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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공부, 굼뜬 몸을 끄-을-고
  • 김혜경
  • 등록 2015-12-03 09:07:17
  • 수정 2016-01-12 11: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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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민의 공부론 / 김영민 지음 / 샘터사 / 264쪽


달랑 한 장 남은 2015년 달력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이맘때면 덩달아 나도 흔들린다. 그래서 다시 <공부론>을 펴든다. ‘앎’과 ‘삶’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만 많던 나에게, 그렇게 주저앉아 고민하지 말고 당장 일어나 몸으로 살아내라며 뒤통수를 후려치던 책.

 

김영민은 매일같이 몇 시간씩 글쓰기를, 그것도 30여 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해온 부지런한 철학자다. 20여 년 전부터 인문학 공동체 ‘장미와 주판’을 통해 ‘앎’을 ‘삶’으로 실천하고자 했다. 또 기존 대학과는 전혀 다른 대안대학 설립을 10년간 준비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패했단다. “‘혁명의 다음날’에 대한 준비가 없는 것과 유사한 이유입니다…공동체 구성원들은 똑똑하고 서로 공명하고 대의도 분명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공동체 바깥과 같은 갈등과 불화, 이기심을 보입니다. 좋은 이념, 전망, 구상을 구체화할 수 있는 ‘몸’이 없어요.” 김영민은 모임을 해체했지만, 함께 공부하던 사람들이 작은 규모의 모임들을 서울 등지에서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이런 저자가 인문학공부의 이치를 살펴 쓴 책 <공부론>. 이 책에는 여러 철학자들을 비롯해 이소룡, 이종범, 차범근, 미야모토 무사시 등 유명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김영민은 실제 인물들의 삶과 고전 속에서 톺아본 스물일곱 가지 공부론을 아주 참신하게 펼치고 있다. 


쉬운 문체지만 그 융숭하고도 조밀한 깊이 때문에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낯선 철학 개념어와 서문 첫줄부터 ‘밑절미’라든가 ‘몰풍스레’, ‘두동진’ 등 생경한 우리말로 가득하다(국어사전을 옆에 놓고 읽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쉽게 쓰고 평이하게 말하는 것을 오히려 경계하라고, 두루뭉술한 관념적 혼란과 혼동은 공부의 기본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말한다. 좋은 글과 말일수록 한 문장 한 문장을 자못 고통스럽게 읽고 듣는데 품을 들여야 한다면서 말이다.  


영리함은 ‘변덕’이고 현명함은 ‘변화’라면서, 공부란 돌이킬래야 ‘돌이킬 수 없는 변화’라 못 박는다. 학같이 영리한 인간들은 자기 깃털은 적시지 않고 물가를 노닐다가 날름날름 물고기들을 쪼아 먹는다. 그러나 공부하(려)는 인간은 아예 물속에 몸을 담근다. 너무나 오랫동안 몸을 담그고 있어서 간혹 몸에 지느러미가 돋거나 아가미가 생기기도 한단다.(헉!)


그러면서 생각은 공부가 아니라고 단언한다(p.36). 논어의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를 들어 생각만 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위험하다면서, 본디 ‘자기-생각’은 타인을 배제하는 속성이 있고 그러한 속성 때문에 ‘자기-생각’만이 옳고 자연스럽다 여기게 된단다. 생각이 적어서 공부가 모자란 게 아니라 실없이 생각이 많은데다가 그 생각의 틀 자체가 완고해지는 게 오히려 더 큰 문제이며, 그 결과 전형적으로 ‘냉소’와 ‘허영’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무릇 인문학공부란 ‘자기-생각’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사실을 아주 뼈.아.프.게 깨치는 일련의 ‘사건’이요. 기존의 자연스러운 생각과 습속을 망치로 내리쳐 깨는 듯한, 실존의 뿌리깊은 흔들림을 경험하는 것, 그래서 자기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그런 것이란다.


한마디로 공부(工夫)란? 근기(根氣), 그러니까 ‘엉덩이의 힘’이라는 것(p.44). 잡다한 생각이나 하고 앉았지 말고, 곧장, 당장, 굼뜬 몸을 끄-을-고, 거북이 등껍질처럼 딱딱하게 굳은 버릇이나 태도, 습관을 바꾸기 위해 쉼 없이 힘과 에너지를 쏟으란다. 


그래서 자기만 더 깊고 더 순정하다는 식의 ‘허영’을 벗어야 한단다. ‘나’는 너와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가 가능함을 인정하면서, 이런 너와 내가 서로에게 물듦으로 서로 성숙할 수 있다는 거다. 그러려면 실패를 밥 먹듯 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식적인 노력을 다해야 하고 그런 후에는 무의식적인 숙성기를 가져야 한단다. 열심히 담근 김치가 항아리 속에서 말없이 맛나게 익어가는 것(至誠이면 感天, 盡人事待天命)처럼 말이다. 


