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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길
  • 이종인
  • 등록 2015-07-31 09:4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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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길


삼일을 비가 옵니다.

쏟아지는 빗물이 땀에 젖어

어깨를 짓누릅니다.


퉁퉁 불어버린 밀짚모자처럼

이제는 감각조차도 

희미해졌습니다.


십오 일을 걸어 왔습니다.

발꿈치를 따라 수많은 그림자가 

빗물 위를 걷고 있습니다.


아직 걸어야 할 길은 한참 남았는데

사방에는 어둠이 깔리고

짙어가는 먹구름이 발길을 재촉합니다.


마음은 이미 저 산을 넘었습니다.

헉헉거리는 숨소리마저 

고갯마루에 올라섰습니다.


밟고 있는 검은 아스팔트 위로

빗물이 겹겹이 쌓입니다.

바다 내음이 납니다.


걸어야 할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그러나 걷는 내내 

아무것도 변한 게 없습니다.

빗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다시 길을 잡습니다.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비가 쏟아지고

빗물이 쌓여도

바다 내음 위로 걷고 있습니다.



◈ 출처 : 이종인 시집.『남은 길』중에서-



[필진정보]
이종인 : 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 전북 정읍에서 출생했으며 25살이 되던 해, 2000년에 『문학세계』 신인문학상(시 부문)을 수상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2014년, 세월호 미수습자를 위한 "생명과 정의의 도보순례단"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한 회의감에 빠졌고 창작 활동의 전환을 모색한다. 2015년 5월에 첫 시집, 『남은 길』(대장간)을 출간, 지금은 광주광역시 양림동에서 창작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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