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전쟁(1095-1291)의 불길 가운데서 프란치스코 성인(1182-1226)은 1219년 당시 이슬람교의 술탄(살라딘의 조카 알카밀)을 만나 평화를 도모하지만 전쟁의 포화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악마의 세력(?)인 이슬람을 몰아내는 것이라는 교황들의 강론으로 십자군 전쟁은 정당화되었고,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신국론’에서 했던 말이 인용되었습니다. “불의한 자들이 의로운 자들을 지배하는 것보다 더 고약한 일은 없다.”(신국론 IV, 15) 그래서 타자의 불의를 막아내기 위한 ‘성전’이 필요하다고 교황들은 역설했습니다.
전쟁의 불길은 더욱 거세게 타올랐고, 8차에 걸친 ‘십자군 원정’으로 인한 끊이지 않는 유럽의 전쟁은, 이후 페스트 확산의 주요 원인으로 거론됐습니다. 전쟁으로 죽은 군인들의 시신을 수습하기도 어려웠고 폐허가 된 마을에는 죽은 병사들의 시신을 검은 쥐들과 까마귀들이 파먹기 시작하면서 페스트균은 땅과 하늘을 가로지르며 돌아다녔습니다. 십자군의 예루살렘 성지 회복을 위한 동방원정은 전쟁으로 죽어가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염병의 확산이 더해져 수많은 목숨을 앗아가고 있었지만, 전쟁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이러한 전쟁의 한복판, 죽음과 절망, 슬픔과 분노의 한복판에서 노래했습니다.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가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며/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원을 얻기 때문입니다.”
평화의 기도 중에 분심(分心)이 몰려올 때
그런데 요즈음 대통령과 행안부장관, 경찰청장의 얼굴이 이러한 기도 중에 아른거립니다. 분심(分心)입니다. 그들은 사랑이 있는 곳에 미움을, 용서와 화해가 있는 곳에 다툼을, 일치가 있는 곳에 분열을 만들었습니다. 믿음이 있는 곳에 의심을, 진리가 있는 곳에 혼란을, 희망이 있는 곳에 절망을, 빛이 있는 곳에 어둠을 가져왔습니다.
청와대를 용산으로 이전하며 일상의 평화로운 기쁨이 있었던 가정에 참사의 슬픔을 가져왔고, 참사 이후에도 유가족들을 위로하지는 못할망정 유가족들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는 분향소를 혐오하는 2차 가해자들에게 집회를 허용하고, 분향소에 모여든 착한 시민들의 공감과 위로의 마음을 부수었습니다.
화물연대와 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람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바로 날려버렸고, ‘바이든’을 ‘날리면’이라, ‘이란의 적’은 ‘이러한 적은’이라 말했다며 이해받기를 원했습니다. 대통령의 아내는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 학력과 경력을 위조하며 잘못된 사랑을 받았고, 주가조작을 통해 불의한 부를 축적했으며, 자신에게 바른말을 하는 언론인들과 언론사들을 압수 수색하고, 고소, 고발을 멈추질 않았습니다. 죽지 않고 늙지 않고 영원히 살 것처럼 돈을 들여 젊은 안색을 유지했고, 도사와 법사를 통해 영원한 권력과 부를 욕망하며 자신의 탐욕을 거침없이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곽상도의 아들은 퇴직금 명목으로 뇌물 50억을 받고도 무죄입니다. 정영학 변호사의 녹취록에 담겨 있던 ‘돈 달라던 곽상도 얘기’의 진실을 재판부는 참고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 양은 아버지가 민정수석에 오를 것이란 예상을 하지도 못한 시점에 받은 장학금 600만 원 때문에, ‘청탁금지법 위반(금품수수)’ 명목이 더해져 아버지 조국은 1심에서 2년의 징역형을 선고받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곽상도의 아들은 뇌물 50억으로도 무죄였지만, 조국의 딸은 장학금 600만 원으로 유죄가 되었습니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100일이 된 지난 2월 5일 오후 5시부터,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으로 달려온 전국의 사제들과 수도자들 그리고 평신도들이 ‘이태원 참사 100일 희생자와 생존자 유가족을 위한 위로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무고한 젊은이들이 길거리에서 무참히 희생당한 사건, 생명을 지켜야 할 책임 있는 자들의 방관 속에 벌어진 참사 100일이 되었지만, 현장 실무자들에게만 모든 책임을 지우고, 책임 있는 인사들은 문제를 회피하고 방관합니다. 결국, 행정안전부 이상민 장관은 국회에서 헌정사상 최초로 ‘장관 탄핵’이라는 수치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그날의 진실을 찾아 세상을 향해 울부짖고 있습니다.
참사 이후 가톨릭교회의 모든 성당에서 추모의 기도를 드렸고,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중심으로 희생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기억하고, 추모와 진실을 찾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100일 미사 중에 유가족 가운데 한 분이 나오셔서 202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언론인 마리아 레사의 말을 인용하며 “악마와 싸우기 위해서 악마가 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악행과 야비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욱 선해야 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전쟁을 통해 손상된 정의를 회복할 때도 적에게 수치나 분노의 감정을 주거나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을 뿌려서는 안 되며, 전쟁에서는 적대감을 최대한 억제하고 소중한 인간성을 존중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더 온유하게, 더 겸손하게, 더 차분하게
우리는 더욱 온유하게, 더욱 겸손하게, 더욱 차분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윤석열 정권은 고작 0.73% 차이로 반대편의 정적을 모두 제거하고 있습니다. 같은 당의 이준석, 유승민, 나경원에 이어 안철수까지, 야당 대표 이재명과 그 측근들을 비가 올 때까지 털어대며 아프리카식 기우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 말하기 전에 ‘누가 연기를 피웠는가’를 찾아내야 합니다. 정작 돈을 받은 50억 클럽의 법비(法匪)들은 수사도 기소도 하지 않고 시간은 마냥 흘러갑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두가 그들처럼 불의하게 부조리하게 살지 않았습니다. 세상에는 성실하고 의롭게 살려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악(惡)은 평범하지만, 그렇다고 모두를 ‘일반화’해서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악마(惡魔)는 영어로 ‘Devil 데블’, 고대 그리스어 ‘디아-볼로’(δια-βoλλω)에서 기원합니다. ‘디아(δια-)’는 영어의 ‘분리(separate)’이고, ‘볼로(-βoλλω)’는 ‘놓다(put)’의 개념입니다. 내용을 합해보면 ‘악’은 ‘따로 분리해 놓는 것’, ‘분열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지금의 정부는 ‘악’을 유도합니다. 참사 희생자들의 시신을 따로 멀리 보내 모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유가족들이 만나는 것도, 시민사회가 함께 모여드는 것도 따로 분리해 놓으려 합니다. 영정과 위패를 모시는 분향소도 가족들에게서 떼어내려 합니다. 시민단체를 위장한 악의 무리들이 선한 이들의 분열을 조장하며, 모이는 자들을 갈라치고 모욕하고, 서로를 비난하고 분열을 조장합니다.
‘악은 디테일에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 찍으면 ‘남’이 되어 버리는 것이 악입니다. 점 하나가 악이 될 수 있습니다. 악(惡)은 늘 선(善)을 가장합니다. 작은 차이들을 식별하며 더 철저하게 다가오는 악을 대비해야 합니다. 사랑만이 악을 극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