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2주일 (2026.01.18) : 이사 49,3.5-6; 1코린 1,1-3; 요한 1,29-34
1. 요한의 세례, 예수의 세례
초대교회 시절에 코린토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사도 바오로가 하느님을 알지 못하던 그리스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느라 고군분투하고 있었는데, 아퀼라와 프리스카 부부를 만났습니다. 그들은 로마에서 살다가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내린 유다인 추방령에 따라 코린토에 오게 되었는데, 천막을 만드는 같은 일을 하다가 만나게 된 것이었습니다.(사도 18,2 참조) 군인의 전성시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전쟁이 흔했던 로마시대에는 천막의 수요도 많았습니다. 아퀼라는 원래 소아시아의 흑해 부근 본도 출신인데 당시 지중해권 문화의 중심지였던 로마에서도 자리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일솜씨가 좋았던 모양입니다.
바오로는 그 부부와 함께 동업자로 일하면서 자신이 전하던 복음을 들려주었고 곧 그 부부는 바오로의 제자 겸 선교사 동료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바오로는 아무래도 그 당시 이탈리아의 로마보다 더 로마적이었고 또 소아시아의 중심지로서 번영하고 있었던 에페소로 다시 건너가서 복음을 전하고자 했는데, 이 무렵 바오로가 떠난 코린토로 들어온 사람이 아폴로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던 그는 열심히 자기 스승의 가르침을 전하고 다녔는데, 아폴로의 설교를 유심히 듣던 그 부부가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서 바오로에게서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하느님의 길을 더 정확하게 아폴로에게 한 수 더 가르쳐 주었습니다(사도 18,26 참조). 그 내용이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아폴로가 요한의 세례밖에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 부부는 예수의 세례를 알려주었던 것입니다.
2. 물의 세례, 불의 세례
요한의 세례는 물의 세례요 죄로부터 회개하는 정의 구현의 세례입니다. 그런데 예수의 세례는 불의 세례이며 공동체를 형성하는 사랑 실천의 세례입니다. 요한의 세례도 죄를 짓게 하는 악의 세력에 저항함으로써 박해를 견뎌야 하는 십자가를 짊어져야 하지만, 예수의 세례도 죄를 짓게 하는 악의 세력에 흔들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감화를 주어야 하는 십자가를 짊어져야 합니다. 요한의 세례에서도 올바른 양심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고난이 기다리고 있지만, 예수의 세례에서는 더욱 성령께서 이끄시는 믿음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고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요한보다 더 큰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크다”(마태 11,11).
요한은 즈카르야와 엘리사벳 부부가 늘그막에 기도해서 낳은 아기였고 이 귀한 아기가 하느님의 선물로 주어졌음을 가브리엘 천사가 즈카르야를 찾아와서 알려준 바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보다 더한 하느님의 개입으로 탄생하셨는데 처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낳으셨기 때문이고, 이 사실을 가브리엘 천사가 요셉과 정혼한 직후 마리아를 찾아와서 알려주었습니다. 다 같은 하느님의 개입이었으나, 요한은 예수님을 위한 존재로서 태어났고 예수님은 요한이 닦아놓은 길을 따라서 하늘로 들어가는 길을 활짝 열어 젖히셨습니다.
그래서 탄생 과정에서 똑같이 하느님께서 개입하셨지만 준비와 실현이라는 차원에서 다르게 개입하셨던 것처럼, 활동 과정에서도 요한에게는 회개를 외치고 물의 세례를 베풀며 헤로데와 같은 악의 세력에 저항하다가 죽임을 당하는 십자가가 주어졌지만 예수님께는 불의 세례를 베풀며 사랑의 공동체를 형성하다가 죽임을 당하는 십자가가 주어졌습니다. 이 차이에 대해서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증언한 바 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루카 3,16).
3. 성령의 세례, 십자가의 세례
과연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루카 12,49-50). 이 불의 세례는 제베대오의 두 아들이 부활에 이르는 십자가의 이치도 모른 채 그저 약간의 공명심에 들떠서 스승의 옆자리에 앉고 싶어 했을 때 예수님께서 걱정스럽게 권하셨던 것이기도 합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마르 10,38).
