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9일 월요일, 흐리고 비뿌리고
아침에 티벳 요가를 하다 창밖을 보니 멀리 왕산 비탈에 햇살이 쏟아지기에, 요지경을 들여다보던 어린애마냥, 카메라를 들고 테라스로 뛰어나갔다. 구름과 산 사이를 열어젖히며 떠오르는 태양! 운동하다 말고 무엇에 흘린 듯 방을 나가는 나를 보며 보스코는 알겠다는 눈빛이다.
“늙어서도 산이 좋아라. 말없이 정다운 친구
온 산에 하얗게 눈이 내리면 나는 나는 산이 될 테야.“
‘산사람’이라는 노래는 어느 새 그의 애창곡 하나가 되었다. 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보스코를 지켜보노라면 태산 옆에 팔걸이를 하고 누운 작은 산들이 얼비치고 그 작은 산 발치에 조그맣게 볼록거리는 묏동들이 떠오른다.
산골에 귀농이나 귀촌해 사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개성이 강하다. 친해지기도 쉽지만 수틀리면 사이가 틀어지는 수도 많다. 타인들이 아쉬울 게 없거나 아쉬워도 잘 견디는 사람들이려니... 그런 성격의 남편들이어선지 처음엔 남편 따라 내려왔다가도 산골의 외로움을 못 견딘 아내가 도회지로 돌아가 버리면 남정들은 ‘내연의 처’ 산을 정리 못해 안달이다.
보다 못해 아내라는 타이틀의 소지자가 “나에요, 저 여자에요? 둘 중 하나만 택하세요.”라고 몰아붙이면 “뒤돌아보며 뒤돌아보며” 도회지로 끌려가거나, 오기로 새로 얻은 ‘산사랑’에 매달리다 본부인에게 버림받는 일도 없지 않다. 도회지로 끌려 나간 남정들도 '산여자'를 못 잊어 아내와의 사이에 높다란 산을 쌓아놓고서 남은 세월을 보내는 경우도 흔하다.
내가 함양에 와서 만난 인연 중에 유독 아름다운 사람들이 ‘느티나무독서회’ 아우님들이다. 윤희씨에게 부탁이 있어 그걸 찾으러 갔다가 “방금 정옥씨를 봤는데 무척이나 지쳐 있더라구요.” 하는 얘기와 “저녁이라도 함께 들고 싶다.”는 정 깊은 말도 나와 우리 셋이서 번개팅을 했다.
공부하느라 옆도 안 보고 긴 시간을 혼자 견뎌내느라 얼마나 힘들겠는가? 비슷한 경험을 해 본 터라서 살레시아가 딴 사람의 맘을 읽고 마련한 조촐한 모임이 정옥씨에게 격려가 되었을 게다.
늘 옆 사람들의 마음을 살피고 읽는 살레시아의 맘씨는 하느님께 받은 특별한 선물이다. 그니의 약점이라면 약점이다. 며칠 전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하느님의 약점을 잡고 늘어진’ 말씀이 감명 깊었다.
교황청 문간집 ‘산타 마르타‘에서 드리는 아침 미사에서 교황님은 바오로 사도의 로마서를 인용하면서 “우리는 하느님 사랑으로 단단히 묶여있어서 어떤 사람도, 어떤 힘도, 어떤 것도 하느님 사랑으로부터 떼어놓을 수 없다”며, “우리는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라고 말하지만 그 분에게도 한 가지 약점이 있다”며, “우리를 향한 사랑이 단단하여 우리로부터 떨어질 수 없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구원을 선포한 예언자들을 죽인 예루살렘을 위해 눈물을 흘린 예수님의 모습에서 하느님 사랑을 보라고도 하셨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 사랑을 거부해도 늘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가장 사악하고 불경한 사람도 아버지의 온유한 하느님 사랑을 받는다”며,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으로부터 멀어질 때 흐느끼신다”고도 했다.
보스코가 “적게 사랑하는 자가 더 용감하였다”는 구절을 곧잘 인용하는데(노르만디 상륙기념비에 새겨져 있다나?) 그렇다면 사랑이 본질이신 하느님이 인간을, 특히 악인들을 대하시는데 제일 마음 약하실 게다.
잠시 짬을 내서 ‘운림원’에도 들렀다. 이선생 건강 땜에 걱정을 했었지만 큰일은 아니라고, 몸을 아끼고 일을 줄이는 중이라는 영숙씨 얘길 들었다. 올핸 벌농사 짓느라 배나무건 사과나무건 돌보지를 못했다는데, 과연 나무들 행색에 고아원 아이들처럼 애정결핍증이 줄줄 흐른다. 모름지기 사람이나 나무나 세상 모든 게 관심어린 사랑만이 살아가는 힘이 된다는 이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