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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와 ‘예언자적 교회’ 강조한 ‘정치적’ 순방
  • 끌로셰
  • 등록 2023-02-16 14:26:14
  • 수정 2023-02-21 17: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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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월 31일부터 2월 5일까지 콩고민주공화국과 남수단을 방문했다. 두 국가 모두 아프리카 대륙 국가 중에서도 내전이 가장 심각한 나라들이다.


교황은 먼저, 31일부터 3일까지 콩고민주공화국을 방문했다. 콩고에서는 매장 천연자원을 가지고 120여 개의 무장 단체가 난립해 잔혹 행위가 끊이지 않는다.


교황 순방 전인 지난 1월 15일과 29일에도 분쟁이 가장 심각한 지역 중 하나인 북키부 주(North-Kivu)에서 무장 단체의 공습으로 각각 마을 주민 수십 명이 사망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교회를 대표하는 인물이지만, 그의 이번 방문은 오랜 분쟁과 기근으로 관심에서 벗어난 채 여전히 고통받는 ‘존재의 변방’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 여러 순방과 마찬가지로 각 지역의 구체적인 평화를 추구하려는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


콩고는 인접 국가인 르완다와의 군사 갈등으로, 남수단은 무장 단체의 난립과 그들 간의 내전과 권력 투쟁으로 중앙정부가 치안은 물론 공공 서비스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해 종교계 또는 비영리단체 등이 교육, 보건 등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선의 빛을 가리는 것은 불의와 부패의 어둠”


프란치스코 교황은 31일 콩고 대통령 펠릭스 치세케디(Félix Tshisekedi)를 비롯한 콩고민주공화국 정부 당국 및 시민사회를 만난 자리에서 북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정의가 지켜지지 않으면, 국가가 도적 떼가 아니고 무엇인가?”(성 아우구스티누스, 「신국론」, IV, 4)라는 말을 빌려 “선의 빛을 가리는 것은 불의와 부패의 어둠”이라고 비판했다.


교황은 “아프리카 대륙이 여전히 다양한 착취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은 비극”이라며 “정치적 식민주의에 이어 이제는 사람들을 노예로 만드는 ‘경제적 식민주의’가 창궐했다. 그래서 이 나라는 자신의 거대한 자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자기 땅에서 맺은 결실이 주민과 ‘무관한’ 것이 되어버린 역설에 처한 것이다. 욕망이라는 독은 이렇게 이 나라의 ‘다이아몬드’를 피로 물들였다. 경제적으로 더 앞선 세계는 이 비극 앞에서 눈, 귀, 입을 틀어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교황은 “이 민족을 바라보면, 국제공동체가 이 나라를 집어삼킨 폭력에 거의 체념한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는 몇 세기 전부터 수백만 명이 사망하며 흘린 피에 익숙해져서는 안 된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아야 하고, 진행 중인 평화 협정을 온 힘으로 지지하며, 이 협정에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지고 약속이 이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콩고민주공화국 수도 킨사샤에서 1일 집전한 미사에는 약 백만 명의 사람들이 참석했으며 교황은 이날 미사에서 “우리는 평화의 전교자가 되어야 하며, 이것이 우리에게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평화의 전교자가 된다는 것은, 타인 역시 같은 인간 공동체의 구성원인 형제자매들임을 믿고 (…)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인이라면 본디 ‘세계 평화의 양심’이 되어야 한다. 이는 비판적 양심뿐만 아니라 사랑을 증거하는 이가 되어야 함을 뜻한다.”


이날 교황은 미사 집전 이후 주콩고 교황대사관을 찾아 콩고 내전 피해자들을 만났고 그들의 ‘잔혹한’ 증언을 직접 들었다. 증언들에는 온갖 성폭행, 살인은 물론 인륜에 어긋나는 일로 가득했다. 교황은 전쟁 피해자들에게 “내가 여러분 곁에 있다. 여러분의 눈물은 나의 눈물이며, 여러분의 고통이 내 고통”이라며 위로를 전했다.


