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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인천교구 사제단,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위한 단식기도회
  • 이완규
  • 등록 2015-07-01 10:23:17
  • 수정 2015-07-01 14:5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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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인천 답동 성당에서 진실과 민주주의의 회복을 염원하는 천주교 인천교구 사제단 단식기도회가 진행되고 있다.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김윤석 바오로 신부)가 주관한 사제단 단식기도회는 29일 시국미사를 시작으로 평일미사와 묵상을 하며 74()까지 계속된다.




이하 사제단이 29일 발표한 성명서 전문이다.


진실의 인양은 좌초된 민주주의의 인양이며 '내일'의 인양이다.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마르코 5:23)


1. 지난 일 년, 무고한 목숨들이 가라앉는 그 자리 위로 숱한 말들이 떠올랐다.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국가 실현이라는 상식적인 말부터, '국가 개조'라는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들을 법한 말까지, 모두 어제와는 다른 나라를 염원했다. 그래야 살 수 있다는 절박함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바다 밑 진창에 묻혀있는 선체처럼 진상은 묘연하고 상처는 깊어졌다. 깨닫는 것은 불행스럽게도 그 많은 말들 모두 순진한 바람이었거나, 기만의 허언이었다는 사실뿐이다. 피붙이 잃은 이들의 둘 곳 없는 시선처럼 모두 부유할 뿐이다.



2. 가장 절망스러운 것은 참사의 처음부터 터져 나온 국가는 왜 그날 아이들을 건져내지 않았으며, 그렇다면 도대체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절망적 물음에 여전히 답할 길이 없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지난 일 년 간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희생자 가족들과 국민의 열망을 국론분열로 호도하고 그 모든 시도들을 조롱하고 겁박한 권력자들의 행태는 참사로 드러난 것이 비단 국가의 초라한 민낯만이 아니라 민주주의 위기임을 깨닫게 한다.


국가의 본질에 대한 질문은 결국 민주주의라는 더욱 절박한 질문과 맞닿아있는 것이다. 참사의 진상 규명이 진실의 인양인 동시에 민주주의의 인양인 이유다.



3. 정부의 부실대처와 은폐로 야기된 금번의 메르스 사태는 지난 해 봄의 참사와 함께 다시 한 번 광복 이래 70년간 이 땅의 민중들을 대접하던 권력자들의 태도를 떠올리게 한다.


국민을 지킬 수도 또 상황을 통제할 수도 없는 무능, 그도 모자라 군대를 앞세워 제 나라 국민을 도륙하던 35년 전 광주와, 저 하나 살고자 피난행렬이 가득했던 다리를 폭파한 반세기 전의 권력자들의 잔영 말이다. 끊겨진 다리 위 망연하게 펼쳐진 한강의 겨울이, 피로 물든 금남로의 봄이, 피붙이 잃은 통곡의 바다로 다시 휘돌아 넘실거리는 끔찍한 잔영이다.



4. 최악의 가뭄, 보에 막혀 녹조덩어리로 변해버리 4대강, 미군의 탄저균 불법 실험, 진정될 기색 없는 전염병, 하나같이 위중하고 시급한 일들이다. 하지만 아랑곳없이 총리의 자리는 이례적 신속함과 함께 공안검사 출신으로 채워졌고 그와 동시에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 애쓰던 시민단체에는 압수수색이 단행되었다.


그뿐인가. 독단적 시행령으로 그나마 마련된 특별조사위원회는 출범조차 못했고 진상의 규명은 더욱 요원해졌다. 그 와중에도 결국 대량 해고와 비정규직 양산, 평범한 삶들의 파탄으로 귀결될 자본의 노동시장 개악은 국가의 엄호 아래 차곡차곡 진행 중이다.


도대체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얼마나 더 형편없어져야 하는가? 가족들의 마지막 인사마져 금지된 채 비닐 팩에 담겨 화장터로 옮겨진다는 전염병이 앗아간 목숨들의 안타까운 뒷모습을 앞으로 모두에게 닥칠 "각자도생(各自圖生)", 파국의 단면이다.



5. 오늘부터 이어지는 우리의 단식기도는 지난달 518, 광주민중항쟁 35주년을 맞아 저 남녘 팽목항으로부터 시작해 북상 중인 동료 사제들의 기도 행렬과 다르지 않다. 느리지만, 고되지만, 끊어진 인간의 길을 잇고 깊이 패인 시대의 상처를 메우자는 성심의 행렬이다.


세월호가 열어젖힌 오늘의 참혹함을 다시 한 번 묵상하며 우리가 찾고자하는 것은 지난 70년간 이 땅에서 반복된 서글픈 잔영들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 많은 무명씨들이 목숨을 던져서라도 되찾고자했던 그 나라, 깨지고 무너지면서도 지키고자했던 민주주의에 대한 숭고함이며 내일을 위한 절박함이다.



6. 오늘은 믿음의 밑돌로 자신을 봉헌한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 죽음이 순교였으니 더할 나위 없이 축제이다. 목숨을 얻는 것보다 어떻게 잃는지를 축제로 기념하는 교회의 역설적 셈법은 그 자체로 믿는 이들의 훌륭한 모범이다.


순교, 곧 자기부정(不定)은 비움의 가장 완성된 표현이다. 스승 예수가 소진한 삶이다. 배와 함께 진창에 처박힌 민주주의, 피붙이 잃은 어버이들의 눈물, 밑동부터 흔들려 지상 그 어느 곳에서도 살 수 없는 고공의 노동자들, 헐값에 아무렇게나 팔려 다니는 청춘들, 마지막 숨을 헐떡이는 4대강, 자본가가 되어버린 교회, 이 모든 부정함이 우리가 봉헌할 기도다. 모든 평신도와 수도자, 사제들께 절박한 마음으로 함께 기도하자 부탁드린다.



2015629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에 진실과 민주주의의 회복을 염원하며

천주교 인천교구 사제단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사제연대, 정의구현인천교구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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