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7주일(2022.7.24.) : 창세 18,20-32; 콜로 2,12-14; 루카 11,1-13
이 땅에 천주교가 들어온 지 200주년이 되던 1984년을 기해 열린 전국 사목회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의 가르침과 기운을 한국교회에 실현하려던 예언자적인 움직임이었습니다. 최근에 주교회의에서 전국 사목회의 의안집을 발간한 것은 다시 한 번 그 의안에 담긴 하느님 백성의 목소리를 듣고 시노달리타스를 주제로 열리고 있는 최근의 시노드 움직임에 공식적인 역사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폭넓은 보편성을 확보하여 한국교회가 새롭게 도약하려는 취지로 보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문헌이 대내적 주제와 대외적 주제로 이루어져있고, 그중에서도 대외적 주제를 다룬 사목헌장에서 현대 사회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입장이 복음적이고도 전향적으로 천명됨으로써 “현대판 성령강림사건”이라는 찬사를 받은 것처럼, 사목회의의 12개 의안에서도 사회 의안이 큰 주목을 받았었습니다.
사회 의안은 사회 정의, 언론, 사회 개발, 사회 복지 그리고 교육 등의 5개 소주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거의 40년이 다 되어가는 오늘날에도 이 소주제들을 통해 모아진 하느님 백성의 목소리는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사회 의안에서 다룬 의제들이 완결되지 않은 현재진행형인데다가 우리 민족과 한국교회를 위한 성령의 이끄심이 담겨 있는 예언자의 목소리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사회 의안의 메시지를 오늘 미사의 말씀에 비추어 살펴보자면 이렇습니다. 제1독서인 창세기 18장과 19장은 아브라함과 롯에게 하느님의 천사가 나타난 이야기입니다. 그에 앞서 17장에서 하느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아브라함’이라는 새 이름을 주시면서 땅과 후손을 약속하셨고, 이 약속의 증표로 그와 그 후손들은 하느님의 법을 지키겠다는 뜻으로 할례를 받게 하셨습니다.
이로써 아브라함과 롯은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러자면 너무나 무거운 죄를 저지르고 있었던 소돔과 고모라라는 옛 세상을 자비로이 회개시키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이 도시들을 회개시킬 만한 거룩한 의인을 찾아보셨지만 찾지 못해서 결국 유황불로 멸망시키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함께 하셨던 바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반만년에 이르는 한민족의 역사 속에서 함께하시고 계심”을 사목회의는 상기시켰습니다. “우리 민족은 2백 년 전 일단의 선구자들이 (오랜 역사 동안 함께 하신)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받아들여 스스로의 결단으로 모진 박해를 이겨 내며 의연히 신앙과 사랑, 하느님의 정의를 수호, 실천하여“ 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소돔과 고모라의 회개를 위해 의인이 필요했듯이 하느님의 거룩함과 자비를 증거할 의인이 되어야 할 교회는, “가난하고 버림받고 소외된 민중 속에 자신을 묻고, 그들과 함께 복음의 빛을 찾는 ‘민중 속의 교회’여야 한다”(사회 정의 의안, 1항)고 선언하였습니다.
오는 7월 27일(수)이 6.25 전쟁 휴전협정 조인일입니다만, 1953년에 조인된 지 70년이 다 되도록 휴전 상태는 지속되고 있습니다. 전투는 끝났는데 전쟁은 끝내지 못한 이 비정상적 상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사태를 지켜보면서 우리는 민족의 지상과제인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이 휴전 문제를 하루빨리 우리 민족의 힘으로 정상화시켜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 의안에서는 “하느님께서는 지금도 갈라진 국토와 민족을 하나 되게 하기 위해서 역사(役事)하심”을 믿고 “교회는 평화적 통일을 기도하며, 또한 인간의 존엄이 지켜지고 확인되는 방향으로, 즉 민주주의적 통일을 희망합니다.” 하고 선언하는 한편, “교회는 민족의 통일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사랑을 토대로 능동적인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희망의 원천이 되어야 함”을 다짐하면서, “하느님께서 우리 민족을 하나 되도록 하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주시는 날, 북한 교회가 침묵의 장막을 걷고, 빛나는 십자가를 민중 앞에 우뚝 세우기를 기대”(25항)한다고 천명함으로써 민족 복음화에 대한 의지를 새삼 확인하였습니다.
제2독서에 등장하는 콜로새 공동체는 소아시아에서 작은 도시에 세워져 있었지만, 에페소를 비롯한 일곱 공동체에서보다 더 심하게 새로운 이단 사상에 의한 위협을 받고 있었던 듯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의 제자들은 스승의 이름과 권위를 빌려서 그 공동체의 교우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켜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하느님을 오랜 옛날부터 믿어온 유다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이 성부 하느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같은 반열로 믿고 섬기는 데에 주저함을 보였다면, 다신교 풍습의 영향으로 인간과 같은 반열의 신들만 흔히 보아 오던 그리스 출신 그리스도인들은 유일신이신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일도 어려웠지만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나자렛 예수가 부활하여 신이 되었음을 믿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믿기 편하도록 신앙을 왜곡하는 이단 사상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콜로새 편지의 저자는 그리스 출신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폄훼하려던 ‘헛된 철학’에 빠지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세례의 은총은 살아있으며,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신비를 확실하게 믿으라고 권고하였습니다.
