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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곳에 깃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십자가’로 남기다 - 반티에이 쁘리업, ‘기억의 형태’ 전시회… “그곳에 공동체가 있었다” - 예수회 난민 봉사단이 세운 직업기술학교, 그 30년의 기록
  • 문미정
  • moon@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0-11-24 19:00:31
  • 수정 2020-11-24 19: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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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서울 마포구 신수동, 사람이 떠나간 어느 빈집을 방문했다. 2층과 3층 곳곳에는 다양한 모습을 한 십자가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장소는 사라졌지만 그곳에 켜켜이 쌓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기 위한 작업으로 분주했다. 


사라진 장소는 ‘반티에이 쁘리업(Banteay Prieb, 평화센터)’.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인근에 세워진 장애인 직업기술훈련 센터다. 1991년 예수회 난민 봉사단(JRS, Jesuit Refugee Service)은 전쟁과 지뢰 사고로 신체장애를 갖게 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반티에이 쁘리업’을 설립했다.


30년 동안 이어져오던 학교는 2019년 12월 졸업식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그동안 무상으로 땅을 빌려주던 캄보디아 정부가 2019년 초 학교부지에 공공시설을 설치하겠다며 이전을 권유한 것이다. 


류진희 작가는 철거되는 학교와 집을 보면서 뭐라도 남기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집을 이루고 있던 바닥, 벽, 침대에서 나온 나무, 못을 주워서 모아놨다가 지난 2월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함께 전시회를 준비하는 이경래 작가는 캄보디아에서 발견한 보석들을 지켜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처음 반티에이 쁘리업을 갔을 때 건강한 공동체라는 느낌을 받았다. 모여서 산다고 공동체가 되는 게 아니고, 서로 마음과 시간이 쌓여야만 공동체가 형성되는데, 학교는 긴 시간동안 그러한 것들이 쌓여왔다고 했다. 


▲ 류진희 작가(좌)와 이경래 작가(우) ⓒ 문미정


이경래 작가는 “코로나 시기에 연대가 중요하다. 진정한 연대를 찾을 수 있는 건 공동체”라며 지금처럼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공동체가 분열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코로나 시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화두는 '공동체'라고 짚었다.


두 작가를 만나기 위해 찾아가면서도, 어느 갤러리나 사람들이 있는 어느 장소에서의 전시회를 상상했다. 그런데 전시회가 열리는 곳은 다름 아닌 ‘빈집’이었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서, 사라진 곳의 이야기를 한다니 의미심장하다. 그들이 갤러리를 두고 ‘빈집’에서 전시회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반티에이 쁘리업이 사라졌으니까 우리도 사라진 장소에서 하자는 의견이 있었어요. 사라지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낡고 오래된 집은 헐리고 사라지잖아요.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고, 요즘처럼 사람을 만나기 힘든 시기에 바로 옆에 있는 내 이웃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코로나가 계속 발목을 잡아서 올해 전시회를 여는 건 포기하려던 때에, 이 집을 우연히 발견하게 됐다. 사람들이 오며 가며 들를 수 있는 장소도 아니지만 올해 하는 것이 의미 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다고 밝혔다.  


▲ `사라지는 것들의 기도` ⓒ 문미정


반티에이 쁘리업(평화센터), 자기 삶을 찾아가는 곳


물건들은 오랜 시간 쌓여왔던 기억들을 갖고 있다. 


이경래 작가는 30년 동안 학교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것들이 그대로 쌓여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방문했을 때도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어린 시절, 주변과 사회가 줬던 안정감과 따뜻함을 잊고 살다가 그곳에서 느꼈기 때문이다. 


류 작가는 우리에겐 캄보디아도 낯설지만 장애인도 낯선 존재라고 했다. “한국에서 장애인들을 많이 본 적도 없고, 장애인들을 보더라도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에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 반티에이 쁘리업. 오른쪽에는 학생들 집과 농구장, 족구장 등이 있고 가운데에는 교육시설, 왼쪽에는 작업장, 사무실 등이 있다. ⓒ 문미정


반티에이 쁘리업 구성원 대부분이 장애인들이다. 학교 주변에 마을이 형성되고 학교 출신들과 스탭들도 그곳에서 다 같이 살기도 했다. 류 작가가 “거기서는 오히려 우리가 이상한거죠”라고 말하자, 이 작가는 “하루만 지나면 그 사람들이 장애인이란 생각이 안 들어요. 그냥 똑같은 사람으로 보여요”라고 했다. 


