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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의 뿌리는 가정과 삶의 태도에 있다
  • 이기우
  • 등록 2026-04-26 0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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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4주일 (2026.04.26) 성소주일 

: 사도 2,14-41; 1베드 2,20-25; 요한 10,1-10 



1. 전례의 취지


부활 제4주일인 오늘은 성소(聖召) 주일입니다. 우리에게 들려오는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을 성소라고 하는데, 성소 주일은 하느님의 부르심과 함께 이 부르심에 대해 드려야 할 우리의 응답에 대해 생각해 보는 특별한 날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진행되던 1964년에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7-38) 하신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매년 부활 제4주일을 성소주일로 정했습니다. 사실 성소는 믿음을 받아들인 모든 신자들에게 열려 있는 은총이지만, 특별히 하느님 나라와 교회 그리고 복음화를 위해 자신의 일생을 봉헌할 일꾼들인 사제, 수도자, 선교사의 성소 증진을 위해 기도하고 관심을 일깨우는 날이 오늘, 성소 주일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일꾼들, 즉 사제와 수도자와 선교사를 부르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수확할 밭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수확할 일꾼’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어린이, 청소년, 젊은이들이 장차 사제, 수도자, 선교사로 받을 부르심을 알아 들을 수 있는 자리와 기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 자리가 혼인 성소를 통해 성화시켜야 할 가정이요,  그 기회가 직업 성소를 통해 세상에 나가서 봉사하는 신자들의 모범입니다.  


성화된 가정, 적어도 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기도하는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는 자녀라야 일꾼을 바라는 꿈을 꿀 수 있고 그런 꿈을 지닌 자녀라야 하느님의 부르심을 알아 듣습니다. 기도하는 가정에서 부모와 함께 기도하면서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한 어린이들이 사제와 수도자 그리고 선교사로 초대하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또한 세상에 봉사하는 직업을 통해 신앙을 증거하는 부모를 보면서 자란 자녀라야 일꾼이 되기를 바라는 꿈을 꿀 수 있고 그런 꿈을 간직한 자녀라야 장성해서 하느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죄와 탐욕에 물들지 않고 세상에 대한 봉사의 직무로 직업을 성화시키는 부모의 등을 보며 자란 청소년들이 성소의 싹을 키워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혼인 성소와 직업 성소가 사제 성소는 물론 수도자 성소와 선교사 성소의 못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말씀의 흐름