그리고 공부, 특히 인문학공부는 말에 대한 감각을 키우는 데서 출발하므로 한글을 익히고 쓰고자 노력해야 하며 읽기나 따지기 못지않게 글쓰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40이 넘은 이들은 나이와 경험이라는 타성을 깨지 못해 대부분 자유로운 글쓰기가 매우 어렵다면서, 내 몸의 역사와 생활 탓에 고착된 것들을 몰아내고자 끊임없이 지우고, 끊임없이 비우란다. 또 잘 경청하고 극진하게 응대하는 대화 역시 중요하며 창조의 블랙홀과도 같은 고독을 일상의 생활양식으로 삼으라 한다. 


이쯤 되면, 심자통(心自通, 화담 서경덕)이 가능해 지리라. 마음이 스스로(저절로) 통하는 심자통은, 오랜 기간의 숙련과 절차탁마의 과정 끝에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얻어지는, 뜻하지 않게 주어지는 오묘한 체험이다. 예를 들면, 볼펜공장에서 아주 오래 일한 옆집 언니는 무심하게 볼펜심을 쥐는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손에 쥐는 족족이 100개 한 묶음이 된다. 그야말로 ‘생각을 넘어선 생각’이요, 말 그대로 달인의 경지에 이르러야 얻을 수 있는 직감이다.


그럼 어떻게 심자통(心自通)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가? 또다시, 공부? 어떤 공부?

‘몸’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p.166)


내 몸을 타인과 세상의 원리와 구조를 알아가는 촉수이자 매개로 삼기 위해 기질과 성향, 버릇과 몸의 운용 방식을 바꾸란다. 그러니 생각이나 작심, 반성, 기원 따위만 하고 있지 말고 평생, 언제, 어디서라도, 그 무엇이든 실제로 자신의 한 가지 버릇을 바꾸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은 정신뿐 아니라 기존의 관습과 타성에 젖어 굼뜨게 변해 버린 몸을 바꾸는 일이다. 그래야 변덕이 아니라 ‘변화’하게 된다면서. 그런 몸과 마음의 진정한 변화를 통하여, “안팎을 같이 내다보며, 또 경우에 따라서 안팎의 이치를 동시에 끌어다 이용할 수 있어야”(p.147) 한다는 거다. 정중동 ․ 동중정(靜中動 ․ 動中靜)의 경지라고나 할까.


그의 말마따나 이 부박하기 짝이 없는 현실에서 고작 책 몇 권 읽는다고 해서 공부가 아니다. ‘알면서 모른 체하기’라는 김영민식 ‘인이불발(引而不發)’의 공부는, ‘당기되 쏘지 않을 수 있으며, 아는 걸 버텨내면서 그것이 깊이 쌓여 숙성되기를 기다리는 거다. 명중이라는 목표를 굳이 힘겹게 에둘러 시중(時中)을 찾아가는 길이요. 일상(日常)과 비상(非常)을, 체계와 개인을 동시에 지양하면서, 위태로운 줄 알면서도 그 사잇길을 걷고 또 걷는 거다.’(p.6)


사실 인문적 과녁은 실제 활쏘기의 과녁과는 다르다. 어쩌면 인문(人紋)이 말하는 과녁 같은 건 없을지도 모른다. 활을 당기지만 목표가 과녁이 아니다. 그래서 기다리되 기대하지 않고, 알되 묵히며, 의욕은 생생하지만 욕심은 없다. 다만, 당기되 쏘지 않는 그 활시위의 팽팽함에 천착하여 용맹전진 할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진짜 ‘공부’다.

 

이렇게 멋지게 말하던 김영민의 근황이 궁금했는데, 교수직을 그만두고 이름처럼 햇빛이 빼곡한 밀양 산자락에서 혼자 공부하고 있단다. 부산에 계시는 노모를 뵈러 가기 편하고, 아는 사람이 없어 숨어들기 좋은 곳을 찾다 보니 밀양이었다나. 참 김영민스럽다. 


그렇지만 시골에 머문다고 은둔은 아닐 게다. 김영민의 지론은 ‘독립하되 고립되지 않는’ 거니까. 인문학 운동을 하는 데 있어 인문학이 종교화되거나 개인수양화 되는 현상을 가장 경계한다 했다. 인문학은 도시의 것이라면서, 자기가 사는 곳이 동굴이어도 시선은 도시를 향해 있어야 하며, 어울려서 깨쳐야 한다고도 했다. 그를 믿는다. 


문득 자기만의 동굴을 찾아가 깊은 고독 속에서 힘을 얻고는 다시 사람들 속으로 내려오던 니체의 짜라투스트라가 떠오른다. 한동안 뜸했던 그의 글이 머잖아 술술 풀려나올 것 같다. 괜스레 기다려진다. 동무들과 좋은 말을 나누는 맑은 얼굴의 그가 보고 싶다. 




 경향신문(2013.1.18), ‘2013 문화계 인물③ 철학자 김영민’ 중에서 근황 등 참조함.



[필진정보]
김혜경 : 서강대학교를 졸업했다. 너른고을문학회원이며, 광주문화원 편집기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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