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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는 소통을 위한 것이고, 소통은 관계를 위한 것이다 - [글로벌인문학] 6 사이의 인문학 : 관심·인정·사랑받기 위해 사이하기
  • 이기상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0-11-23 11:17:05
  • 수정 2020-11-20 17:2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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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미디어 현실 : 사이-세상


인터넷 강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한국은 스마트폰 가입자 5,000만을 넘어선 시대에 들어섰다. 스마트폰 사용자 5,000만은 이동통신 가입이 어려운 미취학 아동이나 초고령층 등을 제외한 ‘국민 1인당 1스마트폰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스마트폰이 열어주는 새로운 미디어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이제 의심의 여지가 없다. 첨단 미디어기기로 인해 우리의 일상은 확 변했다. 손안에 카메라, 녹음기, TV, 영화관, 도서관, 채팅방, 은행 등 온갖 것이 다 융·복합적으로 들어있는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그야말로 일상생활이 다 해결된다. 


▲ 공익광고 < 스마트폰으로 잃어버린 것에 대한 묵념 > 중


그런데 이에 따른 부작용 또한 심각하다. < 스마트폰으로 잃어버린 것에 대한 묵념 >이라는 제목의 한 공익광고를 보면 사랑하는 연인의 데이트, 가족의 생일파티, 학창시절 응원단, 결혼식장 등 삶의 모든 공간에서 사람들이 집중하고 있는 대상은 스마트폰이다. 공익광고의 메시지는 현대인들이 스마트폰으로 ‘대화’, ‘가족’, ‘열정’, ‘관심’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장 따뜻하고, 즐겁고, 유쾌한 만남과 교류가 있어야 하는 순간들이 기계와의 소통으로 대체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스마트폰의 폐해는 이제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흔한 풍경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구체적인 삶의 현실을 미디어의 가상현실로 대신하고, 우리의 실제 체험을 화면 속의 정보로 대체하고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의 2019년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청소년의 30.2%가 스마트폰 중독 현상을 보이고 있다. 유·아동의 경우 22.9%, 성인의 18.8%가 중독위험군 이라고 하니 이들의 세상은 미디어가 만들어주는 세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실제 세상이 아닌 미디어가 조성해주는 사이-세상[인터넷, SNS 등과 같은 사이버 미디어의 가상현실]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사이-세상의 일들이 실제 세계에서 살인의 참극으로 이어진 사건이 몇 해 전 부산 해운대에서 벌어졌다. 유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이념 논쟁이 사생활 폭로로 번지고 급기야 명예훼손으로 고소되었다. 사과 대자보를 써 붙이고 이것을 사진으로 찍어 사이트에 올려 용서를 구해야 했던 남성은 급기야 상대방의 집을 찾아가 살인을 저지른다.


유명한 매체학자 마셜 맥루언은 미디어에 의한 인간의 자기-확장은 필연적으로 자기-마비 내지 자기-단절을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이를테면 도끼는 인간 팔의 연장이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 생리적으로, 의식적으로 ― 팔과 관련된 자기 마비 또는 자기 단절을 초래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디지털 시대의 첨단기기들은 인간의 뇌와 중추신경의 확장이기 때문에, 그것의 자기-마비 또는 자기-단절은 단순히 인간 신체 한 부분의 마비나 단절이 아니라 인간 전체의 마비나 단절과 연관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뉴미디어 시대의 인간 : 사이-존재


첨단기술문명이 열어주고 있는 뉴미디어 시대 우리는 인간 자신에 대해 다시 한 번 성찰하게 된다.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인간에 대한 규정도 달라져야 한다. 서양의 인간에 대한 규정인 ‘이성적 동물’과 ‘하느님의 모상’은 생물학적 전제와 신학적 전제 위에 내려진 정의다. 실체의 시대를 지나 주체의 시대를 거쳐 우리는 지금 서로 주체의 시대인 현대를 살고 있다. 이 서로 주체의 시대에서 강조되는 것이 바로 사이 아닌가! 그것은 곧 사이의 시대이다. 