다음날인 3일 교황은 콩고민주공화국 주교들을 만났다. 콩고에서 가톨릭교회 주교는 400만 명의 가톨릭 신자는 물론 일반 국민에게도 ‘지도자’로 인정받는다. 실제로 콩고민주공화국 주교단은 2016년 전임 대통령의 헌법 개정을 통한 독재 시도를 저지하고 퇴임한다는 내용의 합의를 이끌어 내는 등 정치 권력의 폭주를 막는 역할을 해왔다.


교황은 이들의 역할을 지지하고 권장하면서도 ‘목자’로서의 역할을 잊지 말 것을 강한 어조로 당부했다.


“우리가 자기 자신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벌어져서도, 더욱이 주교직을 수행하면서 어떤 사회적 지위를 획득해 권력을 행사할 가능성을 추구하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이 끔찍한 ‘출세주의’, 세속성이야말로 교회에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임을 잊지 말라.”


교황은 “복음의 선포, 사목 생활 주도, 민중의 인도는 일상이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원칙으로 치부될 것이 아니라 상처를 어루만지고 하느님이 곁에 계신다는 것을 전달해야 하며, 이를 통해 사람들이 하느님 자녀로서 자신의 존엄을 깨닫고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굴욕과 탄압에 고개 숙이지 않고서 걷는 법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하느님 곁에 머물고자 밭을 일구다 보면, 우리는 민중들에게 다가가 항상 우리에게 맡겨진 이들에게 동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동정이라는 이 태도는, 어떤 감정이 아닌 ‘함께 고통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황은 “주교들이 계속해서 예언자적 목소리를 드러내야 한다”며 “증오와 이기주의, 앙심과 폭력이라는 해로운 식물을 ‘뽑아버리고’, 돈과 부패의 제단을 ‘허무는’, 정의·진리·평화에 기반한 공존을 ‘세우며’, 마지막으로 내일의 콩고가 진정 주님께서 꿈꾸시는 모습이 되도록 재탄생의 씨앗을 ‘심어야’ 한다. 그 모습은 바로 축복받은 행복한 땅, 더 이상 폭력도, 억압도, 피로 물들지 않은 땅”이라고 강조했다.


교황은 이것이 반드시 “정치 행위를 뜻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교황은 “그리스도교적 예언은 여러 정치적·사회적 행위로 실현되지만, 이런 것이 일반적으로 주교와 목자의 과업은 아니다. 주교의 과업이란 의식을 일깨우고, 악을 고발하며, 고통받고, 희망을 잃은 이들을 위로하는 하느님 말씀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교황은 “자비를 베풀라”고 강조했다.


“항상 용서하라. 신자가 고해하러 오면 신자는 용서와 주님의 손길을 청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는 고발의 손가락을 치켜들고는 ‘몇 번이나 그랬냐’, ‘어떻게 그랬냐’고 묻는다. 그래서는 안 된다. 용서하라, 항상. (…) 교회법은 중요한 것이니 우리가 지켜야 하지만 목자의 마음은 이를 넘어서는 법이다. 그럴 위험을 감수하라. 용서하려면 위험도 감수해야 하는 법이다. 항상 그리하라. 화해의 성사 가운데 언제나 용서하라. 그리하면 여러분은 사회 전체에 용서의 씨앗을 뿌리게 될 것이다.”


이렇게 목자의 모습과 교회의 참모습을 강조하면서도 막상 그 안에서는 ‘부패’, ‘식민주의’, ‘정치’, ‘평화 협정’을 이야기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콩고민주공화국 순방은 매우 ‘정치적’인 순방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를 보여주듯, 한 콩고민주공화국 언론은 지난 2일 ‘신랄한 프란치스코’(François mordant)라는 제호의 보도를 내기도 했다.




[필진정보]
언어문제로 관심을 받지 못 하는 글이나 그러한 글들이 전달하려는 문제의식을 발굴하고자 한다. “다른 언어는 다른 사고의 틀을 내포합니다. 그리고 사회 현상이나 문제는 주조에 쓰이는 재료들과 같습니다. 따라서 어떤 문제의식은 같은 분야,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쓴다고 해도 그 논점과 관점이 천차만별일 수 있습니다. 해외 기사, 사설들을 통해 정보 전달 뿐만 아니라 정보 속에 담긴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사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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