콜로새 공동체가 당면했던 어려움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한 사회에서 자유와 평등, 정의와 평화 같은 최고선의 진리와 인간 존엄성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선의 진리를 믿지 못하게끔 가리는 것은 거짓된 여론과 정보입니다. 콜로새 교우들이 ‘헛된 철학’에 가리워졌었다면, 오늘날 우리 사회는 거짓 여론과 정보 때문에 최고선과 공동선의 진리가 가리워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 의안에서는 이렇게 보았습니다. “언론은 정치적으로 여론 형성의 도구와 공동선의 추진 도구로서, 경제적으로 경제 정보의 교환 도구로서, 사회적으로 변화 및 진보 수단으로서, 문화적으로 문화 파급 및 자녀 교육을 위한 도구로서 활용됩니다”(언론 의안, 1항).
“교회는 언론 매체를 통하여 하느님의 계획대로 사람들을 일치시키고, 복음의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하느님의 부성 밑에서 인간들의 형제 관계를 형성하며, 동서고금의 사건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이에 대한 인식을 넓혀 인간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교회에 세상을 세상에 교회를 알려 교회와 민중을 일치시킬 것을 희망합니다”(2항).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요긴한 것은 언론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이 알릴 자유를 행사함에 있어서 ‘올바른 양심을 형성하는 것’입니다”(3항).
따라서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야말로 언론의 시원(始原)”이라고 보는 교회는 올바른 언론의 본보기가 되기 위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최고선과 공동선의 진리를 일깨우는 하느님의 언론이 되어야 합니다.
루카 복음서는 유다 전통으로부터는 자유롭지만 헬레니즘 문화에는 익숙한 그리스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올바른 그리스도 신앙을 선포하려는 선교적이고 토착화적인 취지에서 기록되었습니다. 루카의 복음서의 수신자들이 속한 공동체의 가장 큰 위기는 그들이 기대했던 예수의 재림이 지연되고 있다는 데에서 오는 불신이었습니다. 유다인들처럼 오랫동안 메시아를 기다려온 전통이 없었던 그들로서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가 자신들의 생애 안에 가시적으로 일어나리라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루카는 예수 재림이란 곧 성령의 이끄심이니 성령을 청하라는 메시지로 답변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하느님의 나라를 청해야 하며,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는 가운데 서로가 서로를 용서하여 받아들이는 공동체를 통하여 새로운 세상이 이룩될 것이며 이것이 곧 예수 재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의 재림, 즉 종말은 새로운 창조를 뜻합니다. 선을 실천하는 즉시 사라지는 악의 종식이야말로 새 하늘과 새 땅의 실현이기 때문입니다. 콜로새 편지가 쓰여질 당시의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에게 재림과 종말에 대한 조급함이 있었다면,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재림과 종말 의식이 희박한 나머지 정당한 긴장감조차 아예 사라진 듯합니다.
그리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종말의식이 느슨해진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현존 양식을 세 가지로 일깨워주었습니다(Lercaro). 즉, 말씀과 성찬 그리고 가난한 이들을 섬김으로 이루는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현존 양식에 대한 성찰이 공의회 문헌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들 안에서 재림과 종말에 대한 긴장이 좀처럼 생겨나지 않고 오히려 신앙의 열기가 식어가는 현상을 염려하면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새 복음화’라는 기치를 들었습니다(제3차 라틴 아메리카 주교 총회, 1983). ‘새로운 열의, 새로운 방식, 새로운 표현’으로 이루어져야 할 새 복음화의 과업에 대해서, 프란치스코 현 교황도 두 가지 새로운 현존 양식을 첨가함으로써 이 ‘새 복음화’ 과업을 계승하고자 하였습니다.
국제신학위원회를 통해 공의회 문헌의 메시지를 수년 간 연구시킨 다음에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발표했으니, 그것이 2016년에 발표된 「교회 생활에서의 신앙 감각」과 2018년에 발표된 「교회의 삶과 사명에서의 공동합의성」 문서입니다. 트리엔트 공의회식으로 교회 안에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사이의 신분 질서를 따지지 말고 신자들 안에서 서로의 신앙 감각을 평등하게 존중하며 사도직 활동에 대해 논의해야 하고, 이에 필요한 결정을 하는 데 있어서는 모든 관계자들이 동의할 수 있도록 노력함으로써 공동합의성 즉 시노달리타스를 이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증거되는 그리스도의 현존이야말로 성령의 이끄심으로 이룩될 예수의 재림과 종말이요 새 하늘과 새 땅을 앞당기는 일입니다. 이렇듯 그리스도의 현존 양식에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통해서 하느님 아버지의 나라는 오고야 말 것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