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야를 지나 시즈오카 쪽으로 걸어가고 있던 8월 24일, 일본정부가 기어코 일을 저질렀다. 지구라는 우물에 고의로 독을 풀어제낀 것이다. 그동안 몇차례 해양방출을 연기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함부로 감행을 하지 못할 것 이라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지만 그 기대는 무참히 깨졌다.
박경리선생 생전에 김용옥선생이 만나서, '지금 세상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한 가지만 든다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자, 바로 답하기를 '일본문제'라고 하였다. 김대중대통령도 생전에 '일본이 민주주의를 거저 줍다시피 해서 걱정이다.' 라는 말을 했다. 그분들의 걱정이 현실이 되었다.
핵오염수문제의 본질은 의사결정방식에 있고, 일본의 허약한 민주주의가 초래한 위기라는 필자의 지적을 그대로 설명해주는 기사가 나왔다. 전 아사히신문 기자를 인터뷰한 경향신문의 기사가 그것이다.
[마키우치쇼헤이] “오염수 방류 결정 방식, 일본 ‘전쟁 가능 국가’ 전환에 그대로 적용될 것”
그의 인터뷰의 요점은,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방류 결정 방식이 위험한 이유는 자민당 정권이 비슷한 방식으로 ‘전쟁 가능 국가 만들기’를 밀어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논지로 보건대 핵오염수방출을 중단하도록 민중이 다그치지 않으면 더 큰 위기가 닥칠 수 있다. 그동안 미국의 억제에 의해 핵무장을 둘러싼 아슬아슬한 견제와 균형이 가능했지만, 미중대립의 국면에서 미국이 오판할 경우 이런 식의 일본권력층의 폭거는 얼마든지 다른 형태로 재현될 수 있다. 지난 백년의 역사가 말해준다. 올해 관동대학살100주년에 조선인(한국인) 후예로 일본에 살고 있는 동포들은 이 본질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젠 과거와는 다르다. 민중이 침묵했던 시절과는 달리 힘을 모아 권력의 횡포에 저항하고, 그 과오를 시정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권력의 폭주가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이 일어난다. 프랑스의 단두대는 그 예이다. 가깝게는 한국의 대통령들이 감옥에 가거나 그 결말이 불행한 것과 마찬가지다. 세계의 민중은 준비해두어야 한다. 그들에게 철퇴를 내릴 단두대를.
한국사회도 마찬가지다. 그런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일본정부를 두둔하고 그 하수인 노릇을 하고 있는 한국의 윤석열 들과 그 배후 조선일보는 반드시 응징해야 한다.
아이치현 행진막 하이라이트는 "방사능오염수 바다에 버리지 마 !" 라는 빨간 캐치프레이즈를 공식적으로 내건 회사를 방문한 것이었다. 태양광패널 제조와 함께, 이동형 화장실을 제조하는 기업이었다. 상품을 보니 자기완결형의 대단한 기술을 적용한 '이동형 생태화장실'이다.
회사의 주인은 올해나이 82세의 도상태(일본명 토 소우타) 회장이었다. 재일동포인 도회장은 한반도평화를 위해 남북이 교류하도록 애써오신 훌륭한 분이다. 시간의 휴식시간에는 이 분의 배려로 이 분 댁에서 편히 쉬기도 하였고, 많은 응원금도 기부받았다.
돌이켜보면 일본도 민중의 에너지가 결집된 시기가 있었다. 오래전에 농민'이키'(농민반란)도 있었고 최근에는 '젠교토'(1960년대 학생운동)도 있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둘 모두 어느 정도 고립적 환경속에 있던 시기였고, 투쟁방식도 물리적으로 저항하는 쪽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기성권력의 힘에 의해 좌절되기 쉬웠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지금의 일본은 모든 면에서 세계와 연계되어 있다. 민중의 투쟁에있어서도 연대적 환경에 놓여 있는 것이다. 필자와 같은 연대사례가 말해준다. 온라인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평화적 투쟁이 얼마든지 오래도록 가능하다다. 민중의 위력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시대가 아닐 수 없다.
하마마쓰역앞에서 그런 취지의 메모를 토대로 서툰 일본어로 발언하였다. 그런 후 여러 동지들도 연이어 발언하였다. 그런데 시민들의 반응을 보니 이상하게도 예전과 다른 느낌이다. 지역간 차이도 있겠지만 일본정부가 방류한 24일기점으로 그 이전과 달리, 이미 방류해버렸으니 어느 정도 체념한다는 느낌이다.
그런 의문을 감지하고 있던 차에, 주최측으로부터 재차 발언을 요청받았다. 이제는 한국말로 자유로이 즉석 발언을 하시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필자는 그런 가라앉은 분위기를 타파하는 듯한 강한 어조의 발언을 통역없이 한국말로 내뱉았다. 생생한 분노의 가두연설이다.
국토미래연구소장
이 글은 <한겨레:온>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