전례의 취지를 말씀드린 데 이어 오늘 미사의 복음과 독서에 들려온 하느님의 말씀도 살펴보겠습니다. 복음은 요한 복음 10장에 나오는 착한 목자의 비유 이야기이고, 제1독서는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가 오순절에 유다인 군중에게 행한 설교이며, 제2독서는 베드로 사도가 교우들에게 써 보낸 편지입니다. 부활 시기에는 요한 복음과 사도행전을 집중적으로 봉독하는데, 그 이유는 특별하고도 중요합니다. 공생활 동안에는 그 신원이 가려져 있었던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전까지는 그분의 참모습이 드러나지 않았었습니다. 이것이 마르코, 마태오, 루카 등 공관복음사가들이 기록한 복음서의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요한 복음사가는 달랐습니다. 아예 복음서의 처음부터 예수님의 참모습을 전제하고 공생활을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한처음부터 창조주 하느님과 함께 계시던 존재로 소개한 요한은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내는 일곱 가지 표징 사건으로 복음서를 구성했습니다. 요한 복음서에 증언되신 예수님은 십자가로 부활하시는 분이기 이전에 이미 부활한 경지에서 존재하고 활동하시는 분으로서 등장하고 또 활약하셨습니다. 그분이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시던 순간에 남기신 말씀이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인 것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일곱 가지의 표징으로써 당신의 신성을 다 드러내셨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부활 시기에 선포되는 부활의 복음은 독서로 배치된 사도행전에서 빛을 발합니다. 사도행전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발현하시는 체험을 세 번이나 하게 된 제자들이 사도로 변화되어 교회를 세우는 장엄한 과정을 증언하는 ‘교회의 복음서’입니다. 그들은 믿음이 굼뜨거나 허약한 처지를 벗어나서, 담대한 믿음으로 용감하게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목숨을 걸고 증언하고 다녔습니다. 발현하시는 예수님을 만난 체험이 그토록 강렬했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들과 성령으로 함께 하시던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과 입과 손을 통해서 기적도 일으킬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앉은뱅이 불구자가 일어나 걷고 뛸 수 있었던 기적이나 이미 죽은 사람을 일으킬 수 있었던 기적도 사실은 사도로 변화된 그들과 함께 계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그리고 반드시 “나자렛 예수의 이름으로” 설교를 했고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초대교회 신자들도 변화되었습니다. 함께 모여서 사도들의 말씀을 듣고 성찬을 나누면서 가난한 이들에게 가진 것을 나누었습니다. 신자들의 거룩한 변화를 지켜본 사도들도 이것이 예수님의 성령께서 하시는 일인 줄을 깨닫고, 용기 백배하여 사방에 나가 ‘예수 부활’을 선포하고 증언하였습니다. 이렇게 되자 주변의 유다인들이 경탄하며 믿음을 청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신자들의 수효가 날로 늘어날 수 있었습니다. 로마제국과 유다인들의 박해 속에서도 교회는 날로 커 갔습니다. 그러니까 사도행전은 제자들이 사도들로 변화되어간 과정만이 아니라 변화된 사도들을 통해서 초대교회의 일반 신자들까지도 변화되어간 과정까지 증언하는 교회의 복음서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제와 수도자 그리고 선교사 성소를 위해서도 신자들의 가정이 거룩하게 변화되어야 할 당위성과 필요성이 여기서 비롯합니다. 이것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나는 양들의 문이다.”(요한 10,7) 하고 밝히신 뜻입니다. 제자들도 이 ‘양 들의 문’을 통하여 들어갔기에 사도로 변화될 수 있었고, 변화된 사도들을 통해서 신자들도 이 ‘양 들의 문’을 통해 들어갔기에 공동 생활과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를 이룩할 수 있었습니다. ‘양들의 문’이라고 밝히신 예수님의 계시에 따라서 우리네 가정과 직업이 그분 삶을 통해서 하느님 안으로 들어가는 일, 이것이 사제 성소, 수도자 성소, 선교사 성소를 계발하고 키우는 일의 시작입니다.


3. 성령의 이끄심


부활 시기는 성령 강림 대축일로 마칩니다. 부활하신 경지에서 가르치고 증언하시며 일곱 가지 표징을 보여주신 예수님의 말씀을 요한 복음서를 통해 들은 교회가, 사도행전을 통해서는 제자들이 사도들로 변화되고 또 변화된 사도들에 의해서 신자들이 공동 생활과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를 나설 수 있을 만큼 변화될 수 있었던 기운은 성령의 이끄심 덕분이었습니다. 이 기간이 전례상으로 50일 동안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도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을 사십 주야 동안 받으신 후, 고향 나자렛의 회당에서 당신 사명을 선포하실 때에 성령의 이끄심을 받으신 데에서 기원합니다.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이끄시는 성령에 따라서 부활의 경지에 오르신 것이었으며, 당신의 제자들도 같은 경로를 따라서 사도들이 될 수 있도록 이끄셨던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성령께서는 제자의 처지에서 변화된 사도들이 가난하고 아픈 이들을 기적의 복음을 선포할 수 있도록 이끄셨고, 또 이를 목격한 초대교회의 신자들 역시 말씀을 듣고 성찬을 나누는 공동 생활과 가난한 이들에게 가진 것을 나누는 복음 선포의 길로 이끄셨던 것입니다.


