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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선을 위한 최소한의 전제
  • 지성용
  • 등록 2024-07-02 16:4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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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대 국회의원 정당별 의석수 (자료출처=MBC)


22대 국회의원 선거 출구조사가 발표되는 시간, 국민의 눈과 귀는 방송으로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터져 나오는 함성과 동시에 반대편의 낙담과 좌절의 눈빛이 방송 안에서 교차되고 있었습니다.


혁명이구나!


혁명(革命, revolution)은 권력이나 조직 구조의 갑작스런 변화를 의미합니다. 이전의 관습이나 제도, 방식을 단번에 깨뜨리고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급격하게 세우는 일을 혁명이라고 말합니다. 혁명(革命)이라는 한자어의 출전은 주역(周易)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전의 대부분은 변화하지 않는 원칙과 경전, 세세 대대로 지켜야 할 법과 윤리강령들을 돌판에 새겨 일 획도 변함없이 지켜야 할 것을 기록해 두었지만, ‘주역’만큼은 세상 만물이 예외 없이 변화한다는 흐름을 말하고 있습니다.


혁명에 해당하는 영어 revolution(레볼루션)은 라틴어 revolutio가 어원으로 "회전하다" 또는 "선회하다", "대변혁"이라는 뜻에서 나온 것입니다. 국가권력, 힘의 ‘반전’이 혁명이라는 것입니다. 민심은 지금의 정치체계와 사회구성체를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투표를 통해 그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불법이나 폭력이 동원되지 않았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질서 있는 투표를 통해 정부의 무능력과 무례함을 나무랐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단순한 인원동원이나 정권교체만을 말했던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교육, 의료, 종교 등의 문제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 국민 의견을 묻는 중요한 기회가 되었다는 데에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국민의 주권행사


올해 초, 윤석렬은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과 ‘대장동 50억 클럽 의혹 특검법’ 등 ‘쌍특검법’을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이태원 참사 특별법’, 곧 참사의 특별조사위원회를 꾸려 원인을 규명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야당 주도로 국회에서 통과시켰으나, 정부로 이송된 지 11일 만에 단호하게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이채양명주’라는 말이 세간에 떠돌았습니다. 이태원 참사, 채상병 순직사건 수사외압, 양평고속도로 게이트, 명품백 수수, 주가조작 의혹의 줄인 말입니다. 이 사건들의 핵심은 “국가권력을 자신들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 사용했다”라고 하는 직권남용에 해당하고, 국가의 가용자원을 적시, 적소에 사용하지 못했던 직권무능, 국가의 기본적인 운영의 틀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시스템 붕괴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국민은 선거를 통해 대통령 거부권을 거부했습니다. 그것은 국민주권의 행사였고, 이는 헌법에 명시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제1조2항)라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원칙에 입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0.74% 차이로 당선된 대통령이 국민 절반의 이견(異見)을 수용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자신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 즉자적으로 결정하고 말한다면, 어느 현대국가의 시스템이 온전히 견디어 낼 수 있겠습니까?


지난 2년 사이 국민은 외신의 보도와 당면한 현실을 마주하며 ‘더이상 이대로는 안된다’라고 판단했습니다. 해외순방 때마다 보이고, 들려오는 망신살 같은 장면이나, 대파 한 단에 875원이 합리적이라고 말하는 대통령, 의사들과 대책 없이 부대끼는 부담스러운 장면들을 볼 때에, 대통령 리더십이 초등학교 반장만도 못한 어이없는 결정과 상식 이하의 말들로 뿌려지는 장면을 바라보며 뉴스 보기도 멈추어버렸습니다.


국가의 미래인 R&D 예산을 앞뒤 없이 삭감하면서 여론이 안 좋아지는 것을 눈치채고는, 내년에는 전례 없는 R&D 예산을 증액하겠다고 하는 원칙 없는 정책들이 난무합니다. 잘 지내던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하고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에 끼어들어 숟가락을 얹는 외교 참사로 무역수지 200위권으로 추락하는 민생참사를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2,000이라는 숫자의 강박


