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1일 2021년 제54차 세계 평화의 날을 한 배를 탄 인류가 코로나19로 풍랑에 휘말린 상황에서 각자도생이 아니라 서로를 돌보는 ‘나침반’을 가지고 항해할 때 평화에 도달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내 놓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한 해를 정리하며 “코로나19라는 거대 보건위기가 발생하여 전세계적으로 여러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 되었고, 이로 인해 기후위기, 식량위기, 경제위기, 난민위기 등 서로 긴밀히 연결된 위기들이 악화되고 큰 불편과 고통을 야기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민족주의, 인종차별, 외국인혐오와 더불어 “죽음과 파괴를 퍼트리는 전쟁과 갈등이 다시 약동하고 있다”며 “형제애적 관계에 기반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돌보고, 피조물을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피조물과 형제를 돌보는 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창세기에서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를 아담에게 맡긴 일을 들어 “한편으로 땅을 생산적으로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땅을 보호하고 생명을 지탱하는 땅의 능력을 보존하는 것”이라며 “‘일구다’와 ‘돌보다’라는 동사는 아담과 아담의 집-동산의 관계를 묘사하고 하느님께서 아담을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자 이를 지키는 이로 삼음으로서 얼마나 그를 믿었는지를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아담과 이브, 나아가 자기 동생을 죽인 카인조차도 하느님의 보호를 받았다는 것이 “하느님을 닮아 창조된 인간의 불가침한 존엄을 확인해줌과 동시에 ‘평화와 폭력은 한집에 살 수 없다’는 점에서 피조물간의 조화를 유지하고자 하는 하느님의 계획을 드러내준다”고 설명했다.
피조물을 돌보는 것은 사회 질서와 가난한 이에 대한 관심을 다시 세우려고 했던 안식년 제정의 기반이 되었다면서 “성경에 따라 정의를 이해하는 것의 정점이 공동체가 자기 안에 있는 약자를 대하는 방식을 통해 드러난다는 예언적 전통도 주목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의 공생활 가운데 병자들을 치유하셨고, 결국에는 자신을 희생함으로서 “우리를 사랑의 길로 인도하시고 우리 모두에게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 37 참조)라고 말씀하신다”고 강조했다.
사유재산은 공동선 위해 만들어진 것
이어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 전통 안에서 돌봄을 실천한 교부들과 그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사회교리의 가치를 강조했다.
교황은 “영적으로 육신으로 자비를 실천하는 행위는 초대교회의 베풂의 핵심”이라며 초대 그리스도교인들은 “공동체를 환대하는 집, 모든 인간 상황에 열려있으며, 가장 약한 사람을 챙겨줄 준비가 된 집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몇몇 교부들은 하느님께서 공동선을 위해 재산(property)을 만드셨다는 사실을 강조했다”면서 교부 암브로시우스를 인용했다.
자연은 인간들이 함께 쓸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내놓았다. (…) 결과적으로 자연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공통법을 만들었으나, 탐욕으로 인해 소수의 권리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베풂의 정신에 기반하여 보편교회는 병원, 가난한 이를 위한 집, 고아원, 돌봄 센터, 피난처와 같이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여러 제도들이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교회의 기원에 있는 디아코니아(diakonia)는 교부들의 고찰을 통해 풍성해지고, 시대를 지나며 신앙을 빛내는 많은 증인들의 살아 움직이는 자애로 고무되었다”면서 이것이 “가톨릭교회 사회교리의 뛰는 심장이 되었고, 여기에서부터 인간 존엄 증진, 가난한 이와 가진 것 없는 이들과의 연대, 공동선을 위한 노력과 피조물 보호라는 돌봄의 문법을 끌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교황은 지구 전체를 돌보는 일에 대해서도 “사회·정치·경제 생활의 모든 측면은 공동선, 즉 ‘집단이나 개별 구성원 모두에게 더욱 온전하고 편안한 방식으로 뛰어남에 이를 수 있게 해주는 사회적 조건 전체’에 봉사할 때에 완성된다”고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계획과 노력은 언제나 현재와 미래 세대에 미칠 결과를 숙고하여 인류 전체에 미칠 효과를 고려해야 한다며 “코로나19 팬데믹은 이 말이 사실이며 얼마나 시의적절한가를 보여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공동의 나침반을 들고 공동을 위한 방향을 설정해야
교황은 인간, 피조물, 공동의 집인 지구를 돌보는 기준이 되어야 할 형제애가 우리의 ‘나침반’이 되어야 한다고 비유했다.
