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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기남대주교센터, 부끄럽다
  • 김근수 편집장
  • 등록 2015-08-19 16:17:04
  • 수정 2015-08-19 17:4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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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북일보


8월 16일 충북 음성 꽃동네가 '노기남바오로대주교센터' 축복식을 했다. 신생아와 어린이들을 위한 시설이라고 한다. 꽃동네 설립자 오웅진 신부는 "정진석 추기경을 모시고 노기남바오로대주교센터를 축복해 기쁘다"며 "생명에 관심이 많은 노기남 바오로 대주교의 이름을 붙여 축복식을 했다"고 말했다.


정진석 추기경은 이날 미사를 주례하였다. 정진석 추기경은 1970년부터 1998년까지 청주교구장을 지냈다. 정진석 추기경의 모친의 묘소는 꽃동네 성모상 옆에 있다. 정진석 추기경은 이명박 정권의 사대강 사업에 대해 “사업 결과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며, 이를 반대하는 주교회의 입장과 다른 의견을 냈던 사람이다.


문제는 '노기남바오로대주교센터'의 용도가 아니라 그 이름이다. 노기남대주교 말고 다른 적절한 명칭은 없었을까. 노기남(1902~1984) 대주교는 누구인가. 그는 일제 식민지 때 서울대교구장을 지냈다. 그는 창씨개명을 하고 일제를 위해 기도하라고 신자들에게 명령하였고, 일본군대를 위한 모금운동에 가담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에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노기남 대주교 이름이 실렸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보내온 ‘친일반민족행위 결정 통지서’에 대해 서울대교구는 “‘실질적인 내용’은 배제한 채 ‘형식적인 조건’에만 일방적으로 치우친 판단”이라고 말했다. 서울대교구는 “노기남 대주교가 식민지시대 말기 조선총독부의 강요로 몇몇 단체를 조직해 일제에 협력한 것은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기희생으로, 다른 친일 행위자와 분명하게 구분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대교구는 노기남 대주교의 친일행위를 ‘최소한의 자기희생’으로 교묘하게 둔갑시켰다. 서울대교구는 노기남 대주교의 친일 행적에 대해 민족 앞에 머리 숙여 사죄했어야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가 수 백 년 전 저지른 잘못도 기꺼이 사과하고 있다. 서울대교구는 백년도 안 된 잘못도 사과할 줄 모르는가. 프랑스의 사례가 떠오른다.


프랑스 드골정부는 1944년 해방 이후 나치점령 4년 동안 나치에 협력했던 부역자들을 대대적으로 처벌하였다. 나치 체제에서 군인과 공무원은 물론 민간인 중에 부역한 자들도 체포되었다. 그 숫자는 약 100만여 명이며 재판을 통해 유죄 선고받은 이들은 10만 여 명을 넘고, 그중 6763명이 사형 선고를 받았다.


드골은 일부 가톨릭주교들이 나치의 만행에 입을 다물고 저항하지 않은 것이 못마땅 하였다. 훗날 교황 요한23세가 되는 안젤로 론칼리 대주교는 파리주재 교황대사로 임명된 뒤 드골장군을 처음에 만나지도 못했다. 1995년 9월 프랑스 주교들은 가톨릭교회가 나치 점령기 동안 유대인이 받은 박해를 외면한 것에 공식 사과하였다.


만일 우리나라가 프랑스 같았다면, 해방 이후 노기남대주교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친일파를 처단하지 않은 것이 아쉽기만 하다. 그런데 해방 70년이 되는 다음날 꽃동네가 ‘노기남대주교센터’를 축복했다. 그런 뻔뻔한 처신에 대해 우리는 민족 앞에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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