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하느님, 당신 백성을 당신의 지팡이로 보살펴 주소서
  • 이기우
  • 등록 2023-03-10 17:09:04

기사수정



사순 제2주간 토요일(2023.3.11.) : 미카 7,14-20; 루카 15,1-32


오늘 독서에서 미카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하느님께 간절한 소망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과수원 한가운데 놓인 양 떼처럼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부대끼고 있는 이스라엘을 보호해 달라고, 마치 숲속에 홀로 살아가는 듯 하느님을 섬기는 무리로서는 독보적인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기시어 그 옛날 이집트 손아귀에서 탈출시키실 때처럼 놀라운 일을 보여 달라고 탄원하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미카 예언자가 간절하게 탄원한 그 소망대로 하느님께서 당신의 지팡이로 당신 백성을 이끄시고 자비를 베푸실 미래에 대해 돌아온 아들의 비유로 계시하셨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미카가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달라고 청했던 이스라엘의 죄악을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 같은 이스라엘의 우두머리들은 버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기들 가운데 오신 메시아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배척할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세리와 죄인으로 취급받던 유다인들이 메시아를 알아보고 그분의 백성이 되겠다고 그분 주위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습니다. 


이 비유는 루카 복음사가가 소개하는 되찾은 비유 이야기들 가운데에서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흔히 ‘탕자의 비유’로도 불려온 이 이야기의 초점은  바로 아버지의 자비입니다. 초점은 돌아온 아들이 아니라 그를 기다리다가 맞이하는 아버지에 있습니다. 


복음을 선포하신 활동과 세상의 반응을 담은 이 비유에 드러나 있듯이,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실 때 만나신 사람들은 크게 보아 두 부류였습니다. 그분을 기다리다가 환영해 주고 맞이한 첫째 부류는 비유에 나오는 둘째 아들처럼 죄인으로 낙인찍혀서 고생하며 소외되었던 이들로서, 세리와 창녀들을 비롯하여 온갖 질병을 앓거나 마귀 들려서 고통 받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비주류(非主流)로 취급받던 사람들에게 갈릴래아에서는 당신께서 직접 선포하기도 하셨고 제자들을 시켜서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복음을 선포하게도 하셨는데, 이들이 하느님께 돌아오자, 예수님께서는 기쁘게 맞이하셨고 기꺼이 용서하시는 뜻으로 ‘신발’을 신겨주셨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로 받아들여주시는 뜻으로 ‘반지’도 끼워주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주류를 자처하면서, 율법을 글자 그대로 철저하게 준수하던 바리사이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며 경건하게 처신하던 사두가이들은 자신들과 달리 살아가던 죄인들을 가까이하고 어울리시던 예수님의 처신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메시아로 대접하기는 고사하고 율법을 어긴다고 험담을 하거나 마귀에 들려 기적을 일으킨다고 중상모략을 하기도 했으며, 종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렸습니다. 이들에게는 관용을 찾아보기 어려웠으며 더군다나 하느님의 자비를 배우려는 생각조차 아예 없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폐막된 지 50년이 되던 지난 2016년에 모두가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을 닮자”(에페 2,4)는 취지로 ‘자비의 희년’을 선포하면서, 회칙 ‘자비의 얼굴’(Misericordiae Vultus)을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반포하였습니다. 이 희년 선포 미사에서 교황은, “지금은 자비의 시대입니다. 평신도들이 자비를 실천하고 다양한 사회 환경에서 자비를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하고 강론하였습니다. 


또한 회칙에서는, “배고픈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이들에게 마실 것을 주며, 헐벗은 이들에게 입을 것을 주고, 나그네들을 따뜻이 맞아주며, 병든 이들을 돌보아 주고, 감옥에 있는 이를 찾아가 주며, 죽은 이를 묻어 주는” 육체적 자비 활동을 먼저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전통적 자비 활동에 더하여 새로운 강조점을 보탰는데 그것은, “의심하는 이들에게 조언하고, 모르는 이들에게 가르쳐 주며, 죄인들을 꾸짖고,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하며, 우리를 모욕한 자들을 용서해 주고, 우리를 괴롭히는 자들을 인내로이 견디며, 산 이와 죽은 이를 위하여 기도해 주는 활동에 나서달라”고 호소한 메시지입니다. 이 새로운 호소는 영적인 자비 활동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황의 이 호소는 하느님의 자비를 보여주신 예수님의 지팡이입니다. 새로운 메시아 백성으로 불림 받은 우리가 이 지팡이가 가리키는 자비를 외면하게 되면, 그것이 또 다른 죄를 저지르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육체적이고도 영적인 자비를 베푸는 길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강대국들의 과수원 한가운데에서, 하느님을 섬기는 대신 패권 추구에 골몰하는 숲속에 홀로 살아가는 듯한 우리 교회와 우리 민족이 하느님의 자비를 받는 길입니다. 


이 두 가지 종류의 자비 활동 가운데에서 육체적인 자비를 베푸는 일이 평신도 사도직에 더 어울린다고 봅니다. 신앙인 각 개인들은 물론 사도직 단체들에서 육체적인 자비를 베푸는 일이 평신도들의 기본 활동이 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자비를 베푸는 일 또한 본당 사목에서든 사회 사목에서든 성직자, 수도자들의 필수 활동이 되어야 하며, 적절한 은사를 받은 평신도들도 참여하면 좋겠습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