그곳에서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어지는 경험을 했고, 오히려 그들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 사람들은 영어를 할 줄 모르고, 자신은 캄보디아말을 못하니 류 작가가 초창기에 갔을 때는 서로 말 없이 멀뚱멀뚱 있는 일도 생겼다. 


“저는 말 한마디도 못하는 외국인이고 그분들은 제가 불쌍했을 거예요. 뭘 사러 나가려고 해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그분들이 저를 끌고 다녔죠.” 류 작가는 “그분들의 입장을 조금 이해하기도 하고, 장애인이니까 도와줘야 한다는 고정관념이나 불편한 마음이 없어졌어요”고 말했다. 


반티에이 쁘리업은 기술을 가르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학생들의 목표는 고향에 돌아가서 집 앞에 조그만 가게를 차리는 것이다. 취직을 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창업을 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 삶을 찾아간다’고 했다.  


한 해에 120명 정도 입학하는데 10개 집으로 나뉘어 학생들끼리 소공동체로 살아간다. 학생들은 밥도 해먹고 청소도 한다. 직접 장도 보고, 생활 전반을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한다. 


학생들이 다른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1~4월까지는 집에 가고 싶다고 울기도 하고 서로 싸우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옷을 갈아입고 음식을 해먹고 인간으로서 해야 하는 것들을 할 수 있게 된다. 그 다음에 기술교육도 받으면서 자존감을 서서히 찾아가고 상대를 어떻게 배려하는지도 알게 된다.


▲ ⓒ 문미정


학생들에게 1년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뭐가 제일 좋았냐고 물어보면 ‘친구’라고 말한다. “낯선 곳에 와서 힘든 것도 있지만 자기방어도 많아요. 이러한 것들을 내려놓고 나면 서로 편안해지고 내가 남에게 주지 못했던 것을 주게 돼요. 서로 주고 받는 사이가 되면 친구가 되는 거예요. 또 하나의 가족이 되는 거죠. 그런 과정을 보는 것 자체가 행복인 것 같아요.” 


류 작가는 1월 시작할 때와 12월 끝날 때 학생들 얼굴이 달라진다면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기쁨이 굉장히 컸다고 말했다. “사람의 변화를 보는 게 학교에 오래 있던 이유였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더 넓은 의미에서의 십자가를 생각했다


처음에는 여행으로 갔다가 잠깐 머물렀는데, 사람들이 너무 행복해보였다고 했다. “밖에서 보면 가진 것도 없고 불쌍한 사람들이잖아요. ‘저 사람들은 왜 행복한거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에서는 행복하다고 느낀 적이 별로 없었다. 누군가를 이겨야 하고 남들보다 돋보여야 하고, 이런 남들과의 경쟁은 그에게 행복을 안겨주지 못했다. 


류 작가는 행복한 사람들 옆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반티에이 쁘리업에 들어가게 됐다. 몇몇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좋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류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그분들이 가난한 게 아니라 행복해보여서 갔어요”


반티에이 쁘리업은 가톨릭 수도회 중 하나인 예수회에서 꾸려가는 곳이다. 그렇다고 학생들에게 종교 교육이 이뤄지지는 않았다. 활동가들 중에서도 무교이거나 이웃종교인 사람도 있었다. 


류 작가는 말한다. “예수회 신부님들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게 선교’라고 하셨어요. 그 말에 공감이 많이 갔고, 종교 활동을 하진 않지만 학교 자체가 ‘종교적인 장소’라고 느껴졌어요. 가난한 사람과 함께 한다는 취지를 너무 잘 살린 곳이라서요.”


