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22일 목요일, 흐림
우리가 하룻밤 묵은 펜션이 ‘라카이’(La Kai), '빛나는 바다‘라는 하와이말이라나. 아파트, 자동차, 화장품, 약품, 심지어 어린애들이 먹는 과자까지 우리말을 쓰는 경우가 거의 없어 대한민국 장사꾼들의 ’세계화‘(외래화)는 전인류에게 비웃음 살만큼 대단하다. 농촌과 농민만을 상대하는 ’농협‘마저도 ’NH[농협] 공사‘라는 상호를 달고 있으니....
어제 밤늦게 들어와 자고나서 내려다보니 동쪽으로는 동해바다, 서쪽으로는 강릉호가 바라보이는 기막힌 자리에 널따랗게 자리잡은 고급 팬션이다. 아침식탁은 미루가 근사하게 색색으로 차려놓고 우리 부부가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갈 길이 바빴다. 오후 4시에 김해공항에 도착하는 오신부님을 마중나가야 한다는 미루 부부 일정으로 7시 30분에 강릉을 떠났다. 마음이 바쁜 이사야는 길 위를 나르고, 그 옆의 보스코는 비몽사몽으로 졸고, 뒷자리의 두 여자는 구름을 너울 쓴 산자락들의 가을치장에 마지막 남은 탄성을 쏟아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강릉·원주·상주·김천·거창을 거쳐 함양에 거의 다 와서 수동의 메기집에서 점심을 먹는데 송기인 신부님의 전화가 왔다. 바로 지척의 생초에서 점심을 끝내는 중이란다. 산청 성심원에 오신 길이었다. 미루에게는 오신부님을 성심원 수사님이 마중나간다는 문자도 떴으므로 갑자기 느긋해진 심경으로 우리 넷은 성심원으로 갔다.
미술가 김경화라는 분이 ‘굿모닝’이라는 작품을 성프란치스코교육관 앞마당에 설치했는데 시멘트 고양이들과 비둘기들(폐콘크리트로 옆구리와 등이 터지게 만든 조각이었다)로 구성된 미술품을 감상하러 송신부님과 제시카 교수님, 송신부님이 늘 존경하던 요산선생님의 따님(언젠가 송신부님댁에서 내가 요리해간 스파게티 맛을 기억하고 있었다)이 방문한 자리였다. 인간이 쓰다가 폐기한 생명 없는 폐기물의 모형을 빚어 인간의 파괴력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송신부님 일행과 들른 성심원 나환우들의 묘지에서 신부님이 이름 하나를 찾고 계셨다. 삼랑진에 계실 적에 강 건너 나환우촌에 미사를 다시시는데 술만 먹으면 행패를 부리던 환자 한 사람을 꾸짖다꾸짖다 못해 성심원으로 데려다 주셨단다. 신부님 짚차에 그를 억지로 싣고 와서 성심원에 맡기고 가시던 날 땅으로 잦아들던 이판수(다두)의 울음을 여태도 못 잊으신단다.
그래서 해마다 추석이면 정종 한 병과 담배 한 보루를 사들고 다두를 찾아오시면 “우리 신부님 오셨다! 우리 신부님 오셨다!”면서 자랑하고 반기더란다. 다두를 유일하게 찾아오는 방문객이었으리라. 또 어느 핸가는 부산까지 신부님을 찾아와서 자기가 술도 끊고 성심원에서 ‘작업반장’이 되었다면서 저금통장을 보여주더란다. 다두가 외출해서 찾아갈 만한 유일한 사람, 통장을 보이며 자랑할 유일한 사람이 당신이셨으리라면서 다두의 비석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으시는 신부님 눈에 젖은 물기가 언뜻 보였다.
군에 입대했다 발견된 나병을 안고 절망에 빠져 다두가 전국을 방랑하면서 병을 키우고 말았다고, 손발가락이 빠지면서 쑤셔오는 통증을 못 견뎌 술로 세월을 보내다 폐인이 되고 말았다면서 안타까워하시는 말씀에도 가엾은 한 인생에 대한 자상한 연민이 묻어났다.
무뚝뚝하기 이를 데 없는 경상도 사나이, 노무현 대통령이 사부님으로 모시던 보스(“제가 사부님으로 모시는 사제가 한 분 계시는데 여기 계시는 성대사님은 그 신부님과 가장 가까운 친구이십니다.” 이것은 2006년 교황청을 방문한 노대통령이 만찬석상에서 추기경들 앞에서 행한 공식발언이다), 영남의 가장 영향력 있는 가톨릭인사에게서 한 사제의 애틋한 사랑을 느낀 오후였다.
우리 착한 미루가 일행 전부에게 따뜻한 커피를 대접했고, 신부님에게 효소 한 상자를 선물로 드렸다. 만남은 늘 만남으로 이어지는 게 아름답다.
로마 포로로마노에서
그리고 봉화마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