당신 자신도 힘겨워 하셨지만 제자들에게 짊어지어 주시기도 어려워하셨던 이 불의 세례는 십자가의 세례이기도 했으므로, 무려 세 번이나 거듭거듭 예수님께서는 예고하셨고 또 당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제자가 되려면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 8,34; 마태 16,24; 루카 9,23) 그러나 이 십자가는 부활과 함께 예고되었습니다. 십자가를 짊어지는 사람은 부활에도 참여합니다. 그래서 물의 세례와 달리, 불의 세례는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게 하는 성령의 세례요 그 사랑을 실천하느라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부대끼는 십자가의 세례인가 하면 그 안에서 하느님의 전능으로 부활하는 세례이기도 합니다. 이 세례가 하느님 나라의 현실, 즉 ‘새 하늘과 새 땅’(이사 66,22; 2베드 3,13; 묵시 21,1)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4. 죄를 용서받은 은총 지위
교회는 물과 불로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을 따라서, 그리고 모든 민족들에게 그분의 가르침을 가르치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는 그분의 지상명령에 따라 그리스도교에 입문하기를 원하는 이들을 예비자로 받아들이고 일정한 과정을 거쳐 세례성사를 거행하고 있습니다. 이 세례성사를 거행하는 재료는 죄를 씻는 물이며, 이렇게 하여 우리가 받게 되는 은총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교 신자는 영혼에 그리스도의 인호(印號)가 새겨진 존재로서 세상과 구분되는 은총의 삶을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습니다. 이를 은총의 지위라고 합니다. 단 한 번, 그것도 육신이 물에 씻김을 받았을 뿐인데도 그제까지의 모든 죄를 용서받고 영혼이 다시 태어나서 영원한 생명으로 살아갈 수 있는 엄청난 은총을 받는다는 것은 너무나 과분한 보상입니다. 세례 예식을 받기까지 준비과정으로 6개월 정도의 교리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는 일종의 약속어음을 발행하는 일과도 비슷해서, 세례를 받기까지 들인 노력보다는 세례 이후 예수님을 본받고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서 세상의 죄를 없애기 위한 실천 노력에 동참하겠다는 선언의 가치가 그토록 크고 위대하기 때문에 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례 후 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냉담하는 경우는 약속어음에 따른 대금을 지불하기를 거절함으로써 그 어음종이를 한낱 휴지조각으로 만드는 부도 행위와 같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한 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 인생을 통하여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함으로써 그분 마음에 드는 자녀가 되는 일생일대의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신 사건에서 보듯이,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하느님 앞에 마주 서는 이 세례 사건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창조하신 그러나 세상의 죄에 물들어가는 이 세상을 다시 당신의 나라로 새롭게 창조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래로 하늘이 열렸고 하느님께서 성령의 기운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세상의 역사를 움직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세례 사건이 하느님께 대해서 지닌 영적이고 종교적인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5. 우리의 믿음,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기적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죄가 없으시면서도 우리가 세례를 받음으로써 죄를 용서받기를 원하셔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세례를 받고 나면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세례 예식의 핵심 절차는 물로 씻는 예식인데, 이를 위해 죄를 끊어버린다는 서약을 하고 나서 물로 씻겨진 다음에는 사도신경을 통해서 믿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때 고백한 믿음은 체험과 깨달음을 통해서 굳세어져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후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믿음을 불러일으키시기 위해 하신 행동은 기적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와 권능을 체험 시켜 주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찾아오는 수많은 병자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고쳐 주시면서 수많은 기적들을 일으키셨습니다. 이 기적들을 목격하거나 체험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을 수 없었고, 하느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실로 기적은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시는 주요한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기적을 체험하거나 목격했다고 해서 모두가 믿게 된 것은 아니었으므로 예수님께서는 매우 이상하게 여기셨고, 특히 카파르나움이나 코라진, 벳사이다 같이 기적을 많이 일으키셨던 고을에서 믿음이 없는 것을 보시고는 매우 신랄한 어조로 단죄하기도 하셨습니다(마태 11,20-24 참조). 그러나 기적을 체험하거나 목격한 사람들 가운데에서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을 만나실 경우에는 크게 기뻐하셨고, 하느님께 감사드리시기도 하셨습니다(루카 10,21 참조). 이러고 보면, 우리에게는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치유나 구마가 기적이었지만 예수님께는 우리의 믿음이 그야말로 기적이었던 것입니다. 분명, 기적은 믿는 이들이 겪을 수 있었던 믿음의 결과였고 또 믿음은 기적을 일으키셨던 예수님의 목표였습니다.
