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10일 토요일, 맑고 흐리다 소나기
광주에 갔다. 수세미물을 제법 많이 받아놓았기에 스킨 만들어 쓰시라고 성삼회 수녀님들에게 갖다드리고, 12시에는 보스코의 6총 동생 성석현 장로의 아들 결혼식에 가고, 방림동 어머니의 산소에 성묘를 하고, 저녁 6시에는 구례 화엄사 ‘화엄음악제’에 참석하는 여정이다.
석현이 서방님은 촌수는 한참 멀지만 보스코의 고향 장성에서 대대로 가장 가깝게 살아온 집안이어서 4촌 이상으로 친하게 지내온다. 보스코의 할아버지와 석현이서방님네 할아버지가 두 분 장로로 저 1910년대에 그 시골에 교회를 세워 목사님을 초빙하고, 소학교(분교)를 열고, 중학교(분교)를 열고, 목욕탕을 지은 선각자들이셨단다. 그만큼 보스코의 기독교 뿌리가 깊다.
오늘 혼인예배를 마치고 피로연을 하는 신랑 신부도 어리고 귀여운데다 싱글벙글하는 모습이 “인생은 아름다워라!” 그대로다. 장로인 석현이서방님의 둘째 누나(보스코보다도 한 살 많다) 애련이 누나는 남편이 목사고 두 사위가 목사일 정도로 독실하기 이를 데 없는 기독교 집안이다.
방림동의 어머니 산소엘 가니 그 일대 토지가 “방림동 교회 부지이니 묘지를 이전해 가시오”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그곳 비탈진 언덕에 모든 무덤이 능선을 따라 내려가며 방향을 잡고 있는데 어머니를 매장을 한 외삼촌들이 어머니의 산소만 월산동 친정집을 행하여 방향을 틀어놓아서 어린 아들들한테 쉽게 구분하게 배려해 놓았단다. 수박동 너머 월산동에는 친정어머니가 살아계셨고, 당신의 꿈 많고 행복했던 처녀시절을 떠올리며 거기 누워 계신지 60년!
30여 년 전부터 방림동 공동묘지 무덤들이 이장을 시작했으나 어머니의 그 시선이 안타까워 아직도 이장을 않고 모셔두고 있다. 공동묘지 아래에 다 쓰러져가는 움막집에서 수십 년 살아오신 할머니 집사님, 보스코네 형제들이 어린 시절에는 벌초하러 가서 낫과 삽을 빌리던 집, 우리가 성묘 갈 적마다 들러서 인사를 드리던 앉은뱅이 할머니는 지난 7월 여든 일곱으로 세상을 버리셨단다.
오늘 아침 박래창씨 부부가 휴천재에 찾아왔다. 그 집 귀엽고 똘똘하던 딸내미 지하가 오늘 화엄사에서 하는 음악제에 ‘숨’이라는 악단으로 자기가 작곡한 국악곡들을 연주하는 음악가로 컸단다. 활발한 해외활동으로 현대적으로 해석된 국악을 선보이는 젊은 음악가로 알려졌단다.
오늘 화엄음악제 '심금'은 박지하의 나팔로 개막을 알렸다
과연 화엄사 대웅전 앞마당에 가득찬 손님들은 열번째 산사음악회에 전국각지에서 온 사람들이었고, 지하는 개막을 알리며 입장하는 스님들의 행렬부터 당당하고 그윽한 나팔연주로 장내를 숙연하게 압도하였고, 자기가 작곡한 곡들을 레바논 소리꾼 디마 엘사에드라는 여자의 소리에 합주하여 피리와 생황과 양금으로 장내를 숙연케 하면서 박수를 받았다.
'숨'그룹의 연주(박지하, 디마 엘사예드 Dima Elsayed), 서정민)
저 천년 고찰의 각황전(覺皇殿)을 배경으로 가슴을 울려 육신의 눈은 감게 하고 마음의 눈을 뜨게 하는 영혼의 소리들이 저녁 내내 울렸다. 토마스 슐츠라는 피아니스트의 선(禪)에 가까운 음률, 특히 4분 33초 동안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침묵의 소리’를 들려주는 연주 없는 연주는 스님들에게도 속인들에게도 암시하는 바가 많았다.
총감독 원일 교수의 군더더기 없는 진행이나, ‘바리공주’ 줄거리로 불법체류 노동자의 서러운 죽음을 노래하던 한승석 교수와 피아노를 때려부시듯 열정을 뿜어내던 정재일의 연주도 싸늘한 산사 마당에서 사람들이 미동도 않고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다.
토마스 슐츠 Thomas Schultz 피아노 연주와 작곡가 나효신
한승석 교수의 판소리와 정재일 피아노
마지막으로 ‘에비앙’ 클럽의 노래는 압권이었다. 체코출신 이바 비토바가 우리 둘의 귀에 익숙한 동구 집시풍의 노래로 방랑하는 사람들의 삶속에 어린 한과 슬픔을 악기처럼 다양한 목소리로 풀어내어 우리가 잃어버린 원시시대의 행수를 일깨워 주었다.
'에비안 Eviyan 그룹: 이바 비토바 Iva Bittova, 에반 지포린 Evan Zyporyn
가는 길도 오는 길도 그렇게 함부로 쏟아지던 소나기가 연주회 내내 숨을 멈추었다가 연주회 폐막을 알리는 범종소리가 끝나자마자 내 이마에 차가운 입맛춤을 시작하여 참석한 사람 모두가 부처님의 안배와 스님들의 염력에 탄성을 올리게 만들었다. 천상 정원에서 울리던 가락에 한껏 취하다 사바세계 밤길을 달려 휴천재로 돌아오니 밤 10시가 훌쩍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