이 사이에서 힘의 갈등과 충돌, 집합, 이종교배, 융합, 통합이 이루어지며 변화와 변환이 전개된다. 문화는 사이존재로서의 인간이 자연, 사물[사태, 사건], 인간[사회, 민족, 나라], 역사[세계, 우주], 신적인 것[신성]과 소통하는 행위와 거기서 지어지고 꾸며지는 산물이다. 서로 주체와 관계, 상호인정과 공감이 화두로 떠오르고, 사이와 관계의 그물망이 중요한 키워드로 부각되는 시점에 인간의 독특함도 새로 찾아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동아시아의 전통이 인간을 보았던 시각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인간을 빔-사이[공간(空間)], 사람-사이[인간(人間)], 때-사이[시간(時間)], 하늘과 땅-사이[천지간(天地間)]에서 사이를 이으며 사이로 존재하는 ‘사이-존재(inter-esse)’로 보았다. 사이-존재로서 사람은 감성, 지성, 이성, 영성의 능력을 고루 갖춘 통합적 인간이다. 국어사전에서 설명하고 있는 ‘사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사이’는 ① 때-사이, ② 장소의 가운데로서의 사이, 즉 빔-사이, ③ 물건이나 사람의 사이, ④ 틈, ⑤ 관계, ⑥ 아우름 등을 가리킨다. “너와 나 사이”와 같은 표현에서는 ‘개인으로서의 나와 너의 관계’라는 의미와 함께 ‘개인으로서의 너와 나의 다름과 차이’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 사이’라는 표현에서는 너와 나 모두를 아우르는 더 높은 차원의 포괄성을 가리킨다. 그리고 ‘사이’의 동사형인 ‘사이하다’가 “사이에 들어서서 서로를 맺어주다. 중매하다. 중개하다”의 의미가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사이-존재로서 사이하는 존재다. 


사이는 그 사이를 거리가 아닌 가까움으로 만들면서 존재함을 뜻한다. 사이는 개별자로서의 인간의 독특함[아름다움]을 인정하기에 서로의 사이를 존중한다. 아름[개개인]과 아름의 사이를, 즉 너와 나 사이를 포괄하는 지평적인 사이가 있다. 그것이 우리 사이다. 아름들은 사이로 연결된 그물망으로서의 전체 사이에 자기를 맞추어 나가야 한다. 그래야 다른 아름들을 울리고 떨리게 하여 전체 속에 어우러져서 어울림을 이루어나갈 수 있다. 


사이를 이어주는 도구[미디어]와 그것이 보여주는 현란한 사이-세상에 현혹되어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정보는 소통을 위한 것이고, 소통은 관계를 위한 것이다. 우리는 사이-존재로서 다른 사람의 관심 속에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 존재한다. 사이의 시대 가장 두려운 것은 무관심 속에 방치되는 것이다. 사이-존재로서 사람은 무엇보다도 사이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함께 사이를 나누며 서로 사이를 이으며 서로서로 통할 수 있도록 사이로서 존재해야 한다. 


사이-존재의 소통 방식 : 사이하기



우리말에서 ‘통(通)하다’는 다양한 의미의 갈래를 포괄하고 있다. 서로서로 오고감을, 그래서 서로 잘 앎을, 서로서로에서 서로의 소식을 알림을, 정을 통함을 의미한다. 그런가 하면 막힘이 없이 트여 있음을, 어느 쪽으로 이어져 있음을, 그래서 서로 말이나 뜻을 주고받음을 뜻한다. 더 나아가 글의 앞뒤가 막힘이 없음을, 특별하거나 비밀스런 방법으로 연락하거나 관계를 맺음을, 막히지 않고 잘 흐르거나 움직여 나감을 의미한다. 타동사로도 쓰여 중간에 다른 경로나 과정 따위를 거침을 뜻하기도 한다.


사이는 그 자체로 있음이 아닌 서로 다른 두 존재자의 만남과 교류를 중요한 본질적 차원으로 보는 시각이다. 사람은 사이 속에서 사이로서 사이좋게 사이를 만들며 존재한다. 이것을 ‘사이하다’라고 표현한다. 즉 “사이에 들어서서 서로를 맺어주고 중매하고 중개한다”. ‘사이하다’는 무엇보다도 ‘통하다’를 뜻한다. 개개 차원의 사이와 지평의 사이에 들어서서 그 사이가 통하게 함을 말한다. 그것은 ‘소통(疏通)하다’이다. 확 트이게 해서 서로서로 잘 통하게 함이다. ‘사이하다’는 ‘관여하다’, ‘참여하다’를 뜻한다. ‘사이하다’는 ‘관계를 맺다’, ‘서로를 이어주다’, ‘가깝게 만들어주다’를 뜻한다. ‘사이하다’는 ‘중매하다’, ‘중재하다’, ‘중개하다’를 뜻한다. 미디어의 시대에 걸맞는 미디어적 존재를 특징짓는 핵심적인 개념으로 ‘사이하다’를 택할 수 있다.


