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자지구와 팔레스타인에서 계속되는 폭력에 항의하며 세계 각국에서 모인 가톨릭 사제들이 로마에서 평화행진을 벌였다.
국제 사제 네트워크 ‘집단학살에 반대하는 사제들’(Preti contro il Genocidio·Priests Against Genocide)은 지난 22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기도회를 열고 바티칸 인근에서 이탈리아 방산업체 레오나르도 본사까지 행진하며 가자지구의 민간인 희생 중단과 외교적 해결, 무기 거래 중단을 촉구했다. 주최 측에 따르면 이날 행사에는 이탈리아를 비롯해 미국, 스페인, 영국, 아일랜드, 프랑스, 독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8개국에서 온 사제 150명 이상이 참여했다.
행진은 바티칸 인근 산토 스피리토 인 사시아 성당에서 기도회를 갖는 것으로 시작됐다. 참가자들은 비아 델라 콘칠리아치오네를 따라 성베드로광장 앞 피오 12세 광장까지 걸으며 평화를 위해 기도했다. 이어 팔레스타인 대표부와 주교황청 레바논대사관 인근을 거쳐 이탈리아 방산기업 레오나르도 본사가 있는 몬테 그라파 광장으로 향했다.
교황청 기관지 「L'OSSERVATORE ROMANO:로세르바토레 로마노」도 이번 행진을 보도했다. 이 매체는 참가자들이 평화를 위한 외교적 해결을 촉구하는 동시에 “전쟁으로 이익을 얻는 기업”에 반대한다는 뜻을 나타냈다고 전했다.
▲ ⓒ L`OSSERVATORE ROMANO숨진 어린이들의 이름 들고 걸었다
행렬의 중심에는 커다란 흰색 천이 있었다. 여기에는 가자지구와 레바논에서 숨진 팔레스타인·레바논 어린이 300여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참가자들은 올리브 가지를 손에 들고 여러 언어로 평화를 위한 기도를 바쳤으며, 서안지구의 그리스도교 마을 타이베를 위해 작곡된 노래도 불렀다.
ANSA에 따르면 이 단체 소속 리토 마레스카 신부는 이번 행동의 목적에 대해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목자들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도록 촉구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마레스카 신부는 “복음은 우리가 얼굴을 내밀도록 요구한다”며 중립이 고통받는 사람에게서 멀어지는 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는 최근 서안지구를 방문해 마사페르 야타 지역 주민들을 만났으며, 비폭력과 이웃 사랑이 자신들의 행동이 지향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참가자들은 이번 행진을 정당이나 특정 정치세력을 지지하기 위한 정치집회가 아니라 기도와 비폭력 행동으로 규정했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참가자들은 팔레스타인 국기를 들고 행진하려는 사람에게 국기를 내려달라고 요청했고, 일부 참가자가 정치적 구호를 외치자 이를 제지하기도 했다. 대신 교황 레오 14세가 강조해 온 ‘무장하지 않고 무장을 해제시키는 평화’를 내세웠다.
“전쟁과 무기의 근원을 말려야”
이들이 마지막 행선지로 선택한 곳은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방산기업 레오나르도 본사였다. 참가자들은 이곳에서 전쟁을 지속시키는 무기 생산과 거래의 문제를 제기하며 폭력과 무기의 근원을 제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가톨릭 주간지 「파밀리아 크리스티아나」도 이번 행진을 전하면서 참가자들이 무기 거래에 대한 보이콧과 비무장 민간방위 등 전쟁을 대신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행진에는 주교들도 참여했다. ANSA는 조반니 리키우티 알타무라-그라비나 명예대주교와 남수단 룸벡교구의 크리스티안 카를라사레 주교가 행렬에 참여했다고 보도했다. 다른 현지 보도에서는 만프레도니아-비에스테-산 조반니 로톤도대교구의 프랑코 모스코네 대주교도 참가한 것으로 확인된다.
‘집단학살에 반대하는 사제들’은 2025년 9월 출범했다. 주최 측의 최신 발표에 따르면 1년 만에 58개국 2,600명 이상의 성직자로 확대됐으며, 여기에는 주교 25명과 추기경 3명이 포함돼 있다.
이들은 지난 5월 이탈리아 주교들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도 “교회가 일반적인 평화 호소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즉각적이고 지속적인 휴전과 가자 봉쇄 해제, 안전한 인도적 지원을 촉구했다. 동시에 유다교 전통에 대한 존중과 반유대주의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자신들의 비판은 이스라엘 정치지도부와 군사정책을 향한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