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하느님의 자비 주일⑴ 강론에서 그리스도교 정신을 강조했다. 오늘날 사회에서는 ‘토지공개념’이나 ‘재화공유’와 같은 정책을 ‘공산주의’라고 비난하며 이념적으로 곡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는 이를 경계하고 “자비의 손길을 받은 우리도 자비로운 태도를 갖자”고 강조했다.
교황은 예수가 부활 후에 제자들에게 몇 번이고 나타나 “제자들의 부활”을 일으켰다고 설명했다.
교황은 “전까지는 주님의 수많은 말들과 예시들이 제자들을 변화시키지 못했으나 이제 부활이 되어 무언가 새로운 일이 일어난 것”이라며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그분의 자비로 다시 일으키셨고, 자비를 누리게 된 제자들은 자비로운 태도를 갖게 되었다. 자신이 자비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자비롭기란 매우 어렵다”고 설명했다.
교황은 제자들이 ‘평화’, ‘성령’, ‘주님의 상처’를 통해 이러한 자비를 누리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나타나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 20, 21)라고 했을 때 “예수께서는 외부의 문제를 없애는 평화가 아니라 그들 안에 믿음을 번지게 하는 평화를 가져다주신 것”이라며 “이는 외적 평화가 아니라 마음의 평화이며 (이로써) 절망했던 제자들은 자기 자신과 화해하게 된 것”라고 설명했다.
평화는 평온함도, 평안함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것이며 이처럼 예수의 평화는 우리 마음을 묶어놓는 사슬을 끊어버린다.
교황은 이 같이 말하며 “제자들은 이러한 자비를 누리고 있다는 것을, 즉 하느님께서 그들을 비난하거나 창피를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믿고 계신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라며 비록 제자들이 스승을 저버렸으나 성령을 통해 이를 용서하셨다고 덧붙였다.
교황은 “우리가 고해하는 것은 좌절하기 위함이 아니라 일으켜주심을 받기 위해서”라며 “우리는 넘어질 때마다 아버지가 일으켜줘야 하는 어린 아이처럼 고해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 역시 자주 넘어진다. 그리고 하느님 아버지는 그분의 손으로 우리를 다시 일으켜 걷게 만들 준비가 되어 계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처들은, 자비가 우리의 비참함으로 밀려들어오는 그분과 우리 사이의 통로
마지막으로 ‘주님의 상처’에 관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토마스처럼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그분께서 우리 상처를 자신의 것으로 삼으시고 자기 몸 안에 우리의 연약함을 품어주셨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며 “이 상처들은 그분의 자비가 우리의 비참함으로 밀려들어오는 그분과 우리 사이의 통로”라고 비유했다.
교황은 이처럼 “그분의 상처를 받아들임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연약함이 그분의 온유 안에서 환대받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며 이는 예수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복되며 부활하신 몸을 주시는 매 미사 때마다 벌어지는 일이다. 그분께서는 우리 가운데 하늘을 내려보내신 것”이라고 표현했다.
제자들은 이처럼 자비를 누리는 사람으로서 행동했다며 “사도행전에서는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4, 32)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순수한 그리스도교 정신이다”라고 강조했다.
교황은 이와 같은 구절이 “똑같은 제자들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상과 권세를 가지고, 그들 가운데 누가 가장 위대한가를 두고 논쟁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이는 더더욱 놀라운 일”이라며 “이제 그들은 모든 것을 나누고 ‘한마음 한뜻’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무엇을 했길래 그들이 이토록 바뀌었을까?”라고 질문하며 “이들은 서로에게서 그들의 삶을 변화시킨 자비를 보았고, 공동의 사명을 갖고 있음을, 모두가 예수의 용서와 몸을 받아 모셨음을 알게 되었으니 지상의 재화를 공유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처럼 보였던 것이다”고 설명했다.
오늘은 스스로에게 ‘그토록 많이 하느님의 평화를 받았던 내가, 그분의 용서와 자비를 받았던 내가 다른 사람에게 자비로운가?’라고 질문하는 날
교황은 바로 다음 구절에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v. 34)라는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이는 “제자들의 두려움이 주님의 상처를 만짐으로서 완전히 가시게 되었고, 이제는 궁핍한 이들의 상처를 치료하는 일이 두렵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제자들은 사람들에게서 예수를 보았다. 왜냐하면 바로 그곳에, 궁핍한 이들의 상처 안에 예수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교황은 신자들에게 “오늘은 스스로에게 ‘그토록 많이 하느님의 평화를 받았던 내가, 그분의 용서와 자비를 받았던 내가 다른 사람에게 자비로운가?’라고 질문하는 날”이라며 받기만 하고 주지 않는 ‘반쪽짜리 신앙’을 살지 않도록 하자. 자비의 손길을 받았으니 우리도 자비로워지자”고 강조했다.
⑴ 요한 바오로 2세는 2000년 4월 30일 파우스티나 성녀의 시성식 후에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설정하여, 파우스티나 성녀의 자비 정신을 공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