“국가 내부의 불평등과 국가간 불평등”에 관해 국제기구, 정부, 경제계, 학계, 언론과 교육기관을 향해 이러한 원칙들의 ‘나침반’을 손에 쥐고 세계화 과정 가운데 함께 가는 방향을, ‘진정으로 인간다운 방향’을 결정해줄 것을 촉구한다“고 제안했다.
모든 사람의 가치와 존엄이 인정받고, 빈곤, 질병, 노예제, 차별, 분쟁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위로함으로서 함께 공동선을 위한 연대 안에서 행동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이는 “오로지 가정과 모든 사회·정치·제도적 환경 안에서 여성이 적극적이고 전반적으로 참여함으로서만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교황은 전쟁과 분쟁으로 인해 여성, 아동과 더불어 무고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는 등 너무도 흔히 침해받고 있는 기본권과 국제인도법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며 “분쟁의 이유는 많지만 그 결과는 언제나 같다. 그것은 바로 파괴와 인도적 위기”라고 호소했다.
“우리는 멈춰서 자문해보아야 한다. 무엇으로 인해 전 세계에 분쟁이 일상화되었는가? 그리고 어떻게 우리 마음을 회심하고 사고방식을 바꾸어 진정으로 연대와 형제애 가운데 평화를 찾을 것인가?”
교황은, “군비, 특히 핵무기에 엄청난 자원이 낭비되고 있으나, 이 자원들은 평화와 온전한 인간 발전, 빈곤 퇴치, 보건 수요 보장 등과 같은 인간의 안전을 보장하는 더욱 중요한 우선과제들에 사용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와 관련해 2020 세계 식량의 날 비디오 메시지에서도 군수물자에 투자하는 비용으로 기아를 해결할 수 있는 ‘국제 기금’을 조성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돌봄 문화 없이는 평화도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돌봄 교육은 가정에서 탄생한다”며 “가정과 협력하는 중요한 교육의 주체로는 학교와 대학이 있으며, 여러 면에서 유사점을 갖는 언론”이 있다고 설명했다.
교황은 가정, 교육, 언론의 역할이 “모든 사람, 모든 언어·인종·종교 공동체, 모든 민족의 존엄과 거기서 비롯되는 기본권의 인정을 기반으로 하는 가치체계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며 “교육은 가장 정의롭고 가장 연대하는 사회의 기둥 가운데 하나”임을 상기했다.
전 세계 종교지도자들을 향해서도 “신자들과 사회에 연대, 차이 존중, 가장 약한 형제들의 환대와 돌봄이라는 가치를 전달함으로서 유일무이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호소했다.
교황은 마지막으로 “모든 사람의 존엄과 이익을 보호하고 증진하고자 하는 공동, 연대, 참여의 약속인 돌봄 문화는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는 능력, 연민 능력, 화해와 치유, 상호존중과 상호환대의 능력으로서 평화를 구축하는데 유리한 길이 된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면서 “인류가 탄 배가 위기의 풍랑에 흔들리며 더욱 평온하고 잔잔한 지평선을 향해 힘겹게 나아가고 있는 이 시기, 인간 존엄이라는 방향키와 기본적인 사회적 원칙이라는 ‘나침반’은 우리로 하여금 함께 가는 명확한 방향을 잡고 항해할 수 있게 해준다”고 말했다.
한편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기도 했던 1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계 평화의 날 미사 강론에서 '축복하다', '태어나다', '찾다'라는 표현을 통해 어떻게 평화를 이뤄야 하는가를 설명했다.
특히 교황은 '태어나다'라는 표현에서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에 생명을 주기 위해 해야 할 첫 단계는 바로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이라며 "모든 것은 다른 사람, 세상, 피조물을 돌보는데서 시작한다. 만물을 안다해도 이를 돌보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육신을 위한 백신과 더불어 마음의 백신도 필요하다. 그 백신이 바로 돌봄"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찾다'라는 표현에 대해 교황은 어떻게 목동들이 마리아, 요셉, 아기예수를 찾았는지에 빗대어 "우리가 그분을 찾았지만, 그분을 놓쳐서는 안 된다"라며 "주님께서는 한 번 찾는다고 영원히 찾아지는 게 아니라 매일 찾아져야 하는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은 이 목동들이 언제나 무언가를 찾아 나서고, 움직이고 있는 존재로 묘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점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올해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내어준다면 아름다울 것"이라며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홀로 있는 사람과 고통받는 사람을 위해, 이야기를 들어주며 돌봐주어야 할 사람에게 시간을 내어줄 수 있는 은총을 청해야 한다. 우리가 내어줄 시간을 찾는다면, 우리는 목동처럼 놀라워하며 기뻐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