의대정원을 2천명 증원한다고 하던 정부가 학폭 수사관을 2천명 증원하고, 인천대교 통행료를 2천원 인하했습니다. 오염수 방류 어민들에게 2천억을 지원하고, 대구 로봇테스트 필드에 2천억을 지원한다 발표하고, 장병급식비를 2천원 인상했습니다. 더불어, 늘봄 학교도 2천 곳을 지정하고, 국민 만남도 2천 명으로, 최근의 공무원승진도 2천 명 이렇게 2천에 집착하는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축구선수 이천수가 등장하여 선거판에 끼어들어 국민저항에 부대끼며 언론에 여러 차례 보도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상관성을 고민합니다. 어떠한 현상이나 결과가 보이면 ‘저게 왜 저러지?’ 동일한 상징이 반복해서 나타나거나 교차하면 ‘왜 그럴까?’ 의문을 가지는 것이 보편적인 인간 현상입니다. 그런데 윤석렬 정부 들어 계속해서 ‘2천’이라는 숫자가 반복되어 나타나니, 사람들은 이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이것이 특정한 어떤 인물에 대한 조언을 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전 정부의 최순실 사태와 같은 특정인이나 특정 종교의 국정개입 의혹을 만들었습니다. 현대국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추측되는 상황을 바라보며, 한숨이 내뱉어집니다.


코로나19로 국민들의 분노와 원성을 샀던 종교가 이제는 버젓이 버스 차량에 광고를 달고 선교 활동을 벌이고 있고, 이단색출이라며 진보적인 종교인들을 대학에서 몰아내고, 엄격하게 종교재판을 하던 개신교 교단들은 권력에 기생하는 이단 사이비 종교에 대해서는 이제 입을 다물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들은 무속이든, 도술이던 이제 종교통합을 이루기 위해 넓게 관대해졌고, 국회의원 선거에도 예비후보자를 출마시켜 의회 진입을 시도했지만, 불발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의회에 진입한 의미 있는 사람들



의회는 국민주권 실현의 장입니다. 그리고 논의와 숙고의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는 장이기도 합니다.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은 헌법기관이며, 국민의 바람과 원의, 정치적 효능감을 맛볼 수 있는 자리가 국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특별히 이번 총선을 통해 의회에 진입한 의원들을 면면히 살펴보며 희망과 기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검찰개혁의 선봉에 설 추미애(6선) 의원과 박은정 의원(전 법무부 감찰담당관), 이성윤 의원(초선) 등은 윤석렬 정부의 아킬레스건이며 역린(逆鱗)입니다. 외교전문가 김준형 의원(전 국립외교원장)은 누구보다 국제정세를 꿰뚫어 보는 안목을 가진 분이시고, 언론방송개혁의 적임자로 판단되는 최민희(전 방송위원회 위원장), 김현(전 방송위원), 이훈기(OBS 노조위원장), 노종면(YTN 앵커), 과학기술자 황정아(전 국가우주위원회 위원), 이해민(조국혁신당) 의원 등 수많은 인재들이 의회에 진입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준석과 천아람(개혁신당), 김재섭(국민의 힘) 등의 젊은 정치인들의 진입도 박수받을 일입니다.


젊고 유능한 합리적 보수도 필요합니다. 세대교체가 되어야 할 시간이 도래한 것입니다. 그들은 부패한 권력에 대해 당 안에서 바른 소리를 하다 쫓겨나거나 불이익을 당한 사람들이지만,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꿋꿋하게 정치를 해 온 사람들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서로 다른 입장에서, 다르게 말하는 것의 공유지점과 공감의 지평을 넓게 잡아나갈 수 있을 때 우리 사회가 한층 더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예상되었던 정의당의 소멸 0석, 최종성적표 2.14%


정의당의 해단식 10분 동안, 참석자들의 굳은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고 합니다. 4.10 총선에서 정의당은 정당득표율 2.14%로 비례대표 의석을 한 석도 얻지 못했고, 심상정 의원(4선)을 비롯한 지역구 도전자도 모두 낙선했습니다. 예상했습니다. 1-2% 정도 될 것이라고, 한때는 집권도 가능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던 정의당이 이렇게 처참하게 무너지면서, 지난한 진보정치의 시간과 꿈이 무너졌습니다.


