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17일 금요일, 맑음
어젯밤 우이동집 대문을 들어오면서 둘러본 ‘빵기네집’ 마당은 터질듯한 생명의 숨결로 가득했다. 어둠 속에서도 뾰족뾰족 얼굴을 내밀고 봄밤을 지키느라 서로들 소곤거린다. “아이고, 이쁜 것들!” 내가 없어도 든든하게 집을 지키고 생기로 채워주는 요것들이 있어 한 달에 한 번 들르는 발길이 늘 사뿐하고 즐겁다.
밤을 지새고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뜰을 살피고 고것들과 일일이 눈인사를 나누기다. 금낭화, 둥굴레. 매발톱, 은방울, 튤립, 석단풍... 집안 구석구석에 제각기 터를 잡고서 저희들끼리는 주인 눈에 안 띄게 곧잘 자리다툼을 하면서 자란다. 둘이 앉는 책상에 금을 긋고서 분도기로 찍어대거나 땅뺏기 놀이에 정신없는 애들 같다. 내 손길을 40여년 받아온 애들이다. 참나무에 종균을 심어 돈데 밑에 세워둔 둥치에서는 표고버섯이 손바닥만큼 자리 올라 게으른 집사총각을 나무란다. 한 바구니 다서 물로 씻어 밝은 햇볕에 널었다.
12시 인사동에서 ‘목우회’를 만나야 해서, 그 전에 국민은행 안차장에게 들러야 해서 10시경 집을 나섰다. 목우회는 한정식 집에서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담소하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그간의 주변얘기를 나누다보면 늘 살갑게 느껴지는 사람들이다.
저녁 시청광장 행사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져 나는 얼마 전부터 아파온 발바닥통증 때문에 병원에 들렀다. ‘족저근막염(足低)筋膜)’이라는 진단을 해 준다. 많이 걷고 많이 서 있어서 오는 염증이어서 치료가 오래 걸린다며 소염제를 잔뜩 처방해 준다. 몸이 주인을 잘못 만나면 고생이 많다. 집안에서만 지내도 하루에 만보 이상을 걷노라고 자랑을 해오던 터라서 어루만져줘야 덜 심술을 부를 것 같아 자중을 해야겠다.
오후 6시부터는 시청 광장에서 “세상에서 가장 슬픈 도전”이라는 행사를 한다. 어제가 4월 16일이어서 4160개의 촛불로 세월호 모습을 촛불로 만들어 보이고 8분 30초 동안 배형상을 만들어 보이다 차츰 꺼가는 행사를 기네스북에 올려 전 국민과 전 세계인들에게 세월호 사건을 상기시키자는 것이다. 기네스북 등재만 아니라 깨어 있는 국민이 함께하는 운동이며 평범한 시민이 주체가 되어 우리의 미래를 변화시키는 준비하자고, 우리주변부터 작은 정치적 변화를 만들어가자는 운동이다.
세월호로 마음 아파하는 이들이 전국에서 올라와 6시부터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함세웅 신부님을 비롯 각계각층이 함께하는 운동에 시민들의 폭발적 지지와 참여를 보고서 우리 목우회 사람들도 다 놀랐다. 보스코는 집에서 이런저런 문건을 준비하다 세시경 집에서 나와 그의 책을 출판하는 ‘경세원’ 영준씨를 만나 저녁을 먹고서 7시가 넘어 나와 합류하였다. 이런 일에는 늘 뜻을 함께하는 목우회원들이 사랑스럽고 수녀님들이 유난히 많이 보여서 가톨릭의 사회참여가 눈에 띄는 자리였다.
조명이 꺼지고 촛불이 켜진 어둠 속에서 행사는 각계인사들의 격려사, 유가족대책위원장 ‘상훈아빠’의 호소, 두 시인의 피울음 나는 시낭송, 애절한 기억의 노래로 엮어지고 특히 마지막 이애주 교수의 살풀이춤은 우리의 증오와 절망을 승화시키는 아름다운 기도였다. 이렇게 ‘세월호는 우리 가슴에 희망의 범종(梵鐘)소리로 긴긴 여운으로 울리고 있다.
행사가 끝나고 문정주 선생님 부부를 긴장과 추위를 녹이면서 만나 차와 환담을 나누었다. 서울시립동부병원장직을 끝마친 김경일 원장과 문선생님은 그간의 여유를 여행으로 재충전할 생가인가 보다.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니 자정이 다 되었다. 엽이가 깨어 있다가 이층으로 올라와 한참이나 담소하다 내려갔다. 엄마 정옥씨가 50대에 감행하는 문학공부와 인생도전에 깊이 감복하고 지원하는 아들이다.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