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새 회칙 「모든 형제들」 전문이 공개되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회 회칙”이라고 부르는 이번 새 회칙은 국적, 인종, 성별과 같은 정체성을 뛰어넘어 인류를 향한 “형제애”와 그 토대가 되는 “사회적 우애”를 강조하고 있다.
「모든 형제들」는 총 287항으로 구성되어, 246항으로 구성된 「찬미받으소서」에 비해서 긴 회칙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새 회칙 집필 가운데 벌어진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이 형제애의 절실함을 더욱 여실히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서로 다른 모습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이룬 인류가 일치하기 위해서는 정치, 경제 분야의 자기중심적 태도가 극복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이기주의에서 비롯되는 불평등한 경제 체제, 초국적 기업, 신자유주의, 대중주의(포퓰리즘)적 태도를 지향하는 지도자들이 인류의 형제애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같은 무리에 속해 있는지 따지지 말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 곁에 머물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문헌 가운데 ‘멀리 있을 때나 함께 있을 때나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하여라’라는 내용을 두고 “이런 간단한 말로써 성 프란치스코는 물리적인 거리와 무관하게, 어디에서 태어나 어디서 살고 있는지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알아보고, 가치를 인정하며, 사랑할 수 있게 해주는 열린 형제애의 핵심을 표현했다”(1항)고 설명했다.
“하나의 인류로서, 같은 운명을 타고난 여행자로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자녀들로서, 모두 형제로서 각자 자기 신앙과 신념의 풍성함으로, 자기 자신의 목소리로 꿈을 꾸자.”(8항)
프란치스코 교황은, 강도를 맞아 길거리에 쓰러져 있던 유대인을 구해준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오늘날 사회의 여러 차별과 학대에 의해 상처받는 이들과 같다고 강조했다.
“길을 가다보면 우리도 반드시 그렇게 다친 사람을 만나기 마련이다. 오늘날에는 그렇게 다친 사람들이 많다. 길가에서 도움을 청하는 이들을 포용할 것인가 배제할 것인가의 문제는 모든 경제, 사회, 정치, 종교계의 계획을 정의한다.”(69항)
교황은 “(비유에서) 모른 채 지나친 이들에게서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이들이 종교인이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들은 하느님의 제사를 돕는 이들이었다. 사제와 레위인이었기 때문이다.”라며 “하느님을 믿고 숭배한다고 해서 그분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는 상징인 셈이다. (…) 때로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이 믿는 사람들보다 하느님의 뜻을 더 잘 실천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74항)고 지적했다.
서로를 돕지 않은 종교인과, 자신을 멸시하는 민족을 도운 사마리아인의 모습에서 우리가 서로의 정체성을 넘어선 인류로서의 정체성을 습득하여 이웃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수는 이 비유를 들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한다. ‘누가 내 이웃인가?’ 예수 시대의 사회에서 ‘이웃’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옆집 사람을 말했다. (…) 사마리아인은 당대 일부 유대인들에게 멸시의 대상이자 불결한 존재로 취급받았고, 도움을 받아야 할 이웃에 포함되지 않았다. 유대인이었던 예수께서는 이러한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꾼 셈이다. 그분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누가 우리 이웃인지를 자문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 가까이 지낼 것을, 즉 서로의 이웃이 되라고 권고하신 것이다.”(80-81항)
자기 권력 유지하려 논란만 양산하는 대중주의 지도자들
교황은 형제애를 가로막는 극단적 정치 지도자들에 관해서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를 두고 미국 가톨릭 매체는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자이로 볼소나로 브라질 대통령, 마태오 살비니 이탈리아 전 총리 등을 겨냥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늘날 많은 국가에서 정치 체계를 이용해 분노를 일으키고, 상황을 악화시키며, 양극화하고 있다면서 “이 때 정치는 더 이상 공동선을 위한 건전한 토론이 아니라 즉각적 결과를 추구하는 마케팅 수단일 뿐이다. 이 저열한 비방 연극 가운데 토론은 끊임없는 논란과 반대의 상황을 만드는데 악용된다”(15항)고 비판했다.
교황은 또한 일부 극단적인 성향을 보이는 지도자들을 향해 “자신의 개인적 계획과 권력 유지를 위해 정치적으로 대중문화를 이용하여 이념적인 상징을 통해 사람들을 사로잡게 될 때 지도자의 활동은 불온한 대중주의로 변질된다”며 “때로 대중 일부의 가장 저급하고 이기주의적인 성향을 부추겨 인기를 얻으려는 자도 있다”(159항)고 강하게 질타했다.
