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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 원 바우처로 언론을 시민의 손에 되돌리자
  • 이원영
  • 등록 2026-02-27 12:5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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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최근의 정치적 격변 속에서 어떤 언론이 어떤 행태를 보였는가를 생생히 목격했다. 노골적으로 특정 정치 세력에 편향된 보도를 일삼는 언론이 있는가 하면, 중대 사안을 회피하거나 희석시키는 언론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날이 갈수록 커지는 자본권력 앞에서 재벌이나 부동산 토건세력 등 기득권에 일방적으로 편승하는 보도를 하는 언론도 부지기수다. 언론의 '자유'가 국민의 판단을 그르치는 '권력'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주권자 국민에 의한 언론개혁운동, 이제 '감시'를 넘어 '결정'의 시대로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언론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행했던 왜곡 보도 저항과 불매운동이 언론의 잘못을 꾸짖는 '채찍'이었다면, 이제 우리는 언론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장치가 필요하다. 포털의 알고리즘이 뉴스의 가치를 결정하고, 자극적인 제목이 저널리즘의 품격을 실종시키고 있다. 시민은 더 이상 뉴스의 단순 수용자가 아니라 적극적 주권자로 나서야 한다.


현재 제22대 국회에 계류 중인 '국민참여를 통한 언론영향력 평가제도의 운영에 관한 법률'(일명 '미디어 바우처법', 김승원 의원 등 발의)은 그 출발점이다. 언론개혁 운동의 완성이자, 시민이 직접 뉴스 생태계의 재원을 결정하는 '적극적 주권 행사'의 시작이다. 이미 제21대 국회 때도 김 의원 등이 법안을 발의했지만 불발된 바 있다. 이제는 국회가 제대로 다루어야 한다.


미디어 바우처는 시민은 각자 자신의 몫으로 책정된 언론 지원 예산(바우처)을 자신이 지지하는 언론에 지원하도록 정부에 의사를 표명하는 것이다. 개별로는 소액이지만 모이면 큰 금액이다. 공정하고 진실된 보도를 하는 언론에게 그 지원이 모일 수밖에 없다. 연간 1조 원 규모의 정부 광고 집행 권한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이 법안은, 언론이 권력과 자본이 아닌 오직 '시민'만을 바라보게 만드는 혁명적 전환점이 될 것이다.


미디어 바우처는 결코 검증되지 않은 이상론이 아니다. 저널리즘의 위기를 겪고 있는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은 이미 국가의 직접 지원 대신 '시민의 선택'을 통한 배분 방식을 대안으로 채택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의 사례는 '언론 다원성'의 회복을 보여준다. AFP통신 이사를 역임한 줄리아 카제(Julia Cagé)는 거대 자본이 언론을 독점하는 구조를 타파하기 위한 '미디어 민주주의 바우처'를 제안했다. 특정 대주주의 입김에 휘둘리는 언론이 아니라, 시민들이 선택한 비영리 재단 형태의 매체들이 자생할 수 있도록 돕는 구조다. 프랑스는 청년층에게 신문 구독 세액공제를 제공하며, 미래 세대가 저널리즘의 가치를 체험하고 지탱하게 하는 마중물을 붓고 있다.


캐나다에서 2020년부터 시행된 '디지털 뉴스 구독 세액공제(DNSTC)'는 시민들이 유료 구독에 느끼는 경제적 부담을 국가가 분담해 준 사례다. 그 결과, 언론사는 광고주의 눈치를 보는 '조회수 경쟁' 대신, 독자들에게 직접 선택받기 위한 '고품질 심층 보도'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캐나다 정부는 이 제도가 저널리즘 기관들의 디지털 전환과 재정적 자립에 실질적인 기여를 했다고 분석한다.


미국에서는 지역 뉴스 바우처 논의가 '뉴스 사막화' 방지의 해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워싱턴 D.C.에서는 지난해 '지역 뉴스 지원법(Local News Funding Act)'이 발의됐다. 이는 거대 언론이 주목하지 않는 우리 동네의 목소리, 소외된 이들의 삶을 기록하는 지역 매체들에게 시민이 직접 '생명줄'을 던져주는 민주적 기제로 작동한다.


가짜뉴스를 막을 수 있는 미디어 바우처


미디어 바우처의 핵심 구조는 이렇다. 만 18세 이상 성인에게 연간 일정액(예 : 2만 원)의 바우처를 지급하고, 시민은 자신이 신뢰하는 언론사를 선택해 이를 배분한다. 5천만 명이 참여할 경우 1조 원 규모의 재원이 오롯이 '시민의 선택'을 통해 배분되는 것이다. 언론사는 바우처를 현금화할 수 있으며, 이는 기존의 정부 광고를 대체하는 핵심 수익원이 된다. 1개 언론사에 전액을 몰아주거나, 여러 언론사에 분산 배분할 수도 있다.


이 제도가 도입된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변화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첫째, 클릭 저널리즘이 종언을 고한다. 언론사가 포털의 알고리즘에 영혼을 파는 대신, 바우처를 든 시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경쟁하게 된다. 자극적 제목보다 깊이 있는 탐사 보도가, 속보 경쟁보다 팩트 체크가 더 중요해진다.


둘째, 지역 및 전문 매체가 부활한다. 중앙 정치에 매몰된 거대 언론이 외면하는 지역의 현안과 소수의 목소리가 시민의 후원을 통해 당당히 자생력을 갖게 된다. 우리 동네 교육 문제, 환경 이슈, 소상공인의 애환을 다루는 로컬 매체들이 시민의 바우처로 생존 기반을 확보하는 것이다.


셋째, 가짜뉴스는 자연적으로 도태된다. 왜곡 보도를 일삼는 매체는 시민의 선택에서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시장의 자정 작용이 법적 규제보다 더 강력한 징벌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특정 진영으로 쏠릴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지만, 이는 과도한 걱정이다. 법안에는 이미 한 매체당 지원 집중 상한(50%)과 마이너스 바우처(최대 25%) 등 균형 장치가 마련돼 있으며, 시민 다수의 분산된 선택이 자연스러운 다양성을 만들어낼 것이다. 오히려 현재처럼 불투명한 정부 광고가 특정 매체에 쏠리는 구조가 훨씬 더 큰 왜곡을 낳고 있다.


또 다른 우려는 '포퓰리즘 언론의 부상'이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보도로 대중 영합에만 치중하는 매체가 오히려 바우처를 많이 받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본질적 딜레마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시민의 집단지성을 믿어야 한다. 초기에는 일부 그런 현상이 나타날 수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시민들은 진정으로 신뢰할 수 있는 언론을 선별하게 될 것이다.


국회는 시민의 명령에 응답해야 한다


미디어 바우처법은 단순히 예산을 배분하는 법안이 아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뿌리인 '알 권리'를 시민의 손으로 직접 경작하게 하는 법안이다. 그동안 이런 공공성이 강한 정보의 영역을 민간기업의 손에만 맡겨둔 것은 헌법정신을 침해하는 것이다. 저널리즘의 위기는 단순히 언론사의 경영난만이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위기다. 시민이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얻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난 몇 년간 그 참담한 결과를 목격했다.


제22대 국회는 이 법안의 통과를 더 이상 미루지 말아야 한다. 국민주권의 깃발을 들고 거리에서 외쳤던 우리 시민들의 열망이 이제 제도라는 결실로 맺어지길 강력히 촉구한다.



이원영 

시민인권위원회 공동위원장 

국토미래연구소장 

전 수원대 교수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필진정보]
이원영 : 시민인권위원회 공동위원장, 국토미래연구소장, 전 수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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