. 그는 너무 가난하여 내놓을 것이 없어 부끄럽게 서있었다. 요셉과 마리아는 다른 목동들이 가지고 온 선물을 받느라 애를 먹고 있었고, 그 때 마리아는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은 이 목동을 보고서 그의 품에 예수를 안겼다고 말했다.
“이 목동은 예수를 맞아들이면서, 자기가 받을 자격이 없는 무언가를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목동은 언제나 텅 비어 있던 것처럼 보이던 자기 손을 바라보았고 이것이 하느님의 요람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 목동은 이 같은 선물을 자기 자신만을 위해 간직할 수 없다고 생각해 부끄러움을 이겨내고 다른 이들에게 예수를 보여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난민, 내전, 납치, 학살… 모두 ‘불의’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탄을 기념하여 전 세계에 보내는 메시지에서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보게 되었다”(이사 9, 1)는 구절을 들어 전 세계의 모든 분쟁이 해결되기를 다시 한 번 기도했다.
가장 먼저 시리아와 리비아 등 국제적 갈등으로 내전을 겪고 있는 중동 분쟁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며 “나라를 찢어놓은 적대행위의 끝을 여전히 보지 못하고 있는 사랑하는 시리아 국민들의 위로가 되어주소서”라고 기도했다.
국제사회의 합의에 따라 팔레스타인의 자치를 인정하는 ‘두 국가 해법’을 정면으로 위배하여 미국 트럼프 정부가 이스라엘의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인정한 사건과 팔레스타인 자치령 요르단강 서안의 이스라엘 정착촌을 법적으로 인정한 사건으로 내홍을 앓고 있는 예루살렘, 그리고 내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라크와 예멘을 위해서도 기도했다.
칠레, 베네수엘라 등 경제 위기에 따른 국민들의 시위와 이를 무력 진압 하는 등으로 “여러 국가들이 정치사회적 격동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아메리카 대륙 국가들에 대해서도 기도했다.
교황은 러시아와의 갈등으로 오랜 내전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위해서도 기도했다. 우크라이나는 친유럽 성향과 친러시아 성향으로 정치 지향이 갈라져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림 반도를 점령하고, 이후에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서로 갈려 내전까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아프리카 대륙에서 내전을 겪고 있는 콩고나 극단주의 세력의 납치, 학살로 고통 받고 있는 부르키나 파소, 말리, 니제르, 나이지리아 등을 위해서도 기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신 하느님의 아들이 이러저러한 수많은 불의들로 인해 안전한 삶을 희망하며 자기 땅을 떠나야만 하는 모든 이들의 힘이 되어 주시고 이들을 보호해주소서”라고 기도하며 “이들이 사막과 바다를 건너게 만드는 것도 불의요, 이들이 난민수용소에서 말로 다할 수 없는 학대와 온갖 노예 상태와 고문을 겪게 만드는 것도 불의”라고 규탄했다.
한편, 성탄 당일 프란치스코 교황과 영국 성공회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 스코틀랜드 장로교 전 총회장 존 찰머스 목사가 공동으로 남수단의 평화 협정의 조속한 이행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지난 11월 프란치스코 교황과 웰비 대주교는 남수단의 평화 협정 이행에 따라 임시정부가 약속된 기한 내에 수립된다면 함께 남수단을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1) 우르비 에트 오르비(Urbi et orbi) : 라틴어로 ‘로마 도시와 전 세계에’라는 뜻으로, 특히 교황이 라틴어로 행하는 공식적인 강복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