“폐쇄적인 대중주의 집단은 ‘대중’이라는 단어를 왜곡한다. 실제로 이 단어가 말하는 것은 진짜 대중이 아니다. ‘대중’은 열려있다. 즉 살아있고, 역동적이며 미래가 있는 대중은 언제나 다른 존재를 통합하는 새로운 정반합에 열려있다”(160항)
교황은 익명성이 보장되는 비대면 소통을 하는 인터넷에서 “이상한 형태의 공격성, 욕설, 학대, 비방, 언어폭력이 창궐하고, 물리적 접촉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형태로 폭주한다”(44항)며 여러 정치 인사들의 혐오 발언 등에 대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모든 사람의 존경을 잃게 될까 말하지 못했던 것들이 오늘날에는 심지어 일부 정치 인사에 의해 직설적으로 표현되고도 벌 받지 않고 있다”(45항)고 안타까워했다.
극소수 이익만 챙기는 신자유주의, ‘낙수효과’는 “형편없는 사상”
교황은 21세기 서로의 거리는 기술발전을 통해 어느 때보다도 가까워졌지만, 이는 공동체로서가 아닌 ‘노동력’으로 계산되는 존재로서 일원화된 것이라고 지적하며 그 결과로 발생하는 인간존엄 파괴와 불평등을 비판했다.
교황은, 지역 갈등과 공동선에 대한 무관심을 이용해 세계 경제가 단일한 문화를 강요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문화는 세상을 하나로 묶어주지만, 개인과 국가를 분열시킨다”(9항)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문화가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있는 강자의 정체성을 우선시하면서 취약하고 빈곤한 지역의 정체성을 해체시켜 이들을 더욱 유약하고 의존적인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이처럼 ‘분열 통치’하려는 초국적 기업들에 의해 정치가 약화되고 있다”(12항)고 지적했다.
인간을 존엄한 존재가 아닌 ‘쓸모’로만 판단하는 사고는 “인건비 감축이 초래하는 심각한 결과를 고려하지 않은 채 이에 집착하는 태도”를 통해 드러나고 “그 직접적 결과인 ‘실업’은 빈곤의 국경을 넓혀간다”(20항)고 지적했다. 교황은 오늘날 전 세계 수많은 내전과 분쟁의 바탕에 경제적 이익의 추구가 있다고 지적했다.
“인종, 종교적인 이유로 인한 전쟁, 폭력, 박해와 수많은 인간존엄 침해 사례는 특히 경제적인 이익에 부합하느냐에 따라 달리 인식된다. 강자에게 부합할 때는 진실인 것이 그에게 득이 되지 않을 때는 더 이상 진실이 아니게 된다.”(25항)
프란치스코 교황은 “일부 사람들은 자유시장 경제가 모든 것을 보장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통제 불능의 팬데믹이 초래한 예상치 못한 타격은 소수의 이윤보다는 모든 사람, 즉 인간을 떠올리게 만들었다”(33항)고 시장만능주의의 맹신을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일부 국가가 코로나19 백신을 독점하려는 등의 세태를 두고 “보건 위기 이후 가장 최악의 반응은 이전보다 더 소비의 열기와 이기주의적인 자기 보존에 빠지는 것”이라며 “사회가 여전히 시장의 자유와 효율성이라는 기준에 지배된다면, 형제애는 그저 또 다른 낭만적인 표현에 지나지 않게 된다”(109항)고 경고했다.
교황은 재산의 ‘사회적 기능’을 강조하면서 오늘날 불평등이 모두가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재원마저 사유재산권이라는 미명하에 소수가 독점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교황은 “초대 그리스도교 때 많은 지식인들은 생산된 재화를 어떻게 함께 사용할 것인가를 숙고하면서 보편적인 입장을 전개했다. 이로 인해 어떤 사람이 존엄하게 사는데 필요한 것이 없다면 누군가가 그것을 빼앗아 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 교황 그레고리오1세의 말처럼 ‘우리가 가난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준다고 말할 때, 이는 우리가 가진 것을 준다기보다는 그들의 것을 그들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 사유재산권은 생산된 재화의 보편적 사용이라는 원칙에서 파생된 부차적인 기본권일 뿐이다”(119-120항)
특히 교황은 모든 것을 시장질서에 내맡기는 신자유주의 질서를 강하게 질타했다.