사실 우리의 삶은 기적의 결과로 이루어졌습니다. 세상과 사람을 지어내신 창조가 하느님 사랑으로 말미암은 기적이었고, 구세주의 강생과 부활이 또한 기적이었습니다.
저 광대무변한 우주가 무에서부터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입니다. 또 인간이 고안해 낸 수의 개념으로는 미처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별들 가운데에서 오로지 지구라는 별에만 생명이 살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축복하셨습니다. 밤 하늘에 빛나는 별들도 우주선이 근접 촬영하여 보내온 영상에 의하면 온통 유독한 가스층으로 뒤덮인 바위 덩어리들인데, 유독 지구에만 물과 공기가 있어서 사람이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카인의 후예들이 짓는 죄가 세상에 가득 차고 도무지 하느님다운 하느님을 모른 채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인류를 사랑하시어 천지를 창조하실 때와 다름없는 공력으로 구세주를 성령으로 잉태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으로 하여금 당신의 모습을 닮은 삶을 살게 하셨으며,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이자 하느님의 전능으로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이 또한 천지 창조에 못지않은 기적입니다.
이렇듯 커다란 기적의 바탕 위에서 우리가 인간으로 탄생한 일도 기적이며, 세례를 받아 창조주 하느님과 구세주 예수님을 믿게 된 신앙도 하느님께는 기적입니다.
지구상에 지음 받은 무수한 생명체들 가운데에서 오로지 인간만이 의식을 갖추고 있으며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인간만이 자신을 지어내신 창조주를 의식할 수 있는 것도 이 의식 작용 덕분입니다. 그런데 지구상에 태어나 살아가 죽어간 숱한 사람들 중에서 처음으로 아브라함이 창조주 하느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기적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후손들인 유다인들마저도 구세주를 알아보지 못했는데, 극소수의 아나빔들만이 구세주를 믿어서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새 인류로 부름받은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가 출현한 것도 부활의 기적이 낳은 산물입니다. 마찬가지로 그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신자가 된 이들 또한 인류 전체의 역사 안에서는 극소수였습니다. 그러니 세례로 인한 믿음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신앙의 가르침에 따라서 우리가 사랑하는 것도 기적이며 인간다움을 드러내는 모든 행실도 세상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향기를 풍기는 기적입니다.
백 년 박해를 이겨낸 우리 교회에서도 자발적으로 세례를 받아 천주교인이 되고 나서도 주일미사에 참례하지 않고 신앙을 고백하지 않아서 믿음의 약속어음을 부도내고 있는 비율이 무려 80%를 넘는다는 최근 교세통계가 있습니다. 그나마도 코로나로 인한 펜데믹 이후 반 토막이 나버려서 열에 하나만 지금 이 자리에 앉아 계십니다. 이렇듯 알곡과도 같은 진짜배기 천주교인들이 믿음의 약속에 따라서 사랑을 실천하는 일은 그야말로 드문 기적인 것이며 그 사랑의 향기를 풍기는 모든 아름다운 행실들도 귀하디 귀한 기적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듯 기적의 연속으로 믿는 이들을 이끄시고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오실 미래를 내다보면서 이사야 예언자가 전해준 하느님의 말씀은 그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 모두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너는 나의 종이다.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이사49,3.8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