사제와 수도자, 선교사가 성소를 받고 예수님을 따라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응답을 할 수 있기 위해서도 성령의 이끄심이 필요합니다. 기도로 성화된 가정에서 그리고 사회에 봉사하는 직업을 통해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게 된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성령의 이끄심에 끌리게 됩니다. 기도에 맛들이고 봉사의 보람을 알게 되면, 사제나 수도자 그리고 선교사로서 살아가고 싶은 거룩한 열망을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길에 첫 발을 내딛는 이들이나, 일생을 바쳐 성소에 응답한 이들의 한결같은 비결은 오직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이 하느님께서는 바로 성령이십니다. 그 성소의 길이 아무리 험난해도 성령의 이끄심과 도우심 덕분에 기도하면서 힘을 받아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이끄시고 도우시는 값진 열매는 가난하고 아픈 이들에 대한 사랑인데, 이것이야말로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는 보증입니다. 이는 “나는 양들의 문”이라고 계시하신 예수님께서 당신처럼 가난하고 병든 이들에게 자비와 사랑을 베풀라고 당부하시고는, 제자들과 모든 믿는 이들에게 밝히신 최후의 심판의 척도를 밝히신 데에서도 잘 드러납니다.(마태 25,40) 그 척도가 바로, 가난하고 병든 이들에게 베푼 자비와 사랑입니다. 그래야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요한 10,10)는 예수님 말씀이 실현됩니다.


오늘날 성소자가 감소하는 바람에 성소의 위기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성 소 감소에 대한 대책을 세우려면 성소 위기에 대한 진단부터 정확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정작 성소의 위기는 사제직과 수도생활 그리고 선교사 지망자가 줄어드는 결과적 현상이 아니라, 기존의 성소자들인 사제와 수도자 그리고 선교사들이 이 열매와 척도를 뚜렷하게 증거하지 못하는 원인적 현상에서부터 옵니다. 성소의 위기를 가정마다 한 자녀만 낳는 풍조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예수님도 나자렛 성가정에서는 하나 뿐인 외아들이셨습니다. 또 자녀들이 많은 신자 가정이라고 해서 성소자가 꼭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부모의 혼인 성소와 직업 성소를 통해 하느님의 손길을 느낀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이 ‘양들의 문’으로 들어오라고 초대하신 예수님의 당부를 구체적으로 느끼게 되는 계기는 바로 이 가난하고 병든 이들에게 사랑을 나누고 복음을 전하는 복음 선포입니다. 죄악에 물든 세상의 현실에 실망하게 되는 체험도 이 계기와 더불어 일어납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인생에 허무함과 회의감을 느끼게 되는 체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고, 예수님의 매력에 빠지며 교회에 현존하시는 성령의 섭리로 서서히 끌려가는 때가 바로 이때입니다. 고요히 마음을 들여다 보며 기도에 맛들여가는 때도 이때요, 경건하게 거행되는 미사에서 성사를 통한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게 되는 때도 이때입니다. 그야말로 오늘 미사의 화답송 후렴에서 기도한 바와 같이,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시편 23,1) 하는 처지가 되는 것이지요. 오늘 신학교와 수도원, 선교회 등에서 진행되는 성소 주일 행사는 바로 이때를 맞이하고 있는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을 맞이하는 성령의 이끄심이 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사도 베드로가 3천 명도 넘는 유다인 군중 앞에서 행한 설교가 성소 주일 행사에 참여하는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에게도 성소 주일 행사의 미사에서 선포될 것입니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이 타락한 세대로부터 자신을 구원하십시오.”(사도 2,38.40) 성소를 느끼게 된 이들이 하느님께로부터 용서받아야 할 죄란 바로 사랑하지 못한 죄입니다. 사랑을 받고도 감사하지 못한 죄입니다. 사랑을 받은 만큼 베풀지 못한 죄입니다. 십계명을 어기는 정도를 넘어서 이 근본적인 회개를 해야 할 깨달음을 느끼게 해 주는 이것이 바로 성령의 이끄심입니다.


교우 여러분! 성소의 바탕은 부모의 혼인 성소와 직업 성소에서 마련되고, 그 계기는 기존 성소자들이 증거하는 가난하고 병든 이들에게 베푸는 사랑에서 마련됨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필진정보]
이기우(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성사전담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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