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중잣대, 그리고 의원들의 책임
히로시마를 지나 이윽고 오카야마시에 도착했다. 많은 시민들이 환영해주신다.
필자도 발언했다. 요지는,
"유럽처럼 주요결정은 국민이 직접 해야 한다. 대만도 국민투표로 원전폐기를 결정했다. 한국과 일본은 지금 민주국가 답지 않게 의사결정구조가 고장나있다. 오염수는 시간적 공간적으로 미치는 영향의 크기로 보아서 일개 정치인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국민이 개입해야 한다.
오염수방출을 막지 못하면 국경을 넘어 기성세대 모두의 직무유기다. 최근 미야기현의 반대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제 오카야마현도 시민들이 지사에게 요구해야 한다. 그런 현이 하나둘 늘어나면 기시다정부는 판단이 바뀔 수밖에 없다"
니시에 상은 오카야마에서의 환영행사를 주관한 탈원전운동의 중심인물이다. 그로부터 의미있는 정보를 들었다. 오염수 방출 반대를 표명한 미야기현 지사는 원래 정치적 성향으로 보아 그럴 위인이 아니라는 것. 다음 선거에 당선되려고 어쩔 수 없이 민의를 대변한 것이라는.
바로 이 대목이다. 주민들이 강력하게 어필하면 지사는 자신의 정치적 선택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사례라는 것. 이 사례를 인용해서 필자는 근 한달동안 도착하는 곳마다 발언했다. 모두 제2의 미야기현이 되자고.
이 자리에서 필자는 니시에 상에게 제안했다. 미야기현에서 주민들이 반대하고 있다는 것은 그중 구심점이 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들이 중심이 되어 행진단을 구성하고, 그들이 동쪽에서 교대로 걸어와서 한일시민도보행진단과 도쿄에서 만나서 크게 행진하면 어떠냐고.
이 말을 들은 니시에상은 이 제안에 호기심을 보인다. 나름대로 참신한 제안이라고 생각한듯. 그는 즉시 메모지를 꺼내들더니 센다이시(미야기현 중심도시)로부터의 거리계산과 소요일수 계산에 들어간다. 그러더니 몇군데 전화를 돌린다. 놀라운 추진력이다. 과연 이루어질 것인가?
국제결혼한 한국인 한 분이 마침 오카야마에 있는 처가를 방문했다가, 필자의 행진을 우연히 목격했다. 이때 인상이 깊었던지 자신의 소감을 적은 글을 행진홈페이지에 전한다.
"백번 양보해서 가령 99%안전해도 100% 안전하지 않으면 오염수는 일본을 위해서라도 이렇게 방류를 위한 검증만해서 무책임하게 바다로 버리면 안됩니다. 한국도 이 문제를 정치 프레임으로 서로 싸우는게 안타까울 뿐이고, 무관심인지 나라에서 결정한 걸 문제 삼지 않는 일본 시민 문화도 안타까울 뿐입니다. 우연히 오카야마에서 이런 날씨에 도보행진하는 두 분을 만났는데 입으로만 불만을 말하는 저같은 사람이 볼 때는 정말 대단한 분 같습니다. 사진 몇장 찍고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복잡하고, 뭔가 내가 할수 있는 게 없다는 우울한 기분에 잠시 멍 때리고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같이 참여해주는 일본 분들 보면 희망이 보이지만~(중략) 아무쪼록 건강히 완주하시고 좋은 의미 결과 생기길 바랍니다. 제 인생에서 베스트로 멋진 분을 만났습니다. 겁장이 쫄보로 사는 제가 창피하네요. 참여하는 분들이 더 많았으면 좋았을텐데 같이 행진하는 일본분과 단 둘이 걸어가시는 뒷모습이 계속 짠한 느낌이고 같이 참여하지 못하고 사진만 찍고 가서 죄송합니다."
쉬는 시간에 본 미국의 소식. 미국도 핵오염수 방출을 금지하는 주가 있다.
[민들레] 미 매사추세츠 주, 폐기 원전 핵오염수 해양 투기 불허
일부만 인용하면,
"미국 매사추세츠 주 환경보호부가 4년 전에 전력생산을 중단하고 폐쇄된 이 주 플리머스의 필그림 원전 폐기회사 홀텍이 이 원전 핵오염수 100만 갤런(380만 리터)을 인근 케이프코드 만(Cape Cod Bay)에 방류(투기)하려는 계획이 주 법률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허가하지 않고 있다고 7월 26일 보도했다. (중략) 처리와 최종 폐기를 위해 수증기화 및 부지 바깥으로의 운반 등 케이프코드 만에 핵오염수를 방류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들이 있다."
게다가 이로부터 얼마 후 8월25일에 뉴욕주에서 동일한 사건이 발행했다.
[민중의소리] 일본 오염수 방류 지지한 미국, 허드슨강 원전 냉각수 방류는 금지
중요한 대목만 인용하면,
"호철 주지사가 원전 냉각수 방류 금지 법안에 서명하자, 뉴욕 민주당·공화당 상·하원 의원들은 각자 환영 입장을 밝혔다. 법안을 발의한 민주당 해크햄 상원의원은 열정적으로 싸운 주민과 환경단체 활동가들에게 공을 넘기며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환경 승리 중 하나”라고 반겼다. 같은 당 레벤버그 하원의원 역시 “이는 우리 지역구뿐 아니라, 그 너머의 많은 사람들에게 반가운 소식”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팻 라이언 하원의원도 “오랫동안 대기업들이 지역사회의 안전을 무시한 채 독성 폐기물을 허드슨강에 버려왔고, 홀텍의 방사성폐기물 투기 계획도 이와 다르지 않다”며 뉴욕 주지사의 서명을 반겼다. 공화당 마이크 로러 하원의원은 “매우 기쁘다”고 했고, 공화당 마크 몰리나 하원의원은 “이것은 천연 보물을 보존하기 위한 상식적인 조치”라고 강조했다."
그러니까, 일본은 버려도 되고 미국은 버리면 안된다? 결국 바이든이 이상한 것이다. 미국 스스로 다른 대안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음에도 일본의 핵오염수 방출을 용인하는 것은 이상하다. 연방정부의 수장이 그런 엉터리 같은 판단을 하는 것은 예전이라면 어림없는 일이다. 미소냉전시절의 이데올로기 대립 때에는 서로가 도덕적 우위를 지키려는 노력이 있었건만, 그 시절이 지나면서 망가졌다. 어디서부터 고장난 것일까.
미국 뉴욕주의 사례에서 또하나 교훈이 보인다. 주지사뿐 아니라 지역출신의 의원들이 열렬하게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과 한국의 국회의원들은 철저히 이와 비교된다. 주권자인 국민이 의원들을 압박해야 한다. 특히 일본은 의원내각제인 만큼 의원의 책임이 막중하다. 그들에게 정치생명을 걸어라고 요구해야 한다.
국토미래연구소장
이 글은 <한겨레:온>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