이 규정은 사물, 도구, 기계, 컴퓨터, 미디어, 작품, 사람, 민족, 나라, 문화, 세계 등과 같이 모여 결성된 구성체로서 존재[자] ― 실체든 주체든 ― 그 자체에서 눈을 돌려 그것들의 ‘사이’에 주목한다. 존재자는 그것이 그 자체로 홀로 있을 때에는 그 본래의 위력을 다 발휘하지 못한다. 다른 것들과 만나 그것들과 소통하고 교류하며 맞부딪칠 때, 그 힘이 몇 배가 되어 발산된다. 원자와 원자의 충돌과 융합, 그리고 거기에서 발산되는 엄청난 에너지를 생각해보라. 사이존재의 소통의 방식은 사이의 네 가지 차원에서 각기 다양하게 전개된다. 


빔-사이[공간과의 소통] 사람은 빔-사이에서 자신의 삶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동과 활동을 통해 자연환경을 자신의 주위세계로 만들어나간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연 또는 자연사물과 잘 소통(疏通)해야 한다. 다시 말해 우주자연의 모든 사물들과 막히지 아니하고 서로 통해, 그 안에 담긴 뜻까지도 읽어낼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자연에 도통(道通 = 사물의 오묘한 이치를 깨달아서 통함)하고 자연사물에 정통(精通 = 자세히 통하여 앎)한다면 우주자연 속에서 모든 존재자들과 통합(通合)을 이루며 잘 살아나갈 것이다.


사람-사이[인간과의 소통] 사람은 사람-사이에서 다른 사람들과 잘 소통하여 함께 더불어 살며 서로서로를 살리는 공생과 상생의 삶을 영위해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직적인 위계질서가 아니라 수평적인 평등 속에서 많은 사람들과 두루 통[보통(普通)]해야 한다. 질서 잡힌 평화로운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들이 서로 마음과 뜻이 통[상통(相通)]해야 하며, 그래서 그들 사이에 두루 통용(通用)되거나 관계되는 공통(共通)의 유대감이 형성되어야 한다. 사람 사이에 막힘이 없이 오고가는 일[교통(交通)]이 잘 이루어져야 하며, 위기에 닥쳤을 때는 그 상황에 맞추어 서로서로를 살리는 방향으로 융통(融通)성 있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 


때-사이[시간과의 소통] 사람은 때-사이에서 지난 시대의 시간과 공간을 넘어[관통(貫通)하여] 지금의 우리에게 전해져 오는 역사적 문헌이나 유물, 사건이나 사태를 읽어낼 수 있어야 때를 이으며 과거와 통하고 아울러 미래와 통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사람은 시대를 가로지르며 두루 통하는 보편적인 특성과 특질, 틀과 얼개, 구조와 모형을 찾아 이론을 구축하려고 노력한다.


하늘-땅 사이[얼과의 소통] 사람은 하늘땅-사이에서 우주자연에 두루 퍼져있는 한얼과 통해서 자신의 바탈을 깨닫고 우주자연에서 자신이 해야 할 바를 수행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주자연의 한얼[신(神)]과 통[신통(神通)]하고, 존재하는 모든 낱낱의 씨알 속에 깃들여 있는 얼과 통[영통(靈通)]해야 한다.


이렇게 사람은 사이-존재로서 그가 관계해서 이어야 하는 그 모든 사물들, 사태들, 관계들, 의미들, 정신들, 얼들, 지평들 등등, 그리고 한얼과 통한다. 그래서 그는 우주자연의 모든 존재자들이 함께 더불어 서로서로를 살리며 살아가는 우주적 살림살이를 꾸려나가야 할 책무를 떠맡고 있다. 그 책무를 다하기 위해 오늘도 우리는 사이하기에 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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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사이의 인문학. 관심·인정·사랑받기 위해 사이하기 >, 『경향잡지』 2014년 6월호에 실린 칼럼을 수정 보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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