▲ 십자가와 학생들 집에 붙어있던 문패 ⓒ 문미정


학교 안에서 자신을 찾고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찾아나가는 걸 보면 어떤 힘이 작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어떤 믿음을 갖고 학교를 나가진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학생들이 받은 영향은 분명히 있고 자기 일상을 회복하고 자기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모습 자체가 어떤 증거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학생들의 삶을 보면서 하느님이 여기 계실 것 같다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어요.


류 작가는 집이 해체되는 걸 보면서, 집을 이루고 있던 못 하나도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돌아다니면서 못을 줍고 뜯겨진 나무판자를 주워서 모아뒀다. 학교에서 느꼈던 것들을 십자가로 남겨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나무판자들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십자가 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류 작가는 “우리가 만든 십자가는 굉장히 소박하고 단순하다. 30년 동안 먼지가 끼어있고 사람들의 때가 묻어있는 그 상태를 최대한 유지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두 작가는 더 넓은 의미에서 십자가를 보여주고 싶었고, 반티에이 쁘리업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 어땠는지를 작은 십자가에 담고 싶었다고 입을 모았다. “종교적인 십자가 보다는 인간이 짊어진 십자가라는 말도 하잖아요. 그런 십자가였으면 좋겠어요. 반티에이 쁘리업을 거쳐갔던 사람들이 남기고 간 궤적같은 거죠.”


류 작가는 “반티에이 쁘리업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어쩌면 우리가 회복하고 싶었던 것들, 찾고 싶었던 것들이 거기에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말한다.  


필리핀에서 온 한 사제는 학교 졸업식에서 이런 말을 전했다. ‘사람들의 시선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당신들이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예전처럼 살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할 것이다. 그건 당신이 변했기 때문이다. 환경은 바뀌지 않았지만 당신은 바뀌었다. 당신이 가면 그 사람들을 바꿀 수 있다.’ 


두 작가는 전시를 준비하면서 장애인에 초점을 두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장애인이라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누구는 다리가 없고 누구는 팔이 없을 뿐, 우리는 모두 다 부족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 휠체어 바퀴와 모기장 폴대로 만든 십자가 ⓒ 문미정


반티에이 쁘리업 학생들이 장애를 극복하고 대단히 훌륭한 사람이 되거나 삶이 획기적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것들조차 누리지 못하고 살았던 사람들이 작은 것에도 기뻐하고 행복해하면서 자기를 찾아가고, 아주 평범하게 사는 그러한 모습들이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고 전했다. 


사람들에게 이 십자가들이 ‘위로’의 시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올해 전시를 시작했다. 이 작가는 “30년 간 서로 의지하면서 긴 호흡으로 살았던 그곳에는 따뜻한 기운이 있다”면서 그 기운들, 기억들이 깃든 것들이 ‘십자가’의 형태로, 코로나 시대에 위로의 메시지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반티에이 쁘리업을 기억하는 전시회 < 기억의 형태 >는 서울 벨라르미노학사 옆집갤러리(서울 마포구 신수동 1-17)에서 29일까지 열린다. 매일 오전 11시에 열고 오후 6시에 문을 닫는다. 전시회에 방문하면 류진희·이경래 작가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작가들의 시선 안에 머문 잔해더미는 그동안 그곳을 거쳐간 많은 가난한 사람들, 캄보디아 장애인들, 주변부로 밀려난 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 그야말로 힘없는 사람들의 고통을 떠올리게 했고 그 고통의 더미  안에서 희망을 길어 올릴 수 있는 간절한 염원을 발견했을 것이다. 따라서, 작가들은 무너진 그들의 보금자리에서 십자가를 조각해 냈다. 그리고 그들이 각조해낸 낡고 하찮기 짝이 없어 보였기에 폐기물 자체였던 잔해가 고귀한 희망의 상징이 되어 우리들 앞에서 십자가의 의미를 다시금 숙고하도록 겸손하게 묻고 있다.


“당신의 무너진 자리에서 오늘, ‘십자가’라는 희망을 저희와 함께 조각해보지 않으시겠어요?” 


- 큐레이터 김상용 도미니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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