류호정과 장혜영, 조성주의 청년 정치를 바라보며 응원하기도 했지만, 철학과 비전 없이 대중의 관심을 정책과는 무관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던 의원들이 대중을 가르치려 들고 오만하게, 건방지게 보여지기 시작했습니다. 민주적인 절차를 무시한 지도부의 비례 순번 결정으로 지역에서 성실하게 열심히 일해온 풀뿌리 진보정치인들의 숨통을 조여버렸습니다. 특정 계파에 묶여 대중과의 연대와 공감의 길을 잃어버린 진보정치는 숨 쉴 공간을 찾지 못하고 압사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2020년 총선은 진보정당이 300만 표를 넘긴 최초의 선거였고, 최대 승자는 정의당이었습니다. 정의당은 270만표 덕분에 6석을 얻었습니다. 2004년 민주노동당의 지지세를 회복했습니다. 그러나 국회의원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류호정이 비정규직 문제로 민주노총을 공격하며 노동문제로부터의 이탈이 시작되었습니다. 심상정의 5선 도전과 다당제 연합정치는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민주당 2중대가 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국민의 힘 2중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어부지리로 의원직을 거머쥔 정의당 최대수혜자 류호정은 자리의 무거움과 역사적인 책임감을 인식하지 못하고, 민주당 2중대 불가론을 외치다가는 이준석이 만든 신당에 지역구 후보로 들어갔다가 사퇴하며 정치 일선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들은 대중의 정서에 부응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고, 그들의 과학적 정세분석(?)으로 대중을 가르치려 들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마도 당명을 바꾸거나 해서 다시 창당을 하려 하겠지만 어느 누구도 그이들을 지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조국혁신당의 약진에 대한 단상


의로운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그는 다시 살아 돌아왔습니다. 그에게 돌을 던지고 조롱하던 사람들을 나무라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잘 알지 못합니다. 부활은 새로운 인식입니다. 갇혀있던 자신의 좁은 소견과 부족한 인식을 깨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악령은 늘 힘과 권력에 기대어 존재합니다. 힘에 편승하여 약자와 억울한 이들에게 올가미를 씌우고 돌을 던지는 이들은 시간이 지나 부끄러워지는 날을 맞이하게 됩니다.


조국 현상은 조국 한 인물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공동선에 대한 문제입니다. 정의와 불의가 교차하고, 빛과 어둠, 선과 악이 뒤집어져 다가왔던 끔찍한 순간이었습니다. 그에 대한 반작용의 힘이 결집한 것이 조국혁신당의 승리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조국혁신당은 조국 한 사림을 영웅으로 만들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표출되는 시대정신을 읽고 함께 바꾸어야 할 것, 함께 논의해야 할 것, 함께 청산해야 할 것들의 우선순위를 정해 개혁의 선봉에 서야 합니다.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은 가장 시급한 문제입니다.


조국혁신당이 지금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연일 보수언론, 한겨레마저 걸고 있는 “복수”의 정치프레임입니다. 조국 의원이 복수를 위해 정치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윤석렬 심판에 대한 에너지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조국혁신당은 미래의 혁명적 의제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조국혁신당은 전문가 혁신 정당, 스마트한 이미지가 필요합니다. 공동선을 향한 사회, 경제, 외교, 교육, 언론, 종교 등 모든 부문의 전문가들의 포룸, 플랫폼을 혁신당 안에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보적인 인사들의 섭외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의 인프라를 끌고 올 수 있는 플랫폼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만들어 조직화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다음 선거는 플랫폼 싸움이 될 것입니다. 절대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온-오프라인에서 가능한 플랫폼을 만들어 더 많은 공동지성이 융합되고 통섭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프레임에 걸리기 전에 선수를 치고 나가야 정국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습니다.


혁명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단호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일상의 삶을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해 나가야 합니다. 위기 아닌 곳이 없을 정도로 망가져 버린 현실을 많은 국민이 걱정하고 있습니다. ‘눈떠보니 선진국’에서 암흑 같은 2년을 지내오면서 많은 국민은 선거의 중요함을 절실히 깨달았고, 참여해야 한다는 중요한 학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치의 효능감, 내가 찍은 의원이 나의 목소리를 내준다는 ‘대의’의 원칙을 잊지 않고 정치를 해나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의견을 전달해야 합니다.


이전에도 ‘180석 줬더니 뭘 했냐!’ 말하지만 우리는 되물어야 합니다. 투표하고 나서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그것만큼 쉬운 일이 어디 있는가? 끊임없이 지역과 나라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의견을 피력하고, 정치인들에게 의견을 전달하며 민심의 향방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변화를 위한 실천을 해낼 수 있는 민주시민들이 많이 양성되어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바꿀 수가 있습니다. 깨어 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 그것이 공동선을 위한 최소한의 전제입니다.



(1) 天地革而四時成 湯武 革命 順乎天而應乎人: “하늘과 땅이 바뀌어 네 철을 이루듯 탕, 무의 혁명은 하늘의 뜻을 따라 사람들의 요청에 응한 것이다.”


이 글은 <공동선> 2024년 5-6월호에도 실린 글입니다.



[필진정보]
지성용 : 가톨릭관동대학교 중독재활상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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