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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화가 사제 ‘루프니크’ 성범죄, 사실로 밝혀져
  • 강재선
  • 등록 2023-02-23 10: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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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코 루프니크 신부 (사진출처=Romano Siciliani, KNA / Cristian Gennari)


최초 공개한 피해자 여성 9명에 더해 예수회 신고센터 통해 접수된 피해자가 15명

예수회, 2018년부터 범죄사실 인지했으나 ‘정직’ 처분만 내려

교황청 신앙교리부, ‘자동 파문’ 했다가 설명 없이 ‘제재 처분’으로 변경

예수회 측, 강경한 입장 밝혀… “심리적 학대와 영적 학대가 훨씬 더 심각해”


지난해 12월, 슬로베니아 출신의 모자이크 화가이자 예수회 사제 마르코 루프니크(Marko Ivan Rupnik) 신부가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보도 이후, 예수회 내사 결과 루프니크 신부의 성적 비위가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2월 이탈리아 언론은 루프니크 신부가 여성과 수녀들에게 심리적 지배력을 행사하고 성관계를 맺은 뒤 이들에게 고해성사를 집전하는 방식의 성범죄가 일어났다고 폭로했다.


이에 예수회는 지난 21일, 예수회시설사업대표단(DIR)에 설치한 학대 신고센터와 내사를 통해 마르코 루프니크 신부를 상대로 한 여러 증언과 고발이 접수되어 이에 관한 사실관계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예수회는 입장문에서 “루프니크 신부와의 관계에서 영적 학대, 심리적 학대 또는 성적 학대를 당했다”는 증언이 주를 이루었다며 “신고된 내용이나 목격된 내용의 신뢰도는 아주 높은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루프니크 신부는 1980년부터 2018년까지 30년이 넘는 시간에 걸쳐 여러 사람에게 성폭행을 저질렀다. 이번 조사 결과와 관련해 < AP >와의 인터뷰에서 예수회는 신고센터를 통해 접수된 피해자가 15명(여성 14명, 남성 1명)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최초 슬로베니아 예수회 공동체에서 피해 사실을 공개한 피해자 여성 9명을 더하면 지금까지 루프니크 신부가 가해를 저지른 피해자는 24명으로 늘어났다.


예수회는 규정에 따라 ▲직무 정지 ▲예수회 회원 자격 박탈 ▲범죄 혐의 유형에 따라 사제직 면직이 가능하다고 설명한 뒤에 이를 결정하기 위한 예수회 차원의 세 번째 내부조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루프니크 신부는 앞선 두 차례 조사에서 어떠한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추후 조사에 앞서 예수회는 이미 적용 중인 직무 정지, 성무 정지, 공개 발언 금지, 주거지 제한 등에 더해 루프니크 신부에게 교회 내 모든 예술 행위를 금지하는 처분을 내렸다.


예수회는 입장문에서 공소시효 등으로 인해 “접수된 고발의 성격으로 인해 루프니크 신부의 행동은 이탈리아 형법의 적용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하지만 교회법적 관점 또는 해당 신부의 생활과 종교 및 성직에 관한 책임의 관점에서 루프니크 신부의 행동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형사법적 책임 외에 교회 안에서 가능한 모든 절차를 밟을 것임을 암시했다.


지난해 말 이탈리아 언론을 중심으로 루프니크 신부가 수녀들을 상대로 이들에게 심리적 영향력을 행사하여 성관계를 갖도록 유도하고 이를 고해하게 하는 등의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고발이 공개됐다. 그러자 예수회는 2018년부터 루프니크 신부가 그러한 혐의로 내부에서 조사를 받고 정직 처분을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예수회는 2018년 10월 처음 고발을 접수했다. 2019년 6월 루프니크 신부에게는 근신 처분에 해당하는 ‘예방적 제재’가 내려졌다. 이듬해인 2020년 1월 예수회 외부인들로 구성된 조사위원회 조사 결과, 루프니크 신부가 여성을 심리적으로 조종해 성관계를 맺은 뒤 해당 여성에게 고해성사를 집전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이를 인지한 2020년 5월 신앙교리부는 루프니크 신부에게 ‘자동 처벌의 파문’(latae sententiae)이 내려졌다고 선고했다가, 그로부터 불과 한 달 뒤에 모종의 이유로 이를 철회하고 대신 루프니크 신부에게 3년간의 행정적 제재 처분을 내렸다. 이로 인해 그는 자신이 세웠던 알레티 센터(Centro Aletti) 소장직에서도 물러나야만 했다.


직무, 성무 등은 금지되었으나 공개 활동을 이어갈 수 있게 된 루프니크 신부는 2021년 제10차 세계가정대회 공식 이미지를 그리는 등 교황청이나 전 세계 가톨릭교회에서 예술성을 인정받는 사제로 남아있게 됐다.


이후 2021년 6월 이번에는 반대로 신앙교리부에서 예수회에 루프니크 신부가 예수회 구성원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고발이 들어왔음을 알렸다.


이에 따라 2022년 2월 예수회는 루프니크 신부에게 혐의가 있다고 보고 직무 제한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같은 해 10월 신앙교리부는 루프니크 신부의 혐의가 모두 공소시효가 지나 교회법상 재판을 열 수 없다고 예수회에 전했다. 이 논란이 언론에 공개되기 시작한 12월 예수회는 루프니크 신부에게 별도의 직무 정지 처분을 내렸다.


결국, 2018년부터 예수회는 루프니크 신부의 혐의를 수차례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정직 처분만을 내렸다. 예수회가 왜 이토록 오랫동안 내부에서 공론화되었던 문제를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는지, 그리고 공소시효 만료를 이유로 교회법 재판 외에 성범죄를 저지른 사제를 방관했는지 의문이 남아있다.


뿐만 아니라 교황청 신앙교리부 역시 어떤 이유로 자동 파문의 처분을 철회하고 제재 처분으로 변경한 것인지 밝히지 않았다.


이에 관해 조사결과를 보고 받은 예수회시설사업대표단 대표 요한 베를슈에렌(Johan Verschueren) 신부는 < AP > 인터뷰에서 루프니크 신부에게 교회법상 사제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강한 조치인 환속(사제직에서 면직)을 적용할 수는 있지만 “루프니크 신부를 예수회에서 쫓아내게 되면 해당 인물에 관한 모든 통제권을 잃게 되어, 계속해서 위협을 끼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이탈리아 언론 < La Reppublica >와의 인터뷰에서는 “언론에서는 성적 측면에 집중하고 있지만, 심리적 학대와 영적 학대가 훨씬 더 심각하다”고도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 AP >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루프니크 신부의 비위 사실을 전해 듣고 “나는 정말, 너무나 놀랐다. 그 정도 수준의 예술가가 그러다니 나는 정말 큰 충격과 상처를 받았다”며 신앙교리부가 루프니크 신부의 파문을 철회한 것과 관련해 “나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공소시효 관련해서도 미성년자 혹은 약자들이 피해자인 사건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항상” 적용하지 않지만, 기타 성인이 연관된 사건에서는 공소시효를 적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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