“신자유주의적 신앙 교리를 강요해봐야, 시장만으로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는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언제나 같은 해법만을 제시하는 형편없는 반복적인 사상이다. 신자유주의는 ‘낙수효과’와 ‘낙숫물’처럼 마법과 같은 개념을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사용해 자기 복제 할뿐이다.”(168항)
교황은 “소위 말하는 낙수효과는 불평등을 흡수하지도 않고, 사회관계를 위협하는 새로운 폭력의 근간이 된다”(168항)며 개별 국가보다 초국적 기업이 더 큰 지배력을 행사하는 오늘날 “여러 국가로 이뤄진 가족이라는 개념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유엔의 개혁과 더불어 국제 경제, 재정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173항)고 강조했다.
말 뿐이 아니라, 실제로 모두 ‘동등한 인간’임을 인정해야
교황은 “전 세계 사회 체계는 여성이 남성과 정확히 같은 존엄과 권리를 가졌다는 사실을 명확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말로는 그렇다고 하지만 모든 결정과 현실은 집요하게 반대되는 메시지를 내보내고 있다.”(23항)면서 여성들이 체감하는 현실적 불평등을 지적했다.
이러한 권리 불평등이 발생하는 이유는 정치경제 체제가 실질적으로 여성, 이민자 등 시대의 약자들이 생명을 가진 같은 인간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대중주의 정치 체제와 더불어 자유시장 경제 체제 기반 하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이민자의 도래는 막아야 하는 일이 된다. (…) 이런 근거 없는 추상적인 주장 너머로 많은 생명이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37항)
오늘날 사회에서 “사람들은 이민자가 인간이 아니라고는 절대 말하지 않겠지만, 의사결정과 이들을 대하는 방식에서 다른 사람보다 쓸모없고 중요하지 않은, 인간답지 않는 존재로 간주함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인이 자기 신앙보다 정치적 선택을 우선시하여 이러한 사고방식과 태도를 갖는 일은 용인할 수 없는 일이다”(39항)라고 경고했다.
교황은 인간의 근간이 되는 교육에서부터 국적, 인종, 종교 등과 관계없이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에 더해 이민자를 ‘소수민족’이나 ‘이방인’이 아닌 똑같은 국민으로 받아들이는 사고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이민자에게 모든 사람이 사법권을 누릴 수 있는 그늘이 되어주는 권리와 의무의 평등에 기반한 ‘시민권’의 개념을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온전한 시민권’의 개념을 세워 ‘소수민족’이라는 용어의 차별적 사용을 거부해야 한다. 이러한 표현에는 고립과 열등감의 싹이 담겨있다. 즉, 적대감과 반목의 각축장이 되는 것”(131항)이라고 밝혔다.
이외에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형제 완전폐지(269항)와 ‘정당한 전쟁 거부’(258항)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전쟁의 쓸모보다 위험이 더욱 클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더 이상 전쟁을 해결책이라 생각할 수 없다. (…) 합리적인 기준을 옹호하며 ‘정당한 전쟁’이라는 것을 말하기는 어렵다. 더 이상 절대로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258항)
한편, 이번 회칙의 이탈리아어 제목인 ‘Fratelli Tutti’(모든 형제들)과 관련해 영미권을 중심으로 이 제목이 여성을 배제하기 때문에 성차별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모든 형제자매들’이라는 의미가 담긴 제목으로 번역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기도 했다.
교황청 홍보부 편집국장은 이에 관해 “인류의 절반인 여성을 배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제목은 남성과 여성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라고 반론한 바 있다. 제목 자체가 성 프란치스코의 문헌에서 인용한 것이기에 그 형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과 시대에 맞게 이를 고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탈리아어에서 ‘fratelli’(단수형 fratello)는 성별이 남자인 형제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성별을 구분하지 않는 친구, 동료를 가리키기도 한다. 교황청은 결국 각국 주요 언어로 번역된 제목을 내놓지 않은 채 이탈리아어 제목 ‘프라텔리 뚜띠’(Fratelli Tutti)만을 표기했다.
이번 회칙이 발표되고 이슬람 수니파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프란치스코 교황과 2019년 2월 종교간 분쟁 종식을 선언하는 문건에 함께 서명했던 알아즈하르의 대이맘 아흐메드 알타예브는 “교황의 메시지 ‘우리는 모두 형제자매’는 공동문건의 연장선이다”라고 가톨릭교회의 새 회칙 발표 소식을 환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