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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새벽처럼 오시리라
  • 이기우
  • 등록 2023-03-17 15: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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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3주간 토요일(2023.3.18.) : 호세 6,1-6; 루카 18,9-14 


“주님께서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信義)이며,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叡智)”(호세 6,6)입니다. 이는 하느님께 바치는 제사에서 감사를 드리는 뜻과 제물을 바치는 봉헌, 이를 위해 육신의 노동을 멈추는 안식과 그분의 뜻을 알아내는 식별 등 기본 요소들 가운데에서 식별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앞선 세 요소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지만, 마지막 요소인 식별이야말로 하느님께서 관심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뜻을 식별하여 제사를 봉행하기를 더 바라십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제사는 하느님을 저버리는 우상숭배와 다를 것이 없다고 호세아는 신랄하게 경고하였습니다(호세 5,5; 6,10; 7,2).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호세아와 같은 예언자들은 왕국 역사의 후기에 출현하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왕정 초기에는 이집트 탈출 신앙, 즉 파스카 의식이 살아있었기 때문이고, 왕국이 분열된 후부터 서로 경쟁하듯이 우상숭배에 물들고 그 결과로 최고선과 공동선이 무너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 무렵부터 남유다왕국과 북이스라엘왕국에서 예언자들이 나타나서 지도자들과 백성 모두를 향해서 매섭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언자들의 말씀을 듣고 지도자들이 회개하기는커녕 더욱 완고하게 타락하자 끝내 강대국에 의해 멸망 당하고 나서는 세례자 요한이 나타날 때까지 수백 년 동안이나 예언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되자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대책이 아나빔들이었습니다. 기왕의 지도자들, 즉 정치가들은 물론 사제나 궁정 예언자 같은 종교 엘리트들이 하느님을 거부한 이상, 예언자들이 전해주는 하느님의 말씀을 새겨 듣고 하느님께서 직접 보내실 메시아를 맞이하려는 아나빔들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예언자들도 이 아나빔들과 호흡하며 교감함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읽었고, 또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과연 그들 가운데에로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사제 계급인 사두가이들이 성전을 독점하며 드리던 제사를 정화하시는(마르 11,15-19; 마태 21,12-17; 루카 19,45-48; 요한 2,13-22) 대신, 백성이 살아가는 현장을 찾아다니시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심으로써 사람들 속에서 하느님께 “영과 진리 안에서”(요한 4,24) 제사를 드리는 새로운 길을 내셨습니다. 


이는 타락한 종교 엘리트들 대신에 아나빔들을 새로운 하느님 백성의 주류로 삼으시고, 이들을 동원하여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은 물론 그동안 종교 엘리트들로부터 죄인으로 낙인찍힌 이들까지 찾아서 새로운 하느님 백성의 외연(外延)을 넓히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이 나온 맥락이 이러한 상황이었습니다.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바리사이의 기도와, 직업상 돈을 많이 벌 수는 있었지만 율법상 죄인이었던 세리의 기도는 매우 대조적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께서 세리의 겸손한 기도 자세를 칭찬하셨지만, 세리의 겸손한 기도 자세가 겨냥한 바는 가난하지만 경건하게 하느님을 섬겨오던 아나빔들이었습니다. 바리사이 인간형과 대조되어야 할 것은 세리 인간형이라기보다 아나빔 인간형이었다는 뜻입니다. 


아나빔의 가장 진실한 전형은 성모 마리아이신데, 마리아께서도 당신 자신을 “보잘것없는 이들”(루카 1,48) 중의 한 사람으로 자처하셨으며,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가리켜서 “하느님 나라의 참된 행복을 차지할 가난한 이들”(마태 5,3; 루카 6,20)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호세아의 예언을 이 아나빔들을 겨냥한 메시지로 생각하고 들으면 정확합니다: “자, 주님께 돌아가자. 그분께서 우리를 잡아 찢으셨지만 아픈 데를 고쳐 주시고, 우리를 치셨지만 싸매 주시리라. 그러니 주님을 알자, 주님을 알도록 힘쓰자. 그분의 오심은 새벽처럼 어김없다”(호세 6,1.3). 실제로 예수님께서 하느님께 홀로 기도하시던 때도 새벽이었으며(마르 1,35), 부활하신 때도 역시 새벽이었습니다(마르 16,9). 


그런데 새벽은 물리적인 차원으로부터 뜻이 전이되어 영적인 차원에서 종종 쓰입니다. 그래서 과연 당신 빛으로 “새벽을 깨우시는 하느님”(시편 57,9; 108,2)께서 빛을 비추시면 그때가 바로 새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나빔들은 파수꾼이 먼동이 터 오는 새벽을 기다리는 심정보다 더 애타게 주님의 빛이 동터오는 새벽을 기다리고자 하였습니다: “파수꾼들이 아침을 기다리기보다 파수꾼들이 아침을 기다리기보다 내 영혼이 주님을 더 기다리네”(시편 130,6). 


예로부터 새벽빛이 떠오르는 동방으로 찾아간 우리 민족은 하늘이 주시는 새벽빛 속에 담겨 비추어오는 진리를 알아내고자 정성을 기울였고 진리를 숭상했습니다. 그래서 첫 도읍지의 이름도 아침의 땅이라는 뜻으로, ‘아사달’로 지었습니다. ‘조선(朝鮮)’이라는 민족 이름의 연원입니다. 


예로부터 제천의식(祭天儀式)을 중시했으며, 이를 위해 커다란 공력을 들여 고인돌을 쌓고, 제사에서 전해 받은 하느님의 뜻대로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천손의식(天孫意識)’을 통해 평화를 실현해 온 소중한 전통이 여기서 유래하였고, 자발적으로 진리를 들여와 교회를 세우게 하신 하느님 섭리의 배경도 이러하였습니다. 이 땅의 아나빔들에게 새벽처럼 오실 주님을 기다립니다(호세 6,3).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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